[벼리2] 반전운동, 다시 뛰어오를 수 있을까?

새로운 반전운동 연대기구가 할 일

수진
print
얼마 전 ‘경계를 넘어’에서 같이 활동하는 동료 활동가가 한 시민단체 활동가를 만나게 되었다. 활동하는 분야가 워낙 다른 분이라 ‘경계를 넘어’를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인사를 했는데 그 분이 “아, 경계를 넘어요? 알아요.”하시더란다. 어떻게 아시냐고 되물었더니 “반전 집회에 갔을 때 대여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똑같은 피켓 들고 있는 것을 봤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무실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는데 웃음 뒤에는 곧 씁쓸함과 자괴심이 밀려왔다. 그 분이 어느 반전집회에서 우리를 보았는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경계를 넘어는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반전운동 연대기구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요즈음, 한국의 반전운동도 우리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운동의 규모도 옹기종기, 그나마 같은 선에 서있는 사람들끼리도 여기 저기 뿔뿔이 흩어져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새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6년 전 활발했던 반전운동

‘경계를 넘어’가 본격적으로 반전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6년 봄이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3년이 되는 시점에, 전쟁과 점령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이라크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이라크보다 먼저 전쟁이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운동 주제를 앞에 두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들었던 질문은 ‘2003년에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였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인간방패를 자임하며 이라크로 향했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반전집회를 벌인 것은 한국 사회운동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두 해가 지나면서 반전집회에 참여하는 인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3년 전에 이라크를 향해 움직였던 사람들의 행방을 물어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국의 반전운동이 한 풀 꺾였다는 증거였다.

반전운동이 다시 활기를 찾기 위해서는 이라크에서 전쟁과 점령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 다시 환기시키는 일과 함께 이라크와 관련된 활동을 했던 사람, 그리고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 데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이라크와의 끈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이라크 반전운동을 계속 해오던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 ‘이라크 평화를 향한 연대(준)’가 구성되었고, 정보 모니터링, 평화난장, 이라크와 중동에 대한 세미나를 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했지만 1년이 채 되지도 않아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차례 함께 운동을 했던 사람들 사이에는 좁히기 어려운 간격이 존재하기도 했다. 이라크 반전운동으로 한번 모였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무언가를 함께 하는 일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듯 했다. 결국 사람들은 각자가 하고 있던 활동으로 돌아가고 연대모임은 조용히 중단되었다.
위 사진:이스라엘 대사관앞에서 팔레스타인 침공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사진 출처: 경계를 넘어)


파병 반대운동만으로 반전운동을 이어가기는 어렵다

한국 반전운동의 중심 세력이라고도 볼 수 있을 파병 반대 운동 역시 식어가는 반전운동의 열기에 활동력을 잃어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년 반복되는 파병연장 동의안의 국회 통과와 이를 막지 못했다는 무력감까지 더해져 파병 반대 운동은 그 동력을 잃어가는 듯 보였다. 특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전쟁 발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악화되었던 2007년에 한국의 반전운동을 이끌어가는 중심 기구였던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요 활동이 3월과 9월에 열린 반전집회를 제외하고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한국군 병사의 사망사건과 한국인 선교사들이 피랍된 사건에 대응하는 것으로 그친 점이 매우 실망스러웠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06년부터 점령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면서 점령군의 사망자 숫자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2007년에 들어서는 저항세력이 아프가니스탄 남부 지역을 장악했다는 보고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라크에서는 2006년 말에 미국의 전쟁과 점령으로 사망한 이라크 민간인이 65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치가 발표되면서 반전 운동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미국의 공습 횟수가 2005년 이전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하고 있었다. 두 곳에서는 거의 매 주 점령군에 의한 민간인 사망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이 관련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만 파병반대국민행동이 힘을 받아 대중운동을 이끌어내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난 2003년에 무엇이 수천 명의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게 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북한이 공격의 위협에 놓이거나 점령군으로 한국군을 파병하는 것처럼 한국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라면 그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의심마저 들었다. 어쩌면 한국의 반전운동을 중심에서 이끌어간 연대기구의 활동이 파병반대운동에 한정된 점이 이런 한계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반전운동이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한국을 쉽게 연결시키기 위해 ‘한국군의 파병’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운동 방식을 선택했는지 몰라도 그럼으로써 한국과 직접 관련이 없는 파병 이외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운동을 조직하지 못하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솔직히 한국군의 파병 문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주제가 아니다. 핵심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이다. 한국은 미국의 여러 작은 동맹국 중 하나로 전쟁과 점령을 지원하는 역할을 일부 담당할 뿐이다. 실제로 한국군의 파병 유무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체 전쟁 상황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관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정부가 전쟁에 참여하려한다면 그에 대응하는 활동이 반드시 있어야 하겠지만, 한국 반전운동이 전쟁 문제의 핵심을 비껴나간 것은 아쉽다. 특히 이라크 침공 반대운동으로 크게 성장한 한국의 반전운동이 여전히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한국에 살고 있는 나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논리가 부족하다는 점은 반성해야 한다.
위 사진:반전집회에서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퍼포먼스 모습(사진 출처: 경계를 넘어)


팔레스타인 침공으로 불어온 반전운동의 연대

한국의 반전운동이 전체적으로 동력을 잃어가고, 한국인과 관련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대중이 조직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평가를 하면서 한국의 반전운동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은 계속되었다. 이런 저런 시도들 끝에 다시 내린 결론은 일단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주, 정기적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일 경계를 넘어의 활동가 서너 명이 좁은 공간에서 복닥복닥하다가 간만에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 캠페인을 준비해서 같이 만든 피켓을 들고, 노래를 합창하고 구호를 외치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자신감은 바로 우리가 목말라 하던 연대의 효과였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하루 동안 유인물을 만장이라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전의 실패를 번복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연대의 방식이 좀 더 구체화되고 치밀해야 했다. 그러나 2008년 봄이 지나면서 거의 모든 한국의 사회운동이 광우병 촛불에 집중하고 가을에는 한국 정부가 자이툰 부대를 연말까지 철수시키겠다는 발표를 공식화하면서 반전운동은 운동 사회 내에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위치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대의 기회는 공습과 함께 찾아왔다. 2008년 12월 27일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언론에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연대활동을 이끄는 조직이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체와 개인들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기자회견을 여는 것조차 버거울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촛불 문화제와 토론회가 준비되었고, 대중집회에는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4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다시 불어온 반전 운동의 활기에 때 이른 봄이 찾아온 것만 같았다. 이런 기대감과 흥분을 가진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라는 같은 마음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통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되찾게 되었고 이번 활동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아쉬움을 공유하게 되었다. 한 달 가까이 진행된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의 성과를 바탕으로 반전운동을 새롭게 시작해보자는 제안에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을 이끌어온 대다수 단체들이 뜻을 모았고 이를 더 구체화하기 위한 모임이 꾸려졌다. 지금까지 세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새로운 반전운동 연대기구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반전운동의 활동 의제를 정했다. 강대국의 패권을 위한 침략 전쟁과 점령 반대가 제일 우선하는 활동 의제로 정해졌고, 그 다음으로 한국 정부의 전쟁과 점령 지원 반대, 한반도 평화, 군비 축소의 순서로 활동 의제들의 우선순위에 합의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조직 구성 방안엔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남겨두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4월 4일에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고 전쟁과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국제공동행동주간에 발맞춰 서울에서도 국제반전공동행동 집회가 열렸다. 매년 3월과 9월에 국제반전공동행동을 개최해오던 파병반대국민행동이 해소를 결정하고 아무도 3월의 반전집회 개최를 기대할 수 없던 때에 여러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 반전집회가 다시 열리고 3백여 명의 사람들이 참가한 것은 반전 운동의 가능성을 또 한 번 보여주었다.

새로운 반전운동 연대기구가 꾸려지기까지 아직 거쳐야 할 단계와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이 남아있다. 어떻게 하면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일상적으로 움직이는 연대 기구가 될 수 있을까? 한두 조직이나 활동가의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각자 가능한 역할을 모두 나누어 가질 수는 없을까? 큰 대중 조직과 몇 명으로 구성된 작은 단체가 함께 활동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일까? 어쩌면 모든 연대 기구를 꾸릴 때에 드는 공통적인 질문이겠지만, 활동의 내용과 방식, 조직의 운영 하나하나에 걸쳐 있는 이 질문들을 풀지 않고서는 지난 운동의 한계를 뛰어넘고 빈자리를 채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되살리기 위한 활동이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을 풀어나가는 데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같이 손을 잡고 뛸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수진님은 경계를 넘어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49 호 [기사입력] 2009년 04월 22일 8:42:48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