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보자 폴짝] “거짓 희망에 안 속아! 이것들아~”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영원
print
희망, 대학가면 나오나?

낮 12시! 지금쯤 친구들은 식판을 들고 급식실 복도에 한 줄로 서 있겠지? 초등학교 6학년인 나는 좀 전에 일어나 눈곱만 살짝 떼고 어슬렁어슬렁 엄마, 아빠가 운영하고 있는 슈퍼마켓으로 나가 본다.

“괜찮아? 가렵다고 자꾸 긁지 말고, 밥 차려 놨으니까 먹어”
한창 유행인 수두에 걸리는 바람에 며칠째 나 홀로 집에서 때 아닌 방학을 보내고 있다.

“엄마랑 아빠는 밥 먹었어?”

“어, 좀 전에…. 그나저나 장사가 안 돼 큰일이네. 너두 엄마, 아빠처럼 고생하지 않으려면 공부 열심히 해서 옆집 누나처럼 일류대학 가야돼. 알았지? 학교 안 간다고 놀지만 말고 어여 가서 밥 먹고 공부해!”

왜 그 소리가 안 나오나 했네. 에휴--;;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그래서 나랑 형한테 만날 우리가 못 배웠으니 너네라도 ‘명문대학’ 나와서 월급 많이 주는 직장 취직해 부잣집 사람이랑 결혼하라고 한다. 그게 바로 ‘성공한 인생’이란다. 그럼 엄마, 아빠는 실패한 인생이라는 얘긴가? 몰라몰라 OTL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대학등록금

밥을 먹으러 들어가는 길에 앞에 가고 있는 옆 집 누나를 만났다. 달려가서 아는 척을 하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은서 누나는 반갑게 맞아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모자를 꾹 눌러썼는데 헉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이 없다.

“누나, 머리….”

궁금하긴 하지만 왠지 더 이상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아 얼른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의외로 은서 누나는 가볍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머리? 얼마 전에 다른 대학생들이랑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하면서 삭발식을 했어. 머리카락을 다 미는 거 말야. 요즘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려면 등록금만 1년에 1천만 원이 들 정도로 엄청 비싸거든.”

“1천만 원? 그 돈이 도대체 얼마야?”

내가 만져본 돈 중 가장 큰 돈은 고작해야 1만원인데, 거기에 ‘0’을 3개나 더 붙여야 되는 금액이라니.

위 사진:돈이 없는 게 죄인가요? 2009년 부자들에게 줄여준 세금의 1/3이면 등록금이 없어 대학교육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은 없어질 수 있다고 해요. (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음, 중간이나 작은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1년 동안 일하고 받는 돈이 정말 많아야 3~4천만 원이래. 그런데 등록금이 그 중 1/3이거나 1/4이니 엄청나게 큰돈이지. 만약 집에 대학생이 2명이라면 기둥뿌리가 뽑힐 거야”

“에이, 누나도 참, 이제 다 컸는데 등록금은 대학생이라면 자기가 벌어서 써야하는 거 아냐?”

“물론 부잣집이 아닌 친구들은 일을 해서 등록금을 마련하지. 그런데 그것도 공부하면서 하기는 쉽지 않아. 그래서 결국 은행 같은 곳에서 돈을 빌려 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해. 졸업해서 취직도 하기 전에 사회에서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거야. 그래서 많은 대학생들이 등록금 문제를 각 대학에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위해서 삭발식을 한 거야. 공부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포기해야 한다면 갈수록 돈 있는 사람들만 대학에 다녀서 세상은 더욱 불공평해질 거야.”

사실 나는 대학을 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은서 누나 말처럼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단지 돈 때문에 못한다면 정말 억울할 것 같다. 은서 누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만 들어간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구나.

옆 집 누나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은서 누나는 4학년이라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머리가 저래서 어쩌나.

“엄마가 그러는데 누나는 좋은 대학 가서 취직도 잘 할 거라고 하던데….”

“그게 갈수록 더 어려워.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서 다들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돼. 아님 취직을 하더라도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일자리만 늘어나서 불안하게 일을 해야 해. 정치하는 사람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좋은 일자리만 찾느라고 취직을 안 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만 다 거짓말이야.”

대학만 들어가면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선생님이랑 어른들은 얘기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니. 이제 고3이 된 형은 마치 인생의 목표가 대학교 들어가는 사람처럼 하루에 4시간밖에 안자고 공부만 하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갑자기 형이 불쌍해진다. 그나저나 엄마, 아빠가 얘기한 것처럼 은서 누나가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위 사진:이동수 화백 : 대학만 가면 희망이 있다는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않아요. (출처 : 인권오름)

비정규직, 두렵니? 그럼 함께 해

“우리 집 옆에 사는 할머니 있잖아. 그 할머니가 우리 대학교에서 청소 일 하시거든. 처음에는 학교에서 사람들을 고용했어. 그때는 몸이 힘들어져서 쉴 나이가 될 때까지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어.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학교가 청소 일을 뚝 떼어서 다른 업체에 맡기기 시작했어. 할머니는 학교에서 일을 하지만, 학교가 아니라 다른 회사에 취직이 된 거야.”

“어차피 똑같은 곳에서 일하는데 그럼 괜찮은 거 아냐?”

“얼핏 보면 그렇지만 실제는 똑같지 않아. 월급도 더 적어지고, 일도 더 많이 해야 했거든. 그래서 할머니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이건 너무 부당하다고 회사에 항의를 했어. 그러자 회사가 청소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자르려고 했지 뭐야. 그때 우리도 청소 노동자들이랑 같이 싸웠어. 다행히 지금은 할머니도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어.”

“자기 일도 아닌데 왜 같이 한 거야?”

“할머니 일만이 아니라 사실 곧 닥칠 내 일이기도 하거든. 갈수록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많은 청년들이 그리고 노동자들이 할머니처럼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곳에서 일을 하게 돼. 그런데 회사가 노동자들을 막 부려 먹거나 아무 때나 자를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면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은 오지 않을 거야. 결국 할머니 같이 불안정하게 일하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노동자가 될 대학생, 청년들이 함께 싸울 때 진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위 사진:성신여대 9천여 명의 학생 중 6천5백여 명의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응원했어요. 지금은 당당하게 노동자로서 일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답니다. (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은서 누나는 청와대 앞으로 가야 하는데 늦었다며 집으로 들어가서 뭔가 써 있는 큰 판을 들고 나왔다. 그 판에는 이명박 대통령 아저씨가 선거 때 대학교 등록금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말하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대통령이 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벌써 까먹은 걸까? 오늘 은서 누나가 청와대 앞에서 저걸 들고 서 있는다고 하니, 만약 건망증으로 약속을 잊어먹었다면 저걸 보고 기억해 낼 수 있겠지.

사실 누나가 하는 말을 다 알아 듣지는 못했지만 수두가 나아서 학교에 다닐 때가 되면 은서 누나 머리에도 조금씩 머리카락이 자라날 거다. 누나가 말하는 희망도 머리카락처럼 조금씩 자라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영원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54 호 [기사입력] 2009년 05월 27일 13:09:23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