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1] 피해의 재구성, 차별의 발견

성매매를 다시 고민하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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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와 노동의 ‘사이’에서

2004년 성매매방지법의 시행으로 성매매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매매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윤락행위자가 아닌 ‘성매매피해여성’이라는 법적 용어의 사용은 성매매현장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착취, 강요, 감금, 폭행, 선불금, 빚 등 인권침해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이끌어내어 이에 대한 법적 사회적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성매매방지법의 시행 이후 특별단속으로 인해 생존권에 위협을 받게 된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이 ‘성노동자’로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성매매방지, 피해의 구제’에 초점을 맞춘 정책과 논의에 맞서 새로운 인권 담론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현장에서 성매매여성에 대한 상담지원 활동을 하다보면 여성들의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삶을 ‘피해’라는 말로 100% 설명해 낼 수 없고, 사회적 약자로서 겪는 그 모든 억울함들을 ‘노동’이라는 말로 상쇄할 수도 없는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위 사진:성매매 관련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보고서

피해의 재구성과 차별의 발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2008년 ‘수사기관 2차 피해’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수사관이 가진 가부장제적 관점 때문에 사건과는 관계없이 듣지 않아도 될 말, 받지 않아도 될 시선, 억울한 판결에 고통 받는 성매매여성의 사례를 발견하면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도 남성중심 사회에서 ‘성매매피해’를 ‘피해’로 인정받는 것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여성대상 폭력이 그렇듯 성매매피해여성도 웬만큼 ‘피해’를 당하지 않는 이상 ‘피해자’로 보호받기가 어렵다. 성판매 여성들이 일터와 생활 속에서 수없이 경험하고, 결국 성매매 공간을 벗어나고자하는 여성들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는 크고 작은 ‘피해’들은 극악한 피해만을 치밀하게 증명해야 인정받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적 현실 앞에 무시되고 삭제되어 왔다.

성매매를 규정하는 좁고 편협한 사회적 시각도 성매매현실을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방해물이 된다. 일반적으로 ‘성매매’를 생각할 때,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3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벌어지는 일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여성은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그 30분 동안만 성매매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성관계의 ‘그 30분’이 가능하도록 쏟아 부어야 되는 노동의 시간 속에서 여성은 일상적으로 성희롱 성폭행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30분의 성관계시간 밖에서 업주, 사채업자, 소개업자의 끊임없는 지배에 복종과 저항을 경험한다. 동료, 가족, 사회와의 긴장과 대립이 상시적으로 존재하며, 성매매 공간에서 형성된 구매자와의 폭력적이고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는 약자의 위치에 있는 성판매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와 모멸감을 경험하게 한다.

성판매여성은 성관계의 시간 안과 밖에서 업주, 구매자, 연인, 친구, 가족 등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으며 끊임없이 ‘성판매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 배제, 멸시, 결핍을 경험하게 되지만, 이러한 여성들의 경험은 (삽입) 성교 중심으로 성매매를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성매매 문제’ 혹은 ‘성매매 피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삭제되고 주변화되어 왔다.

이런 배경에서 더욱 확장된 관점으로 성매매를 이해하고 성매매여성의 경험을 다시 발견하기 위한 도구로 ‘차별’을 제안한다.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 업주, 구매자, 사채업자, 소개쟁이가 아닌 이상 ‘피해’의 ‘가해자’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차별’이라는 틀거리로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나와 사회의 시선과 관점을 점검해보는 게 필요하다. 피해의 구제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폭넓게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고민하는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위 사진:2008년 장안동 안마시술소 밀집지역 아웃리치

성판매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2008년, 성매매를 경험했거나 현재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10명의 여성들의 참여로 ‘성판매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 연구를 진행했고 지난 6월 작은 토론회를 열었다. 연구 참여자들은 ‘차별’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 애인관계에서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경험, 성매매와 관련한 경멸, 조롱, 비웃음 형태의 차별을 당한 경험, 사회적 낙인 때문에 미래를 계획하기 힘들었던 경험, 성구매자 업주뿐만 아니라 업소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던 기억 등을 이야기했다. 참여자들은 성판매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피해’의 범주 안에 있는 폭행․협박․성매매 강요 등의 수준과는 다른 형태로 성판매여성의 ‘현재 삶’의 일상 속에 ‘언제나’ 진행되고 있음을 전해 주었다.

또한 활동가들과 연구 참여자들이 만나 ‘차별’이라는 새로운 틀로 삶의 이야기를 다시 구성해 내는 것은 연구의 내용을 떠나 참으로 소중한 과정이기도 하였다. 연구 참여자들은 성매매 여성으로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차별의 이야기들을 ‘씩씩한 분노와 웃음, 눈물’을 담아 때로는 무용담처럼, 때로는 슬픈 전설처럼 들려주면서 구체적으로 발화된 경험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전복의 가능성들을 보여주었다. 차후 이런 목소리들을 구체적인 활동의 의제로 연결해 나가야 한다는 숙제를 남기기도 하였다.

성매매 업소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적 상황은 그 공간에서 매우 ‘정상적인 것’이다. 거래 조건이었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성구매자들의 횡포, 업주와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 유흥업소에서 일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주변인들의 시선이 지속적으로 여성을 괴롭힌다. 성구매자가 ‘돈을 내고 여성을 사는 행위’는 단순히 성기 중심의 성적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을 넘어서 허락된 시간동안 마음대로 여성에게 휘두를 권력을 부여받은 것으로 인식된다. 이런 이유로 성매매의 공간에서는 성행위에 대한 무리한 요구, 언어적 물리적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모멸감 소외감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성판매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사회적 차별은 여성 개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여기에 더해 성판매 여성들은 차별적인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성판매 여성임을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하고 신분이 노출될 수 있는 지역을 의식적으로 피해다니기도 하면서 분열적 자아를 느끼기도 한다.

성판매를 중단했다고 해서 이러한 차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 만났던 업주, 사채업자, 스토커, 구매자들은 ‘성판매 여성이었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겠다’는 협박으로 여성에게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과거 성판매를 했다는 이유로 가족의 멸시와 경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가 하면, 이웃과 친구들의 눈치를 보고 비난이 두려워 관계를 포기하기도 한다.

차별의 해소를 위한 제언

성판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성판매 여성이 겪은 ‘피해’뿐만 아니라 성매매 구조에서 기존의 성적 가치관을 전복시켰던 문화적 경험, 여성으로서의 공통적인 경험의 발화를 통해 사회적 낙인을 해체시키는 사회․문화적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 또 성매매 구조 안에서 가시화된 피해뿐만 아니라 성판매 여성의 인권에 대한 사안별 문제제기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임금체불이나 성판매 여성의 성폭력 피해 등 표면화되기 어려웠던 사례들을 발굴 모집하여 공동 대응해 가는 등 사회적 낙인을 무력화시키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전략으로서 ‘성판매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 또한 필수적 과제이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성판매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사회적 시도는 매우 제한적이고 시혜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성판매 여성에 대한 경멸적 태도, 차별적 인식에 기반한 ‘혐오 범죄’, 여성의 삶 근간을 뒤흔들고 암묵적으로 성매매를 강요하는 수단이 되는 ‘아우팅 범죄’는 성판매 여성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죄라는 점에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성판매 여성이 성매매가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하고 이를 시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저항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는 것을 발전적으로 지속해 나가되, ‘현직 성판매 여성’의 전업과 인권 침해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 지원으로까지 확장 되어야 한다. 즉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 주거권, 노동권, 안전을 보장 받을 권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연대를 시도해야 한다.

* 문맥에 따라 성판매 여성/성매매 여성/성매매 피해여성으로 용어를 혼용하였습니다.
인권오름 제 161 호 [기사입력] 2009년 07월 14일 20: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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