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한국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교차

동등성 담론이 낳는 차이의 낭만화를 경계해야

주성진
print
지난 7월 10일 버스에 타고 있던 보노짓 후세인(인도인, 남성) 씨에게 어떤 한국인 남성이 갑자기 '냄새난다,' '더럽다'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 이 남성은 항의하던 후세인 씨의 동료(한국인, 여성)에게도 "조선× 맞냐?", "조선×이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라며 인신공격과 모욕을 가했다. 참다못한 후세인 씨와 그의 동료가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들은 "한국에는 그런 인종차별은 없다"며 외려 가해 남성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후세인 씨는 인종차별을 이유로 가해남성을 모욕죄로 고소했고, 가해남성 또한 후세인 씨를 맞고소한 상태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의 인종주의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그간 한국에서 '인종주의'란 단어는 낯설게만 느껴졌고, 한국인에게 인종주의와 관계된 문제는 언제나 강 건너 불구경 할 수 있는,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반만년을 단일민족으로 결집해온 한국에 '인종주의'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일까? 과연 한국사회에는 인종차별이란 것이 없는 것일까?

근대적 인종주의의 시작

외부 세계의 대상들에게 특정 명칭을 부여하고 구분 짓는 인종주의적 태도는 고대 시대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회적 차별 관념으로서 인종주의가 형성된 것은 제국주의 팽창의 시대인 19세기부터였다. 로버트 영이 주장한 것처럼, 실용주의적이고 무계획적이며 경제적으로 추동된, 주변부에 대한 어떤 행동이었던 식민주의와는 달리 제국주의는 전형적으로 메트로폴리스 중심부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동된, 전 지구적인 권력 정치의 산물이었다. 제국주의 이념은 식민지를 문명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 통념은 인종적 우월성을 전제했다. 왜냐하면 문명과 야만 사이의 근본적 차이 자체가 백인과 비백인 사이의 기본적인 차별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의 전 세계적인 정치 체제를 형성한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인종적 위계 담론은 하나의 차별 관념으로 체계화되고 보편화되었다.

또한 19세기에 폭발적으로 발전한 과학 이론은 인종 논의와 복잡하고 교묘하게 응집되면서 인종주의적 차별 논리를 보편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예를 들어, 고비노의 백작 조제프 아르뛰르와 구스따브 르 봉 같은 일련의 작가들은 인종들을 서로 다른 유형이나 종으로 차별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했고, 인종의 차이가 절대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또한 헤켈은 독일 민족의 우월성과 생물학적 순수성 유지를 위해 열등한 인간 혈통의 제거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우생학을 주창하기도 했다.

푸코는 이 시기에 정신의학과 연결된 "비정상인들에 대한 인종주의"가 "하나의 집단 안에서 그 집단에 위협이 되는 자들을 모두 색출하는 … 내적 인종주의"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푸코가 '신인종주의'라 명명한 19세기 인종주의는 상이한 외부 인종집단들과 투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종집단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부의 일탈적 성원들을 공격하는 새로운 현상이었다.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국가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한 신인종주의는 생물학적 보편주의로 변질되어 동일성을 상정한 하나의 인종 안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하위인종"의 위협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담론이 되었다.

"한국에는 그런 인종차별은 없다" 고?

근대 국민국가는 형성 과정에서부터 민족공동체의 동원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켰고, 누가 민족이라고 거명하기보다는 특정 '인종집단들'을 민족이 아니라고 지목하고 공격함으로써 민족의 순수화를 시도했다. 민족이라는 '상상적 공동체'의 정체성을 구성하기 위해 근대 국민국가는 인종적 타자를 끊임없이 호명해야 했으며, 그들로부터 민족공동체를 '보호해야' 했다. 물론 인종만이 선별 기준이었다고는 할 수는 없다. 이국적자, 소수민족 등 다양한 집단들이 민족의 구성원이 아닌 것으로 지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민족이 기초하고 있는 것이 '허구적 혈연관계'이며 인종이란 유전되는 신체적 특징에 차이가 있다는 '생물학적 믿음'이라고 할 때, 적어도 타자화된 이들 집단은 그들이 인종 개념으로 분류되건 아니건 간에 '인종주의적인 관점'에서 '가상적' 순수민족과 구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유전자가 혹은 혈통이 다르다는 논리 말이다. 한국사회에서도 타자화된 인종차별적 표현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깜둥이, 혼혈인, 잡종, 튀기, 라이따이한, 코시안, 짱깨, 백마 등등. 이렇게 호명된 대상으로부터 순혈의 한국인이 분리되었다.

위 사진:혼인한 한국인과 방글라데시인 (사진 출처: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의 결합

혈연적 가족관계가 근대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민족의 수준으로 확대 ․ 이전되면서 민족은 '확대된 친족' 또는 '운명공동체'로 인식 되었다. 그러나 가부장적이던 근대 가족관계의 확대는 성차별주의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바로 이곳에서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조우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의 경우와 이주민 남성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베트남처녀, 연변처녀 결혼"이라는 현수막 문구가 보여주듯 전자의 경우는 큰 저항이 없이 용인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다면적으로 극심한 반발들에 직면한다. 이것은 '남성이 가계의 혈통을 결정한다'는 가부장적인 믿음과 함께 단일민족으로서 혈통의 순수성이 훼손 또는 오염된다는 인종주의적 인식 때문이다. 이번 보노짓 후세인 씨 사건이 드러낸 것도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교차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이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성 ․ 인종차별대책위원회>라는 명칭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하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백인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던 후세인 씨의 말을 곱씹어봐야 한다. 비서구 사회의 인종주의 문제는 서구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파농의 말처럼, 비서구 식민지 세계에서는 서구가 선/우월로, 비서구가 악/미개/야만으로 제시되는 마니교적 이분법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으며, 식민지민은 열등 콤플렉스를 통한 극단적인 자기부정으로 백인 문명에 동화되고 그것을 열망한다. 이는 비단 이전 식민지 사회들뿐만 아니라 서구가 아닌, 혹은 백인이 살지 않는 거의 모든 지역에 해당되는 현상일 것이다. 따라서 후세인 씨의 지적은 잘 들어맞는다. 우리는 문명화의 표상으로 백인을 자리매기고 흰색에 대한 근접 정도에 따라 다른 인종들의 우열이 정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후세인 씨와 그의 동료가 봉변을 당한 바로 그 달에 백인인 한국인 이참 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것도 한국 사회의 '백색 신화'와 인종차별이 아닐까?

냄새를 피우자!

바야흐로 자본이 세계화된 시대에 이주는 전 지구적 문제가 되었다. 한국사회의 이주민 숫자도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특히 2000년 이후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의 증가는 '다문화'라는 용어를 보편화시켰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순화된 순기능적인 단어로 보이는 '다문화'에는 '순수문화'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야 한다. 다문화 담론 틀 안에서는 순수 민족 혹은 순수 인종의 문화가 중심에 놓이지만, 여타 다른 문화들은 주변에 위치할 수 있을 뿐이다. 다문화 시대에도 인종적 소수자들은 계속해서 배제될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은 결코 한국 사회의 인종주의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우리는 인종의 생물학적 평등 논리와 함께 문화적 가치의 동질성의 논리 역시 뛰어 넘어서야 한다. 호미 바바의 설명처럼, 문화적 동등성 담론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차이들 간의 차이는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이들 간의 간극, 마찰, 갈등 그리고 정치적 관계 등을 부인하거나 희석해서 차이들의 관계를 낭만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차이들의 차이를 드러내고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냄새"가 난다는 인종차별적 모욕에 대한 대응은 냄새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냄새들을 피우는 것이어야 한다. 당사자 운동을 통해, 사회의 영원한 타자로 주변에 머물렀던 다양한 사람들은 주체로서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새롭고 다양한 연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당사자 운동을 지지하고 우리 모두가 운동이 활성화 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제, 한국사회의 냄새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차례다. 차이가 있는 그 냄새 하나하나가 우리라고 주장해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독특한 냄새를 피워야 하고 냄새들의 차이를 지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이다. 냄새를 피우자! 이제 "우리 모두는 독일의 유태인들이다, 우리 모두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다." 라던 1968년 파리의 학생 운동의 저 멋진 슬로건을 다시 내세워야할 때다.

"우리 모두가 한국의 동남아시아인들이고, 우리 모두가 한국의 아프리카 흑인들이다."

덧붙이는 글
주성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65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2일 13:17:48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