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보자 폴짝]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은 일기

돌아온 아빠, 돌이킬 수 없는 상처

한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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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빨갱이 새끼야!”
“뭐? 내가 왜 빨갱이 새끼야!”
“니네 아빠가 빨갱이니깐 너는 빨갱이 새끼지!”

5일 전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던 같은 반 은주가 교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자기네 아빠는 해고도 안 당했고, 공장이 빨리 돌아가야 돈을 버는데 우리 아빠가 공장을 점거하고 있어서 괜히 자기 집까지 망하게 됐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빠가 돌아왔다. 77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우리 아빠가 맞긴 맞는데 한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핼쑥해진 얼굴, 늘어난 주름살...그보다 더 눈에 밟히는 건 아빠의 멍한 표정. 나는 "아빠, 괜찮아?" 한마디 묻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같이 살고 싶은 사람들의 선택

쌍용자동차. 아빠가 다녔던 회사의 이름이다. 쌍용차의 대주주였던 중국의 상하이 차가 '먹튀'로 달아나버리자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이 시작되었다.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가. 아빠는 살아도 괴롭고, 죽어도 괴롭다며 연일 회사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셨다. 2,000여 명을 해고하겠다는 회사의 결정이 내려졌고, 곧이어 아빠는 해고 통지서를 전달 받았다. 며칠 뒤 “이대로 회사에서 쫓겨 날 수는 없다,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빠는 자그마한 짐 꾸러미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같이 살자.’ 아빠와 동료 분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공장에서의 점거 농성이 시작되었다.

위 사진:‘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손수건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 ( 사진 출처: 민중의 소리)

아빠, 그리고 우리가족에게 쌍용이라는 이름은 남의 이름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늘 우리를 쌍용 가족이라고 불렀다.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해야 공장이 잘 돌아가고, 회사가 잘 돌아간다고. 아빠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공장에서 보냈다. 자동차를 만들고, 자동차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과 농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그랬던 만큼 회사에서 잘린다는 건 아빠의 삶이 반 토막 난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 이런 식의 해고는 배신이자 살인이었다. 일하는 사람의 땀이 ‘필요할 때는 가족’이란 말로 한껏 감싸는 척하다 필요 없다고 여겨지니 ‘망가진 기계’를 버리듯 내팽개친 꼴이다. 회사를 살려야하니 여러분이 희생해달라고? 이게 다 회사를 위한 거라고? 도대체 회사가 뭔데? 그 회색의 공장 건물을 말하는 건가? 회사 사장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회사를 경영한다는 사람들의 돈주머니를 의미하는 건가? 이 모든 것이 맞다 치더라도 그러면 회사를 망하게 한 사람들을 없애야 공장도 살고, 돈주머니도 챙길 수 있는 게 아닌가? 왜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묻고,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걸까. 왜 모두의 일터를 지키고, 모두의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공장에 침입한 폭도 취급을 하며 자기 이득만 챙기려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죽이려는 걸까?

공장은 재산이 아니다

쌍용차의 사장이나 채권단 사람들에게 공장은 단순히 재산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장을 지키려는 아빠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공장은 자신의 땀이 서려있고, 그 땀으로 일궈낸 삶과 노동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다. 공장 구석구석에 어떤 기계가 들어서 있고, 그 기계를 돌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심 식사 후 휴식을 취할 때는 어디를 가는 게 좋은지, 도장 공장의 영철이 아저씨가 요즘 기분이 좋은 이유가 뭔지...누가 더 공장, 그리고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잘 꿰고 있는지 시합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회사의 주인, 공장의 주인은 돈 많은 사장과 투자자들이라고? 말도 안 된다. 일하는 사람들이 일손을 놓은 공장은 그저 철골 더미에 불과하다. 그동안 공장을 살아있게 만드는 건 아빠와 아빠의 동료들이었다. 농성 중에도 자동차 도료가 굳지 않도록 선풍기로 열을 식히고, 공장 지붕에 불이 붙으면 소방관을 도와 불을 끈 것도 이 공장은 우리의 공장이고, 언젠가 돌아갈 일터기 때문이었다.

위 사진:쇠도리깨를 사용하여 진압작전을 펼치는 경찰 특공대의 모습 (사진 출처: 민중의 소리)

이 철골 더미 재산을 지키기 위해 회사 측은 공장 안에 물과 음식, 의료품이 반입되는 것을 방해하고 막았다. 전기를 끊고, 수도를 끊고... 용역 깡패들을 동원해 공장에서 파업 농성 중인 사람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여러 인권 단체 활동가들을 두들겨 팼다. 전쟁 중에도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보급품들은 끊을 수 없다는데, 이들이 하는 짓이 너무 잔인해 뉴스를 보다말고 TV를 꺼버렸다. 회사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을 때 정의를 지킨다는 경찰관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방패와 곤봉으로 공장에 있는 사람들을 찍어대고, 망치로 머리를 때리고, 스티로폼도 녹이는 최루액을 헬기를 이용해 뿌리고, 테러 상황에서나 쓴다는 테이저 건을 쏘고. 정부는 쌍용차 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 회사와 노동자들이 원만히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혀 왔지만 공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는 척하면서 사실상 회사 쪽을 돕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힘이 있는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이 싸울 때, 싸움을 보고 있는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힘없는 사람이 다치고 죽을 수밖에 없다. 그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구경하고 있는 거다. 게다가 정부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재산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힘없는 사람들을 쳐내는 데 앞장서고 있다.

CEO 대통령의 새빨간 거짓말

대통령이 거대 기업의 사장 출신이어서 그런 걸까? 기업과 정부는 한 편이고,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나라도 산다는 논리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이 말하는 기업을 살리는 제 1 해법은 일하는 사람들을 자르거나,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위치에 놓는 것이다. 왜 대통령은 서민들의 생활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들의 일자리를 뒤흔들고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왜 정부는 점점 더 피폐해져가는 서민들과 기업에서 잘려 나오는 사람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걸까? 아니다. 이쯤 되면 이들이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거짓말이다. 이 나라를 살리겠다는 건 잘 나가는 기업과 잘사는 사람을 더욱 잘 살게 만들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극적으로 노사 간의 협상이 타결되었고, 아빠는 돌아왔다. ‘무급휴직 48 : 정리해고 52’ . 처음에는 해고자, 비해고자로 나눠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더니 이제는 농성에 참여한 사람들 중 일부만 회사에 남을 수 있게 함으로써 다 같이 살아보자고 끝까지 싸운 아빠와 동료들을 또다시 편 가르기 하고 있다. 함께 싸운 이들이 서로를 다독일 여유도 없이, 누가 남고 누가 떠날 것인가를 두고 또다시 싸워야 한다.

끝나지 않는 악몽

신문에는 다시 일하게 된 아저씨들의 웃음 띤 얼굴, 농성자들이 돌아와도 화해하도록 노력해보겠다는 비해고자 아저씨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화해란 뭘까. 공장이 돌아가지 못하게 해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 아빠가 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말인가. 관대하게 받아들여준 회사와 비해고자 아저씨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한다는 말인가. 회사로 돌아가게 된 사람들은 “52”가 아닌 “48”에 속한 것에 안도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돌아가지 못한 나머지 해고자들은 영영 이기적인 폭도로 남게 되는 건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아빠의 일로만 끝날 것 같지 않다.

우리 동네, 그리고 공장 주변이 조용해지고 있다. 카메라가 사라진 곳에 남은 수많은 상처들. 이제 그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는 이 구석진 곳에서 아빠와 우리 가족, 그리고 아빠와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겠지. 헬리콥터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매일 밤 악몽을 꾸다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생활을 아빠는 당분간 반복하겠지. 아빠는 돌아왔지만, 그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

두 번 다시 이런 일기를 쓰고 싶지 않다.

* 이 글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싸움을 가상 일기로 엮은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한낱 님은 인권교육센타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66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9일 13: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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