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인권교육의 바다가 꿈틀거린다

인권교육의 좌표를 참여자들과 함께 찾아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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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가를 길러내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인권감수성을 끌어올리는 일이나 인권교육 기법을 익히는 일 못지않게 인권교육의 원칙과 지향을 정확하게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권교육이 방향을 잃지 않고 길고도 고단한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최근 법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인권교육가 양성 과정이 앞 다투어 개설되면서 실제 인권교육을 기획, 실행해본 경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권교육을 접한 경험조차 없는 사람들이 인권교육가 양성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갓 인권교육을 접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인권교육은 이래야 합니다’, ‘인권교육은 이렇게 접근하면 좋습니다’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게 되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뜀박질을 주문하는 꼴이다.

지난 9월초 열린 ‘정신보건분야 인권교육 강사 양성교육’도 바로 그런 자리였다. 지난해 정신보건법이 개정됨에 따라 정신보건분야 종사자들에게 인권교육이 의무화되면서 이 분야에서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할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교육이 한창이다. 정신보건분야 인권교육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총 12시간의 인권 이론 교육과 4시간의 강사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고 법에 정해져 있다. 주제가 무엇이든 교육가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갖추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게다가 참여자 대부분은 정신병원이나 요양시설 등에서 근무해왔을 뿐, 교육 경험은 거의 없는 분들이다. 이런 조건을 가진 참여자들과 인권교육의 원칙과 지향을 정리해야 할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


날개 달기 - 좌표가 될 열쇠말 꼽아보기

인권에 관한 교육이 ‘사람들은 인권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인권교육에 관한 교육 역시 ‘사람들은 인권교육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허허벌판에서 곡식을 일구라고 주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권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끄집어내는 데 좌표 구실을 할 만한 형용사와 동사들을 다양하게 꼽아 보았다.

‘인권교육의 힘을 이야기하는 데 필요한 낱말에 뭐가 있지? 우렁차다, 든든하다, 부른다, 세운다, 던진다와 같은 낱말을 제시해보면 좋겠지. 그럼 인권교육의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데 필요한 낱말에는 뭐가 있지? 소소하다, 뛴다, 촉촉하다, 매섭다와 같은 낱말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당연히 인권교육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만 기대해서는 안 되니까, 인권교육에 대한 오해나 부정적인 시각을 털어놓는 데 필요한 낱말도 하나 넣어야겠지? 그렇다면 불편하다가 포함되어야겠군.‘ 이렇게 준비된 열쇠말들을 갖고 본 교육으로 출발했다.


더불어 날갯짓 - 인권교육의 바다에는 어떤 생물체가?

참여자들에게 ‘인권교육은 …… 소소하다’, ‘인권교육은 ……부른다’와 같은 형식으로 문장카드를 만들어 모둠별로 서너 개씩 나눠주었다. 모둠별로 인권교육은 왜 소소할까, 인권교육은 무엇을 부를까 등을 토론해서 문장을 풍성하게 완성해보도록 요청했다. 완성된 문장은 바다 생물 그림이 그려진 종이 위에 적어달라고 했다. 이 종이들을 바다 그림이 그려진 큰 종이 위에 붙이면서 발표를 이어갔다.



활동을 끝마치고 나니 ‘인권교육의 바다‘가 어떤 생명체로 꿈틀거려야 하는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참여자들 대부분이 인권교육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거나 부족했는데도 놀랍게도 인권교육의 성격이나 원칙을 거의 정확하게 짚어냈다. 참여자들이 직접 찾아낸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 인권교육을 통해 인권을 인정받는 소수자(정신장애인 등)의 눈가는 촉촉하다
▲ 인권교육은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촉촉해진다
▲ 인권으로 들이대면 매섭다
▲ 인권교육은 열정적으로 앞을 보고 뛰어야 한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하여 포에버~
▲ 인권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는 교육이기에 내 가슴이 뛴다
▲ 인권교육은 인생이 지속되는 한 길게 이어져야 한다
▲ 인권교육은 많은 의문을 던진다
▲ 인권교육은 희망을 보여주어서 든든하다
▲ 인권교육은 법과 제도 사이에 있는 종사자들에게 불편하지만, 우리 종사자들도 더 노력해야 한다.
▲ 인권교육은 나를, 사람을, 인간존중을, 그리고 초심을 부른다
▲ 인권교육은 또 다른 인권교육을 부른다
▲ 인권교육은 열정과 공감을 부른다
▲ 인권교육은 기본을 세운다
▲ 인권교육은 사람(존엄, 자존감)을 세운다
▲ 인권교육은 소소하고 더 소소해져야 한다(환자들과의 눈빛 맞추기에서부터)
▲ 인권교육은 사람의 독특한 색채를 빛나게 하여 알록달록하게 만든다
▲ 인권교육은 가지각색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알록달록하다
▲ 소수자(정신질환자 등)의 아픔과 고통을 외치는 교육의 소리가 우렁차다


참여자들이 찾아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보니 인권교육의 목표인 권한 강화, 인권교육의 가장 중요한 자료인 소소한(또는 소소하다고 치부되는) 삶들, 인권교육이 놓치지 말아야 할 원칙의 매서움, 인권교육이 가져야 할 긴 호흡과 같은 내용들이 절로 정리된다. 좌표가 될 낱말들을 미리 제시하니 인권교육의 지향점을 참여자들 스스로 쏙쏙 찾아낸 셈이다. 더구나 각각 문장을 구성한 이유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신보건분야 종사자’라는 참여자들의 위치와 경험이 드러나다 보니, 더욱 더 현장감있는 인권교육론이 전개될 수 있었다.

마음을 맞대어 - 학습된 무기력과 맞서는 인권교육

활동을 끝내고 나서 자료 화면과 함께 인권교육의 원칙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는 정리강연으로 넘어갔다. 참여자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정리 강연에 대한 몰입도도 높다. 참여자의 입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좀더 체계적인 언어로 재정리해주고 좀더 넓은 인권교육의 경험과 고민으로 연결시켜주는 일만 하면 되니, 정리 강연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류은숙의 <인권을 외치다>에 따르면, 19세기 노예주 사이에서 유행했던 노예훈련법의 마지막 단계는 ‘자신의 무력함과 의존성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학습된 무기력’에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여전한 인권운동의 과제이다. 이는 인권교육이 왜 절실한지, 참여자가 주체가 되는 교육과정을 설계하기 위해 왜 고심해야 하는지, 인권교육가가 왜 인권감수성을 담금질하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되는지, 인권교육가 양성과정에 참여한 이들 스스로 고민하게끔 해야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배경내 님은 인권교육센타 ‘들’의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70 호 [기사입력] 2009년 09월 16일 14: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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