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유혹] 난 '하루'가 불편하다

남과 여가 아닌 '그 사이'의 무수한 이야기들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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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쿠하나 치요의 'IS(아이에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는 인터섹슈얼(inter sexual), 반음양자로 불리는 내적 외적으로 여자와 남자의 두 성별을 함께 지니고 태어나 살아가는 이들이 이야기를 그린 만화이다. 의학발표에 의하면 2000명중 한 명은 인터섹스로 태어난다고 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부모와 의사에 의해 강제적으로 여성 혹은 남성으로 성별이 선택하여 수술(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해버린다. 하지만 이들은 성장하면서 남들과 다른 자신의 신체, IS라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기에 자신을 스스로도 '비정상'여기며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만화 'IS'는 IS라는 이유로 받게 되는 신체적 고통, 성정체성의 혼란, 사회적 차별과 같이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IS인 '하루'의 삶을 통해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하루의 ‘IS로 살아가는 이야기’

어떤 부부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IS였다. 의사는 부부에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두 성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술을 권유한다. 어머니는 고민 끝에 아이가 커서 스스로 자신의 '성'을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부부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아이를 IS로 키우기로 결정한다. ‘하루’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의 삶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태어난 하루에게는 친구사귀기, 학교생활하기, 사랑하기, 자신의 미래를 꿈꾸기 조차 너무나도 힘겹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루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 감추기 보다는, 자신이 IS임으로 이야기한다. 자신이 IS임을 드러내고 IS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자신을 힘들게 하지만, IS인 하루는 IS의 존재를 부인하는 세상에 ‘자신이 존재함’을 더욱 강하게 얘기하며 이로 인한 차별과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는 이야기이다.

만화에서 보여주는 하루의 삶은 IS들에게 하나의 바람일 것이다. 자신을 차별의 눈으로 만 바라보는 세상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고 힘들지만 조심스럽게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낙인과 차별, 관계의 단절 등에 대한 두려움은 IS 본인 스스로를 숨기며 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나를 포함하여 이 만화를 접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IS에 대해 너무나 생소해 하고, 이야기 자체에 많은 놀라움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에서 IS는 철저히 숨겨져 있고 이로 인해 자신이 IS임을 드러내기란 너무나도 힘겨운 일임을 느낀다.


나는 '하루'가 불편하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습관의 힘에 의해 겉으로 보이는 성별 특성만으로 순식간에 여성 혹은 남성으로 구분해 버린다. 여성 아니면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구분은 태어나면서 익히고 습관화된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는 극단적 두 지점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성'들이 존재하며 밝혀진 것만 4000여개가 된다. 이분법적 성별구분의 습관은 여성과 남성이 아닌 성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비정상’으로 규정짓는다. 내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라며 말로는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내 속에 습관화 되어 버린 차별의 시선과 이로 인해 내 스스로 느끼는 불편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의 습관은 차별을 용인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IS인 하루가 불편하다. 하루는 IS인 자신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세상에게 힘겹지만 끊임없이 자신이 ‘IS'임을 커밍아웃한다. 이로 인해 하루 자신이 더욱 큰 절망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존재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만들어 나간다.

이런 하루의 모습은 내 스스로를 속이며 숨겨 왔던 '이분법', '정상성'과 마주보게 한다.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것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상이 되기위해 누군가는 존재자체가 부인되어야 하고 비정상인이 되어야 한다. 과도한 생각일까? 하지만 난 하루가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 전개상 불가능하지만) 하루의 커밍아웃이 멈추기를 바라는 맘이 내심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내속 습관화 된 이분법과 정상성에게 하루는 끊임없이 커밍아웃하며 다가왔다.

그래도 '하루'를 응원한다!

그렇지만 이 만화를 쉽게 닫을 순 없다. '이분법', '정상성'이라는 나의 습관은 '하루' 뿐 아니라 나 자신 또한 괴롭히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나에게 정상이라는 잣대를 끊임없이 제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정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은 숨겨야 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정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내안의 비정상을 숨기지 못하면 그것은 열등감으로 나 스스로를 괴롭히게 만든다. 하루의 끊임없는 커밍아웃은 나에게 '너두 솔직해져 봐', '구별 짓고 차별하는 세상보다 너 자신에게 솔직해 지고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게 더 중요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소심한 나의 맘에 균열을 가져오고 다시 대범하게 해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이 땅의 모든 하루를 응원하는 만화 IS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고 완결되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승화 님은 빈곤과 여행에 관심과 시간이 많은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72 호 [기사입력] 2009년 09월 30일 14:5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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