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차별금지법이 정말로 차별을 금지할 수 있으려면

반차별운동으로서 차별금지법 입법운동 전략

박석진
print
차별 당해본 사람들은 안다. 차별이 얼마나 나쁜지.(심지어 차별 당했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들도 안다) 차별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부당하게 제한하거나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래서 ‘차별은 나쁘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차별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차별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누군가는 ‘그게 무슨 차별이냐’고 한다. 차별은 사회적 편견과 더불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엇이 차별일까를 두고 끊임없이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버스 안에서 인도인 남성과 한국 여성에 대해 한 한국 남성이 “더러운 아랍인”, “깜둥이와 다니는 조선×”이라고 욕했을 때, 이것이 차별인지 아닌지 논란으로 분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국회의원은 인종차별금지법을 발의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그 사건이 과연 인종차별 사건이었는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못했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인종차별금지법 논의는 쑥 들어갔다. 당시 사건의 당사자들이 제기한 성차별을 둘러싼 논의는 아예 거론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고, 누구도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결합되었다’는 의미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기 힘들어 했다.

그 가운데 인종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반차별운동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게다가 올해부터 연령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연령차별금지법이 실제로 어떠한 차별들을 금지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장애인들의 열망을 모아 제정·시행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또 얼마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데 기여하고 있을까.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지면 정말로 차별이 없어질 수 있을까? 아니, 반차별운동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미와 우려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큰 의미는 차별이 법에 의해 처벌이나 구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차별로 인해 고통을 받아온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차별에 대한 처벌과 구제는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차별을 통해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입어온 피해자들에게 실질적 구제는 생존이 걸린 시급한 문제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법적 조치들이 차별을 예방하는 효과도 가질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을 시정하도록 명령함으로써 차별 행위를 바로잡고, 또 차별 가해자에게는 차별 행위를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징벌적 의미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나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차별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만들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담론으로서 ‘차별’을 논의하는 것은 다소 추상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구체적인 차별 사건을 통해 이야기한다면 차별에 대해 더 많은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차별의 의미와 범위, 여러 차별 사유들이 현실에서 발생하는 맥락 등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에서 우려되는 점 역시 없지 않다. 이러한 우려는 차별금지법 제정 의미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우선, 차별 금지가 제도 차원에서 논의되면서 차별에 대한 담론이 제도에 갇혀 좁아질 수가 있다. 법은 종종 ‘사회적 합의의 부족’을 이유로 차별을 보수적으로 해석하고, 차별의 의미를 제한함으로써 법적인 개념으로 명확하게 하려다 보니, 차별의 현실적이고도 통합적인 양상을 고민하기 보다는 차별 사유별로 더욱 선명히 구획함으로써 전형성을 확보하려 한다. 지금까지 여러 사회적 논의가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한정되고 오히려 보수화되어온 사례는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 차별금지법이 논의되고 시행되는 과정에서 미처 법으로 포괄되지 않는 차별은 ‘차별’로 인식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차별금지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차별은 아예 ‘차별’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을 수 있다. 물론 차별금지법은 ‘모든’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법이지만,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맥락에서 차별 사유나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누락되는 부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 사진:21010년 2월 18일 반차별공동행동은 차별금지법 상상더하기 포럼을 진행했다.


어차피 법은 모든 현실을 담을 수는 없으니까. 이러한 상황은 차별들 사이의 위계, 즉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어 자칫하면 반차별운동 스스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또 법에만 위반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법으로 다룰 수 있는 것 이외의 모든 차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하게 될 수도 있고, 법으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현실의 차별 행위에 대해 꼼꼼하게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도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행위 혹은 결과만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한계를 가진다. 차별 행위만을 금지한다고 차별이 없어질까? 당장 눈에 보이는 차별이 없어진다고 차별적인 생각과 마음까지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현상과 행위로 차별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를 바꾸고 사회 구조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때 차별을 근본적으로 없애나갈 수 있다.


차별금지법 입법 과정에서 반차별운동의 과제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입법운동과 더불어 차별금지법에만 국한되지 않는 반차별운동은 필요하다. 여전히 △ 차별이 무엇인지/무엇이 차별인지 △ ‘차별은 나쁘다’를 넘어 차별을 어떻게 설명할지 △ 현실에서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언어와 담론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꾸준한 모색이 필요하다. 여러 차별 사유들을 가로지르는 차별의 공통 특징이 무엇인지, 차별 사유들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서로 중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여러 차별들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는 어떤 것들이고 그것들은 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등을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장애/여성/이주/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이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고 또 어떻게 서로 만나서 중첩되고 있는지, 이러한 차별을 구성하는 사회 구조-자본주의, 가부장제 등과 같은-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실 차별금지법 입법운동과 법에만 국한되지 않는 반차별운동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공동의 운명 속에 있다. 차별금지법이 어떻게든 만들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면, 차별금지법 입법운동의 과정에서 차별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논의와 담론의 확장과 발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제도는 담론 형성의 과정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제도가 우선이냐 담론이 우선이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회운동이 얼마나 주도하고 개입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운동의 성과가 제도화되는 순간 제도는 보수화되기 때문에 제도를 넘어서는 반차별운동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차별금지법 입법운동의 가장 큰 의미는 반차별운동의 주체를 대중적으로 조직해내는 점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처벌/구제를 통해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 주체들을 조직하기에 수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7년여 운동 기간을 통해 만들어진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법 제정 과정에서 장애 당사자들을 조직함으로써 장애인 대중운동의 형성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어냈다.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에서 보수 기독교계와 재계의 반발로 성적 지향, 출신국가 등 7개 차별 사유가 삭제되어 ‘차별을 조장하는 누더기 차별금지법’ 논란이 일었을 때, 이에 항의하는 성소수자들이 광범위하게 결집했던 것도 떠올려볼만 하다.

최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또다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연령차별금지법이 반차별운동과는 무관하게 소리 소문 없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일반법으로서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시도는 일단 긍정적이다. 여러 차별 사유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중첩되거나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차별 사유별로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그 자체로도 충분히 큰 의미를 갖지만, 장애인이자 비혼/이주/여성/성소수자이기도 한 경우의 차별을 설명하기에는 한계적이다. 게다가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논란을 거치면서 ‘성적 지향’과 같은 차별 사유가 특히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차별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반차별운동이 인식해야 할 중요한 지점을 알려주고 있다. 즉,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서 다른 차별을 오히려 유발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상황이 우리 사회의 ‘차별’을 이해할 수 있는 반차별운동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성적 지향’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차별 현실과 담론은 반차별운동의 중요한 과제이자 차별금지법 입법 과정에 있어서도 논쟁의 최전선에서 차별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지속적으로 밝혔다. 최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과연 현 정부가 생각하는 ‘차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교육정책, 경제정책, 복지정책 등 다양한 정부 정책들 속에서 차별을 오히려 조장하며 강화하고 있는 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 한다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비극적이기도 하고 희극적이기도 한 이 상황 역시 차별금지법을 고민하고 있는 반차별운동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반차별운동이 이러한 상황을 능동적으로 주도해나가고자 하는 태도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193 호 [기사입력] 2010년 03월 10일 13:39:21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