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의 인권이야기] “그들을 혼자 두지 마세요”

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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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또 저금통에 손을 댔다. 이번이 네 번째. 새벽에 일터에서 돌아와 이 상황을 전하면서 언니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의지를 넘어선 눈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달래고 으르고 구슬리고 쥐어박고 애원하는 등 그 버릇을 없애려고 별별 시도를 다해 온 터였다. 언니는 장차 요리사가 되겠다던 딸이 대도(大盜)로 유명해질 것 같아 눈앞이 깜깜했을 것이다.

한두 번이야 성장기 통과의례쯤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네 번째인지라 다음 날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아이 둘이 있는 친구도, 학교 선생님도, 청소년 상담사도 진단 결과는 한결같았다. 애정 결핍.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게 결정적이리라는 분석이었다.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니 전문 기관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는 이도 있었다. 고로 조카는 저금통에 손을 댐으로써 자신에게 관심을 유도했다는 말이다.

애정 결핍, 그 치명적인

애정 결핍이라. 이혼한 후 혼자 조카를 기르는 언니에게 이보다 더 치명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한 부모 자녀이면 으레 반쪽짜리 애정을 받으며 자라리라는 세간의 편견도 편견이려니와 실제로 충분히 아이에게 관심을 쏟을 수도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언니는 작은 주점을 운영한다. 저녁나절에 가게를 열어 새벽 서너 시쯤 닫는다. 새벽녘에 들어와 잠깐 눈을 부쳤다가 조카를 깨워 학교로 보내는 식이다. 오후 서너 시쯤 조카가 돌아올 때까지 잠을 잘 수 있지만, 잠만 잔 날은 드물다. 청소며 빨래며 집안일도 해야 하고 공과금 납부 등 자잘하게 밖에서 처리할 일도 꽤 많다. 어쩌다 학교에서 공개 수업 등으로 호출이라도 하는 날엔 서너 시간도 못 잔다. 잡다한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와선 곧바로 저녁을 준비해 조카에게 먹이고 가게로 바로 튀어가야 한다. 이렇게 빡빡하게 짜인 24시간 스케줄에 사소한 변수라도 생기면 나머지 일들이 얽혀버리고 만다. 자연 신경질이 늘고, 조카에게 그 불똥이 튈 때도 있다.

이런 현실에서 조카와 얘기를 나눌 시간이라야 밥상머리에 앉았을 때이다. 이때도 다음 일로 마음이 급한 언니는 숙제나 준비물 등 가장 필요한 것들만 다그쳐 묻게 된다. 조카가 시원스레 대답을 하지 않거나 숙제할 공책이라도 학교에다 놓고 오는 날엔 새된 소리가 반사적으로 터져 나온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조곤조곤 물을 여유는 좀체 없다. 조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언니가 고성, 엄포, 으름장, 책가방 문 밖으로 집어던지기 따위 강렬한 행동으로 대응하는 것도 짧은 시간에 빨리 반성을 이끌어 내려는 방법을 찾다 그리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게 일 때문에 마저 다 말하지 못하고 간 적도 있다던 얘기를 떠올리면 말이다.

언니가 서둘러 가게로 간 후 조카는 마지못해 숙제를 하고 나머지 시간엔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게임을 하다 잠이 든다. 아이와 좀 더 시간을 보내려면 언니가 직업을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도 더러 있다.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으라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게 들리는 말이다. 가방끈 짧은 마흔 넘은 아이 엄마가 일할 곳은 많지 않다.

“아이를 혼자 두지 말라”는 공익광고(물론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예방 캠페인이나)를 본 적이 있다. 아이라면 이가 갈려 밤마다 놀러 나가는 부모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 부모는 이를 갈더라도 아이 곁에서 갈길 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혼자 둘 수밖에 없는 부모들은 분명 존재한다. 국가든 뭐든 부디, 이 부모들을 혼자 두지 않았으면.

덧붙이는 글
녹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돋움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01 호 [기사입력] 2010년 05월 04일 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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