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인권이야기] 감시카메라(CCTV) 현실의 벽 넘기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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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2지방선거 때, 내가 사는 동네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 시민후보의 정책을 도와준 일이 있다. 지역의 정책을 꼼꼼히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지만, 현실을 토대로 이상적인 정책을 생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예컨대, 감시카메라(CCTV) 설치 문제만 하더라도, 총론적인 방향이나 가치에 특별한 흠결은 없더라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 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방범용 감시카메라(CCTV)' 설치에 대한 주민들의 요청은 대단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주민의 85%가 감시카메라(CCTV) 설치에 찬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주민들이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사생활 침해는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근래 우리 동네에서 일어난 굵직한 범죄사건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불안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밤거리가 불안하다’는 하소연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 자녀가 딸이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비단 자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러 모임이나 토론회에 참석해보면, 10대 여성이든 학부모든, 혹은 나이 많은 여성이든 ‘범죄에 대한 불안’ 심리는 한결같았다. 심지어 지역의 대표적인 한 여성단체의 간부도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방범용 감시카메라(CCTV)’에 관한 한, ‘사생활 침해’는 우선순위에서 한 참 멀어져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나는 이 지점에서 감시카메라(CCTV)를 ‘인권’의 문제로 설득하기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기본권이 일부 포기되더라도 ‘안전’을 보장받길 원했다. 나는 이러한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자기방어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범용 감시카메라(CCTV)’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시카메라(CCTV) 설치 문제나 노동자를 감시하기 위해 작업장에 설치한 감시카메라(CCTV)와는 결이 다른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똑같은 관점에서 볼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범죄 사고가 빈번한 지역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위 사진:다양한 감시카메라들


보육시설에 감시카메라(CCTV)를 설치하자고 요구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체벌, 먹거리 등과 관련해서 시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부모들은 감시카메라(CCTV)로 침해되는 아이들의 인권, 혹은 시설관계자의 인권보다, 체벌로 침해되는 아이의 인권이 더 유해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사생활 침해’의 논리는 설 자리가 없다.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는 보육시설 관계자가 있는 한, 감시카메라(CCTV)를 설치하자는 요구는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 뻔하다.

이것은 불신의 문제다. 대부분의 보육시설은 시설 내부를 부모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부모들은 시설을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불신이 쌓이고 악순환에 빠진다. 급기야 종착점인 감시카메라(CCTV)로 귀결된다. 어쩌면 감시카메라(CCTV)는 부모가 시설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궁여지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를 논하기에 앞서, ‘불신을 해소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완벽한 해답은 없겠지만, 경험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개방’과 ‘부모참여’다. 숨김없이 내부를 공개하면서, 부모들도 시설 운영에 참여한다면 상당 부분 불신은 해소될 수 있다. 이미 여러 시설에서 그것을 대안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랬을 때, 모두의 인권이 존중될 여지가 있다.

‘방범용 감시카메라(CCTV)’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 드러난 사실이지만, ‘방범용 감시카메라(CCTV)’의 ‘경제적 효율성’은 낙제점이라 할만하다. 범죄예방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예산폭탄’이라 할 만큼 낭비적 성격이 짙고, 감시카메라(CCTV)에 의존함으로써 방범 순찰력이 감소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본다면, 감시카메라(CCTV)에 투자되는 막대한 예산을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찰인력이나 방범요원이 밤길 곳곳에 배치된다면 시각적인 안전감은 매우 크다. 고용증대에도 한 몫 할 수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자율방범대를 지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주민참여, 공동체성, 자치역량 등의 풀뿌리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을 지켜내는 것만큼 바람직한 것은 없다.

‘인권’은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인권’이라는 가치를 포기하거나 후순위로 밀어내기도 한다. 때론 ‘안전’이나 ‘경제’가, 혹은 ‘참여’나 ‘자치’가 우선되기도 한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어떠한 가치도 우월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번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깨달음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6.2지방선거 당선자들이 감시카메라(CCTV) 설치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는 것이다. 나를 감시하는 ‘빅브라더’가 곳곳에 설치될 것을 생각하니, 찜찜하고 불쾌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김현 님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입니다.
인권오름 제 206 호 [기사입력] 2010년 06월 09일 15: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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