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1] 불복종운동의 새로운 발견

순응을 거부하며...합법적 불법을 향하여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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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1만5천여 명이 서울로 운집한 한미 FTA 반대집회에서 경찰의 물리력을 넘어 광화문 사거리를 뚫고 청와대로 가기위해 싸웠던 그 시위대는 정작 미대사관 앞에서 조용히 마무리 집회를 끝내고 흩어졌다. 공식적인(?) 광화문 사거리까지의 행진 이후, 프로그램의 부재는 각각의 운동진영이 알아서 분노의 수위를 조절해가며 행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그 현장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답답함은 참여자로서 나 스스로 어떤 실천이 가능한지 되묻게 했다.

‘집회로 인해 교통체증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운동의 기획은 힘들까? 차벽 안에 갇힌 집회의 자유를 넘는 시위는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사람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운동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불복종 운동’을 떠올렸다. 불복종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광범위한 ‘동의’를 확보하는 가운데, ‘직접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실천전략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또한 ‘합법’의 테두리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뛰어넘는 운동의 기획과 실천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특히 민주주의 법치국가라는 틀에서 ‘적법 절차’를 가장해 권력자들이 남용하는 자의적이고 부정의한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나타난 ‘불복종 운동’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서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검토해야할 운동의 전략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하라

자유인의 피난처가 되기를 자임하던 나라에서 전체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상태에 있고 그 국가가 멕시코를 점령해 군법으로 지배할 때, 저항을 일깨운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을 통해 ‘불복종 운동’의 영감을 오늘까지 전파하고 있다.

소로우는 “우리는 모두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며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그 가운데 그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이 중지되도록 호소했다. 소로우는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 폐지와 멕시코와의 전쟁중지 라는 소신을 가져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의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그 법을 어기라”고 강조하며 “당신의 생명으로 하여금 그 기계를 멈추는 역마찰이 되도록 하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실천의 방법으로 도망치는 노예를 캐나다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1847년 멕시코 전쟁에 반대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소로우의 『시민불복종』은 노예제를 반대하며 다양하게 저항을 일구어온 퀘이커교도와 평화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되었고 이들의 노고는 1830년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전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중적인 불복종운동을 보여준 간디, 마틴 루터 킹

영국 식민통치의 부도덕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대중적인 불복종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한 간디는 소로우의 불복종을 새로운 면모로 탄생시켰다. 소로우가 불복종 운동을 의로운 개인의 결단으로 시작했다면 간디는 소수에 의한 영국 식민통지에 대한 저항을 다수 인도 민중의 불복종 저항운동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1930년 3월 소금세 신설에 반대하여 사티아그라하(진실에의 헌신) 운동을 시작했다. 영국 통치에 대한 간디의 불복종 운동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 운동에서 무려 6만 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위 사진:대중적 불복종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간디<출처; www.temple.edu>


간디에게 있어서 불복종은 법을 초월하는 가치체계이며 불복종의 힘은 진리추구에서 나온다. 간디는 법에 매몰되지 말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천하라고 주문한다. 간디에게 있어서 악법은 인간이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요하는 법이거나 마땅히 할 것을 억지로 금하는 법으로, 도덕과 정의의 원칙을 위반한 법을 구분해내고 필요하다면 그것에 불복종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 의무는 어디에 근거하는가? 간디는 악의 존재 자체는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자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한다. 악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법을 만든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에 의해 고통 받는 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악법에 대한 저항은 불복종으로 협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디는 불의와 부정의에 협조하지 않는 불복종을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며, 대중의 힘으로 지배 집단에 항거하는 수단으로 불복종 운동을 실천하면서 혁명적인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천은 억압받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흑백분리주의에 협력을 거부한 버스안타기운동

불복종 운동의 대중적인 힘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는 미국 몽고메리에서 불붙었다. 1955년 12월 1일 로사 파크스 씨는 버스에 올라타 백인전용좌석 바로 뒤에 앉아있었다. 조금 후에 백인남성이 타자 운전사는 그녀에게 뒤로 가라고 명령했으나 그녀는 거부했고 결국 흑백분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전용으로 지정된 좌석에 백인들이 모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백인이 더 승차할 경우 운전사는 백인전용석이 아닌 좌석에 앉아있는 흑인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고 이런 명령을 따르지 않는 흑인은 체포됐다.

위 사진: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혐의로 연행된 로사 파크스<출처; en.wikipedia.org>


로사 파크스 씨의 불복종을 계기로 흑인사회에서는 흑백분리주의에 대한 광범위하고 대중적인 버스안타기운동이 전개되었다. 흑인들은 집에서 학교, 일터까지 2-3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 가거나 자전거, 카풀 등 대체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버스안타기운동은 흑백을 분리하는 사악한 제도에 협력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마틴 루터 킹은 항의할 권리가 있음을 알렸고 항의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법률을 바꾸어 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마틴 루터 킹은 두 번이나 감옥에 수감되고 협박, 폭파 등 일상적인 테러의 위협에 시달렸으나 불복종 저항을 고수했다. 불복종 저항운동의 한복판에서 마틴 루터 킹은 끊임없이 대중들과 소통했고 반차별 인식의 저변을 확산시켰으며 불복종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연대했다. 마침내 1956년 11월 13일 미연방최고법원이 흑백분리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12월 21일 흑백통합버스가 몽고메리를 달렸다.

불복종운동의 인권법적 정리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실천적으로 발전해온 불복종운동은 일부 인권법 학자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자유주의 법학자 존 롤스는 ‘불복종이란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려는 의도를 가지고 일반적으로 법에 반대해서 행해지는 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인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자신의 판단에 따라 부정의한 법률에 불복종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도덕적 의무로 강조했으며 시민불복종이 성립되기 위해서 △불복종 행위가 심각한 부정의에 대한 항의 행위이고 △가능한 충분한 법적 수단을 강구한 이후 △불복종 행위가 헌법질서의 기능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쉴러 슈프링고룸은 불복종을 ‘공적으로 선언되고 윤리적·규범적으로 근거 지워진 상징적 항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의 의식적인 법 위반’이라고 보았다. 그는 시민불복종이 성립되기 위해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행위가 의식 있는 법 위반으로 나타날 것 △공공성을 띌 것 △비폭력행위일 것 △정치ㆍ도덕적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 △중대한 불법에 항의하는 행동일 것 △항의수단이 목적과의 관계에서 상당성을 지닐 것을 제안했다.

자유주의적 불복종운동의 한계를 넘어

서구의 자유주의적 법학자들은 저항운동의 일부로 성장해온 불복종운동을 법 중심적으로 해석하면서 또다시 법의 테두리 속으로 가두려 하고 있다. 존 롤스의 주장처럼 불복종 행위는 어디까지나 ‘헌법질서의 기능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충분한 법적 수단을 강구한 이후’에만 가능하다거나 쉴러 슈프링고룸처럼 기준이 불명확한 ‘중대한’ 불법에 항의하는 행동이 ‘법’ 위반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불복종운동의 요건으로 ‘비폭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비폭력’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서구 자유주의 진영의 ‘비폭력’ 개념은 일정 정도 제한적인 개념으로서 저항운동과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위 사진:"법을 넘어선 저항은 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핵심이다"<출처; www.organizedresistance.org>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이 항상 옳다는 관념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법학자들이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이 위법하거나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될 때 이에 저항하는 것을 ‘저항권’이라는 인권의 이름으로 규정했다. 저항권은 자연법사상을 통해 근대시민혁명을 가로질러 나타나 봉건질서를 타도하는 혁명적 힘을 가진 근대시민혁명의 이론이었지만, 혁명 이후 저항권은 ‘엄격한 제한’을 통해 점차 형식화 되었다. 근대국가에서 저항권은 ‘극히 예외적이고 한정적’이며 ‘극도의 불법’을 교정하기 위한 조치로서만 승인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저항권은 그 어떠한 부당한 제한으로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복종운동 역시 대중운동의 역동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떠한 특정한 조건으로 가둬질 수 없다. 오히려 저항운동 중에서 불복종운동은 △기존의 주류 권력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예상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갖고 △의도적으로 위반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불복종운동은 어떠한 틀거리에 갇히지 않고 대안적인 질서를 ‘향하는’ 운동으로 움직여왔음을 떠올린다. 오히려 불복종운동은 ‘복종에 대한 거부’를 넘어 ‘주류적인 권력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운동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주류 권력 질서와 이를 지탱하는 구조에 대한 일상에서의 저항은 불복종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불복종의 권리는 헌법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기준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인권 옹호를 위한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저항권의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에서 밝힌 저항권은 인간의 권리를 억압하고 폭력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저항을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한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戰犯)재판은 아무리 자국의 법률과 명령이 행위의 이유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부당한 법률과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항권의 행사를 국제법상 권리이자 의무로까지 승격시킨 바 있다. 이어 세계인권선언 제정 50주년 해인 1998년 유엔 총회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증진, 보호하기 위한 개인·단체·기관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선언문'(결의안 53/144, 이하 인권옹호자 선언문)을 채택했다. 인권옹호자 선언 12조는 모든 사람은 인권침해에 '평화적으로 저항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권옹호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국내법에 의해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형식적으로 민주적인 법과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이 지속적인 이해와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하기 위해서, 불복종 운동은 ‘더 나은 질서를 향한 호소’로 작동한다. 이것이 때로는 ‘실정법을 향한 도전’으로 때로는 ‘합법적인 불법’으로 등장한다. 불복종의 권리는 빼앗긴 인권을 되찾고 새롭게 만들어질 인권의 지도를 그리게 한다.
인권오름 제 17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17일 0: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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