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2] 평택에서, FTA에 맞서, 불복종을!

2006년 하반기 대중적 불복종운동을 상상하며

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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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의 사회운동은 평택 전쟁기지 건설 저지 투쟁에 이어 한미 FTA 협상 저지 투쟁에 집중하였다.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이 한국에서 경제적, 군사적으로 관철되는 과정이 위의 두 사안으로 표출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의 사회운동은 정파나 입장 차이를 떠나 이 사안들에 적극 대처해왔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FTA 2차 본 협상을 저지하기 위해서 장대비 속에서도 수만 명이 청와대로 진격하였고, 이런 투쟁은 일정 정도 정부의 태도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평택이나 한미 FTA나 정부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전면적이고 한국의 국가권력이 총동원되어 이를 관철하려 하는 사이 생존권마저도 위협받는 민중세력들과 시민세력들이 오랜만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총체적인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소위 ‘87년 헌법 체제’의 실질적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성과마저도 잃게 된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에 비해서 사회운동은 조직된 대중들을 동원하는 군중집회와 시위, 또는 기자회견과 같은 형식의 관성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권력을 긴장하게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운동의 무기력함에 대한 회의가 사회운동 진영에는 광범위하게 깔려 있다. 수만 명이 운집하는 집회라고 해도 경찰의 차벽 안에 갇혀서 고립적으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책적 반영도 거의 되지 못하고, 영향력 있는 언론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어떻게 하면 위력적인 대중운동을 전개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불복종운동 사례를 살펴보면서 지금 현 시기 불복종운동의 의미와 방안에 대해 고민해본다.

한국의 사회를 변화시킨 불복종운동

불복종운동은 법이나 정책에 대한 불복종을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실천하는 운동이다. 이런 불복종운동은 법의 이름으로 또는 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법률이나 정책이 결정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문제 삼는다. 그렇다고 모든 운동이 불복종운동은 아니다. 그 경계는 애매하지만, 불복종운동이기 위해서는 법적인 한계를 넘으려는 의도적인 직접행동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예상되는 피해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불복종운동은 사익이나 일부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만큼 제기하는 문제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국내 불복종운동의 가장 고전적인 사례는 1986년부터 4년간 진행된 KBS 시청료 거부운동이다. 군부권력에 장악돼 일방적으로 정권의 주장만을 방송해댄 언론을 더 이상 참지 못한 한 농민이 시청료 납부 거부를 선언했다. 부당한 군부 정권에 동조할 수 없다는 적극적인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에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 운동에 동참했다. 이에 따라 신군부세력의 언론 통제 수단이었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새로운 방송법이 제정되는 등의 성과를 낳았다.

위 사진:불복종운동인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 현장.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혼자선 일반 버스를 탈 수조차 없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공 교통수단은 그 자체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야기한다.<출처; 노들장애인야간학교>
최근의 불복종운동의 사례로 꼽을 수 있는 운동 중 하나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다. 이 투쟁은 2000년부터 4년간 집중적으로 터져나온 불복종운동이었다. 대중 교통 서비스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 부문이지만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은 공공 교통 서비스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버스나 전철은 장애인들의 속도를 전혀 존중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아예 버스에 오를 수도 전철을 탈 수도 없었다. 이러한 현실에 저항하며 장애인들이 직접 나서 버스와 전철을 타기 시작했다. ‘버스와 전철을 탄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사실이 장애인들에겐 그 자체로 비장애인들의 손가락질과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커다란 ‘불복종’이었다. 중증장애인이 직접 문제제기를 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이동권의 문제가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통 약자들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대중적으로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버스·전철 타기 등의 합법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도로 점거, 지하철·버스 점거 등과 같은 불법적인 점거농성도 과감하게 이어졌다. 법 제정과 정부당국, 서울시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 등에서 주목해 볼 사례다. 4년간의 지속적인 투쟁 과정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역량과 연대하면서 진행되었고 결국 관련 법률 제정과 정부와 자치단체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위 사진:현역 군인으로 복무하다 이라크전쟁에 항의해 입영을 거부한 강철민 씨<출처; 전쟁없는 세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도 불복종운동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징병제 사회에서 징집을 거부하는 행위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쟁을 위한 군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군 입대를 거부하는 단호한 개인들의 양심은 이제 특정 종교인의 범위를 넘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병역거부라는 불복종의 대가는 가혹했다. 평화를 향한 양심에 따라 징집을 거부하면 최소 1년6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된다. 그런데도 군대 대신 감옥이라는 불복종을 택하는 양심은 늘어만 가고 있다. 불복종운동으로서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지문날인 거부 운동, 2000년 롯데호텔 파업의 폭력 진압에 항의하는 롯데 상품 불매운동, 부안 핵폐기장 반대 주민투표 운동 등으로 이어지며 불복종운동은 우리 사회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불복종운동은 기존의 부당한 권력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의도적으로 주류 질서를 어겼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권력의 부조리함에 대한 정치적 각성 과정을 거친 후 부조리함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존의 규율을 거스른다. 기존의 규율을 거스르는 과정은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행동에서부터 대규모의 대중적인 실천까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록 불이익과 불편이 예상되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불복종을 감행한다. 최초로 불복종을 감행한 사람들은 소수이더라도 불복종이 하나 둘씩 진행되는 동안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동참하는 운동으로 나아감을 역사적으로 성공한 불복종운동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불복종운동, 한계를 넘어야

불복종운동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의도적으로 부조리한 권력 질서에 저항할 수 있는 행동에 동참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중운동으로서의 큰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불복종운동의 우려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대중들의 정치적 각성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불복종운동은 자칫 ‘불발된 기획’으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불복종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도 적절한 행동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고, 불복종에 따른 일정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하는 데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불복종운동은 운동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명멸해간 다른 운동의 전철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불복종운동을 합법의 영역에만 가두려는 일부 시도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불복종운동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운동이 아니라 불복종을 통해 대중들의 행동이 적극화되고 대중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할 때 위력적인 저항운동으로 전화될 수 있다. 대중들을 선험적인 한계에 가두지 않고 그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려는 노력, 불복종운동이 열어놓은 정치적 공간을 확장해 더 많은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기획 역시 끊임없이 고민되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불복종운동이 미완의 운동으로 그치는 경우도 많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 운동의 경우에도 비록 부안에서 핵폐기장이 건설되는 것은 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막아냈지만 결국 경주에 핵폐기장이 들어서기로 결정되면서 핵폐기장 반대 운동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적인 불복종운동을 상상하자

현재 평택 전쟁기지 건설에 대한 저항과 한미 FTA 체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전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평택에 미군기지를 이전·확장한다는 것은 곧 미군의 전세계적 전략적 유연성 정책에 따라 주한미군의 선제공격 전략을 한반도에서 구상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한국정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또 한미 FTA가 추진될 경우에는 단순히 생존권만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질서 자체가 부정된다. 한국의 의회나 사법기구들의 법적인 절차는 모두 쉽게 무시된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대표권을 위임받은 권력자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추진한다는 것은 이미 대표권의 위임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러한 사안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총체적으로 제기하고 이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나아간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하지만 민중이 배제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합법적인 권력은 기존의 지배적인 권력만을 대변할 뿐이다. 누구나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부당한 질서에 대한 불복종은 적극적으로 고민되어야 한다.

위 사진:2006년 하반기 대중적 불복종운동을 상상한다.<출처; www.bigfoto.com>


평택 전쟁기지 건설을 막아내고 한미 FTA를 저지하기 위해 채택할 수 있는 불복종운동의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금 평택에서는 강제철거를 앞두고 지킴이들이 빈집을 점유하여 생활하는 불복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파괴된 대추분교를 재건하는 작업도 불복종운동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강제철거를 저지하기 위한 미군기지 앞 촛불집회도 계획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사회적인 여론화를 위해서 불법적인 비폭력 거리시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아가 영국의 ‘트라이던트 핵 잠수함 보습 만들기 운동’과 같은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시민들이 쉽게 참여하는 방법들로부터 선도적인 투쟁 방법까지 불복종운동의 방법은 기획하기에 따라 무척 다양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 사회운동 진영이 써왔던 관성적인 투쟁방식을 넘어 시민들의 정서에 맞는 투쟁의 방법들을 상상력을 동원해 고안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느냐, 아니면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하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아마도 올해 하반기는 이렇게 중요한 상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최소한 평택 전쟁기지 건설이나 한미 FTA 추진을 지연시키기 위해서라도 권력에 의해 관리되는 집회와 시위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운동의 기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인권오름 제 17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17일 0: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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