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차별금지법-여섯 가지 이유 있는 걱정③] 차별적인 표현도 ‘표현의 자유’일까?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세 번째 쟁점포럼

박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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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싫다”는 말이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어야 하는 말이라면 “나는 동성애자가 싫다”는 말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어야 하는 말일까? “아랍인들은 냄새가 난다”는 말은 아랍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말일까, 아니면 그냥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일 뿐일까? 얼마 전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았던 MBC PD수첩이 갑자기 방송되지 못했던 것처럼, 국가권력에 비판적인 표현이 억압되는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너무나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적인 편견에 기반을 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주장되는 상황에서, 과연 ‘표현의 자유’는 모든 표현을 옹호할 수 있는 인권으로 주장할 수 있을까? 2006년 당시 한나라당 최연희 국회의원이 여성 기자를 성추행한 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을 때, 당시 열린우리당 한광원 국회의원은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인 표현의 자유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라면 어떤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겠는가”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건 니 생각이고~”라며 사람들을 웃겼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확실히, ‘표현의 자유’는 애매해 보이는 점이 있다.

억압에 대한 저항 담론으로서의 ‘표현의 자유’의 출현

우선 ‘표현의 자유’가 발생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역사성을 잃어버린 개념은 길을 잃고 미로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근대 부르주아혁명의 과정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근대 시민혁명 과정에서 신흥 부르주아 세력들은 기존의 왕의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전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에 위협을 느낀 국가권력(왕권)은 이 새로운 사상을 탄압함으로써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권력을 견제하려고 했다. 이러한 탄압에 맞서서 부르주아 세력이 주장한 것이 바로 ‘표현의 자유’였다.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는 기존의 왕권에 의한 억압에 대항하는 신흥 부르주아세력의 저항 논리로 주장된, 역사적이고 권력관계적인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대항 권력적인 개념인 것이다. 기존에 기득권을 쥐고 있던 권력이 자신에게 비판적이고 위협적인 특정 개인·집단의 표현을 억압했기 때문에 이에 대항해 일종의 정치적 권리로서 표현의 자유가 인권으로 제기되었다.

이와 같이 억압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자유’와 ‘저항’이 발생한다. 물론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는 있을 수 있지만, 자유의 필요성이 인식되고 개념화되어 요구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억압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억압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떠한 권력이 억압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쟁취할 자유의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구조적·권력적 억압에 기반하고 있지 않은 ‘자유’ 주장은 공허할 뿐이다.

인권교육을 하다보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설명하기 쉽지 않음을 많이 느끼게 된다. 참가자들에게 각자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 사례를 적어보자고 하면 대부분 그냥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잘하지 못했던 말들을 적곤 한다. “용돈 좀 올려주세요”라거나 “좀 잘 씻고 다니세요. 등과 표현 앞에서, 이를 어떻게 표현의 자유로 이해할 수 있을지 곤란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표현된 상황 속에서 참가자들이 어떤 억압을 당하고 있었는지 실체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인 권력의 우위에서 어떤 표현을 제한했을 때 이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써 표현의 자유가 이해되어야지, 그러한 맥락이 삭제된 채 표현의 자유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어야 할지 아닐지 보다, 그 표현이 어떤 맥락에 놓여있고 어떤 권력관계 속에 있는 것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머리를 기르고 싶어”라는 말을 두발자유가 없는 학생이 말하는 것과 남성이 말하는 것, 그리고 여성이 말하는 것은 모두 다른 맥락과 권력관계 속에 있다. 각각의 주체가 놓여있는 권력관계 속에서 억압의 실체도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표현만으로 표현의 자유에 속하냐 아니냐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표현/표현의 자유의 재구성

국가의 표현의 자유 침해에 맞서는 저항 담론으로서의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국가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는 더욱더 보장되어야 하지만, 국가 권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 침해만으로는 더 이상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왜나햐면 누군가를 차별하고 억압하는 표현마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옹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국가권력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지점들에서 ‘표현의 자유’ 개념이 재구성되고 새롭게 정리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표현의 자유’를 설명하는 개념 중에서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떠한 표현이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옹호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개념의 가장 큰 오류는 이 주장이 비현실적인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이 주장은 모든 표현이 마치 동등한 권력관계에 있고 아무런 맥락도 갖지 않은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가정하지만, 현실에서 표현들은 그렇지 않다. 표현은 그 표현이 행해진 상황 속에서 권력관계 하에 놓이게 되고 아주 구체적인 맥락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주장된다면, 그때 주장되는 표현의 자유는 누구의 어떤 표현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표현의 주체와 대상이 어떠한 권력관계에 있는지 분석이 필요하다. 누가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또 누가 그런 표현을 ‘자유’로 주장할 수 있는지, 누가 그런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지, 그 표현은 어떤 사회 구조적 맥락에 놓여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을 삭제해버린 ‘표현의 자유’는 모두의 자유가 될 수 없다. 누군가의 자유가 권력관계에 대한 전복 없이 다른 누군가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자유’라고 할 수 있나. 표현의 자유는 맥락과 권력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또한 표현의 개념과 범위 역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국가권력의 억압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침해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차별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했다’, ‘고작 그것 갖고 왜 그러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등과 같이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표현은 그 표현이 놓여있는 사회구조와 권력관계의 맥락 안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표현이 의도적이지 않거나 의식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표현은 그것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문화, 가치관, 사회구조 등을 일정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표현에는 말이나 글과 같이 언어적인 것이나 그림이나 음악 같이 예술적인 것만이 아니라, 표정, 동작, 시선, 목소리 톤/크기, 공간, 시간, 복장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 것들도 모두 포함한다. 실제로 의사소통 과정에서 말이 전하는 의미는 전체의 35% 이하에 불과하고 나머지 65% 이상이 비언어적 형태로 전달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비언어적 표현들 역시 사회와 문화를 반영한다. 앤더슨(Anderson)이라는 학자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많은 비언어적 행위를 모르고 지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말 한 마디’ 혹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 정도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커다란 소통의 좌절, 존재의 부정 등과 같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심각한 표현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게 다른 사(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표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규범을 넘어 공감을 통한 표현의 자유 확대

위 사진:8월 12일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세 번째 쟁점포럼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쁜이 활동가는 한 방송국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언급하며, “이 드라마 게시판에 있는 말도 안 되는 편견으로 가득 찬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적 혐오와 증오가 담긴 말들을 보고서도 과연 성소수자들이 편하게 드라마 한 편이나 제대로 볼 수 있겠냐”면서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들이 과연 동등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질문했다. 또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소수자에게 표현의 자유는 생존권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든 민주주의와 삶의 모든 측면으로부터 표현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고 하면서 “그렇지만 그것은 정의로워야 하며, 혐오/편견을 조장하지 말아야 하며, 잘못된 낙인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잘못된 낙인을 공고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장서연 변호사도 “표현을 제한할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억압당해온 집단 또는 이에 속한 개인에 대한 차별적인 언어나 표현행위에 대하여는 사회적으로 이를 거부한다는 상징적 지지와 규범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편견에 기반을 둔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차별이고 인권침해일 뿐이라는 사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의 확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 차별적인 표현들에 대한 제도적 규제를 당장 도입하기 보다는 그 문제점들을 지적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와 이에 기반 한 상징적 지지 및 규범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또 이쁜이 활동가는 차별적인 이성애 중심적 사회규범으로 인해 성소수자들에게는 표현의 자유 자체가 봉쇄되고 있다며, 이성애중심주의에 도전하는 성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 표현의 자유 운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성소수자들 스스로 표현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별적인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차별적인 표현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모든 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인식하며 살고 있지는 않다. 차별적인 표현이 표현의 자유로 잘못 주장되면서 표현의 자유는 오히려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적인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의 본질을 되돌아봄으로써 핵심적인 개념을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박석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17 호 [기사입력] 2010년 09월 01일 20: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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