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차별금지법-여섯 가지 이유 있는 걱정①] 차별과 차별인식의 틀로서의 모욕감

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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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주

이글은 반차별공동행동이 주관한 <올바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포럼> 가운데 첫번째 ‘모욕감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차별’에 참여한 발제자들의 발제문과 토론시간에 언급된 내용을 토대로 하여, 필자의 고민 속에서 재구성된 것입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쟁점포럼에서 논의될 △차별금지에서 혐오범죄가 갖는 의미 △차별과 표현의 자유의 경계 △복잡한 차별 현실(복합차별), 차별금지법에 담기 △차별금지법 제정의 뜨거운 감자 '성적 지향/성별정체성' 등을 기획기사로 실을 계획입니다.


‘차별(差別)’.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겪는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설명하는 하나의 담론이다. 누구를 ‘차별하고 있다’ 혹은 누구에게 ‘차별받고 있다’와 같은 표현은 흔하게 사용되지만, 그러한 현상의 이면에 있는 사회구조나 권력관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매우 취약하다. 즉 그간 차별의 경험은 경제적 불평등이나 정치적 권리의 제한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래서 차별해소의 방법 역시 부의 정의로운 재분배 혹은 정치참여의 동등한 권리와 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매우 거칠게 말하자면, 다양한 차별철폐운동은 평등권에 근거하여 ‘자기 몫을 정당하게 갖을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권리를 획득할 수 있는 제도마련을 넘어, 다양한 차별해소를 목적으로 두었지만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싸움들이 많았다. 또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하더라도, 그 결과로서 차별이 발생하는 보다 심층적인 원리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 어렵기도 했다.

반차별공동행동의 <올바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 포럼>의 첫 번째 주제인 ‘모욕감을 중심으로 한 차별의 재구성’은 차별에 지금까지의 이해와는 다른, 전환논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마련되었다. 차별행위는 사회적 상호관계망으로부터 발생하는 일련의 총체적 과정이며, 삶과 의식의 연속적인 궤적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차별피해자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언어를 통해서 차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차별행위가 발생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첫 번째 포럼에서는 차별피해의 결과이자 차별을 인식하는 근거로서 차별피해자의 모욕감을 조명해보고자 했다.

위 사진:첫번째 포럼에 이어 두번째 포럼도 7월 22일 진행된다.


차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임금체불 보다 일부러 인사를 피하는 것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는 한 이주노동자의 경험, 그 어떤 폭력보다 ‘갈보’라는 말 한마디를 수십 년 동안 뼈아프게 기억하는 성매매 여성의 경험, 길거리의 턱보다는 “집에 있지 왜 나와서 고생이냐”며 동정어린 말을 듣는 것이 더 힘든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의 경험들. 일상생활에서 인간적인 멸시와 무시 그리고 모멸감을 느꼈던 경험으로 종종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때때로 이러한 인간적인 멸시나 모멸의 경험이 물질적 침해보다 한 인간의 인격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니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는 단지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로서의 ‘암묵적’ 합의만 있을 뿐이지, 무엇을 차별로 규정해야하는지에 대한 합의도,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실천적 합의도 뚜렷하지 않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위에서 언급한 상황이 어떤 이들에게는 단번에 차별적 상황으로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설사 차별로 인식된다하더라도, 매우 가벼운 차별로만 이해된다. 대개의 차별행위에 대한 인식은 육체적·가시적인 폭력, 경제적 불이익, 정치참여의 배제와 같이, 피해사실이 분명하고도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경우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차별가해 역시 몰상식하고 부도덕하며 비인간적인 범죄자나 규칙 위반자 정도로 이해된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는 차별행위가 발생했다고 해도 차별피해자가 그것을 즉각적으로 차별의 경험으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다.

차별은 ‘관계’, 즉 구체적 맥락 속에서 포진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즉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자신의 다양한 삶의 조건으로 인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흔하게 겪게 되는 사회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상적인 상황에서 어떤 상황을 차별로 인식해야할까. 구체적으로 차별경험은 어떠한 것을 말하는 것일까.

위 사진:6월 30일 국가인권위에서 개최된 <올바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포럼①> ‘모욕감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차별’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


차별의 핵심은 자존감의 훼손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차별의 경험에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고 핵심적인 경험이지만, 다른 차별피해의 부수적이거나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 바로 ‘자존감의 훼손’, 즉 무시당하는 감정인 모욕감이다. 예를 들어, 2004년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실시한 「차별에 대한 국민의식 및 수용성 연구」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인간적 모욕/무시가 가장 많이 경험한 차별행위의 하나였으며, 이것이 차별을 인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경험임을 알 수 있다.

자존감은 모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감정의 표현으로,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감정이다. 따라서 자존감의 훼손은 ‘자신이 정당하다고 믿는 신념’에 대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실패와 굴욕의 경험이다. 어쩌면 사회적 소수자들의 생애과정에서 굴욕과 실패의 경험은 자신의 신분 혹은 정체성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 소수자들은 자신의 생애 과정 속에서 타인들에게 자신의 특정한 속성(성적지향, 나이, 장애, 출신국가, 외모, 가족형태 등)이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어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열등한 속성에 대해 민감하게 신경 쓰도록 훈련되어 왔으며, 동시에 자신이 열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시인해야만 하는 경험을 강요받아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모욕감은 차별의 피해로서 충분히 인정되지 못한 채, 그저 단편적인 열등감 정도로만 받아들여질 뿐이다. 파괴된 피해자의 경험과 감정 속에서 차별이 이해되고 시정되었을 때야 비로소 차별피해자의 트라우마가 종결될 수 있다.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중심주의를 경유하여

자존감의 훼손과 그에 따른 모욕감을 차별의 피해로서 이해하고자 할 때, 다양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이라할지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는 것 아닌가. 개인의 경험을 어떻게 집단의 전형적인 체험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게다가 모욕감은 사회적 소수자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아닌가.

여기서 반차별공동행동은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중심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검토함으로써 지혜를 구하고자 했다. 반성폭력 운동의 피해자 중심주의는 가해자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싸우면서, 폭력적 상황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시된 법이 아니라 피해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구조와 특수한 경험을 통해 해석하도록 사회를 설득함으로써 여성을 해석의 주체로서 사회적 위치를 재설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예를 들어, 성폭력의 증거가 없는 경우, 그 행동이 성폭력이라는 증거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주관적인 ‘감정’만이 남는다. 피해자중심주의를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동일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성마다 다를 수 있는 경험의 해석이나 심리상태만으로, ‘가해자’로 추정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게다가 법적인 처벌의 문제가 걸려있다면, 더욱 여성들의 감정은 합리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론들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반성폭력 운동 내부에서도 여성의 다양한 경험을 ‘피해자’로서만 환원시킨다거나 단순화하는 것 등의 한계가 지적되기도 했다.

위 사진:6월 30일 국가인권위에서 개최된 <올바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쟁점포럼①> ‘모욕감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차별’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의 상황을 여성 개개인들의 특수한 경험과 감정구조를 통해서 해석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감정을 여성전체의 경험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그렇다면 반성폭력 운동의 경험이 시사 하듯이, 모욕감 역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이해 기반이 빈약한 한국 사회에서, 즉각적인 권리나 배제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이해하고자 할 때, 좀 더 실천적인 틀로서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차별경험 그리고 차별행위를 이해하는 방식과 내용은 단지 차별의 개념을 변화시키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사회의 주요한 갈등 중 하나인 차별을 통해서 사회를 보는 방식 자체에 새롭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 차별에 대한 저항논리로서의 모욕감

반성폭력 운동의 경험처럼, 감정의 객관성이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주체들이 느끼는 심리상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획득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차별행위에 있어서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무시’ 혹은 모욕감 역시 심리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차별구조와 차별인식의 필연적인 연결고리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중립적 상황을 ‘차별적 상황’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모욕감으로서 차별에 대한 이해를 전화하고자 할 때, 우선적으로 답해야할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감정구조인 모욕감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모욕감이 차별행위에 대한 저항의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욕감은 한 개인이 사회와 맺는 과정에서 사회로부터 배제될 때 경험하는 기본적인 감정이기에, 차별행위의 결과이자 피해인 동시에 차별피해자가 차별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판단할 뿐만 아니라 반차별적 실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틀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일란 님은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반차별공동행동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12 호 [기사입력] 2010년 07월 21일 15: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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