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추락하는 감옥인권 날개가 필요하다(하)

인권이 숨 쉴 수 있는 감옥을 위하여

이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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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어디를 가든 감옥에는 그 사회의 모순이 응축되어 나타난다. 그러기에 감옥을 바꾸는 문제는 세상을 바꾸는 문제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면 거기에 걸맞게 감옥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나름대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감옥인권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과 실천은 다른 인권분야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원인의 팔 할은 반인권적인 교정정책과 이데올로기에 있다고 본다. 권력자들은 대부분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면서 범인을 붙잡아 ‘죄 값’을 물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왔다. 범죄자와 일반인은 다른 인간인 것처럼 심정적으로 느끼게 하면서 범죄를 양산하는 사회적 배경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정책들. 자본주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적은 비용으로 범죄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개인책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 강력 형사정책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이러한 경향들은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대)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경제 정책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담론으로서 개인들의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지우는 식의 담론구조들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범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범죄의 원인과 책임을 범죄자 개인에게 뒤집어씌우면서 ‘형벌 만능주의’로 나아간다. 아동 성폭력 범죄가 성행하자, 언론은 선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면서 범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에 바빴다. 정부는 여기에 편승해서 형량을 늘리는 것도 모자라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범죄자 개인에게 이중, 삼중의 족쇄를 채우는 정책들을 쏟아냈다. 아동 성폭력은 가부장적인 성 문화,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산업 구조들 속에서 성적인 욕망이나 쾌락이 산업화되고 그것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상을 왜곡된 형태로 찾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게다가 아동 성폭력 범죄의 70~80퍼센트는 가족, 친척, 동네의 또래 친구나 선배, 주민, 학교 선생님, 학교 선배 등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범죄자 개인에게 아무리 가혹하게 형벌을 내린다 해도 이러한 사회적 원인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해 또 다른 아동 성폭력 범죄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범죄로부터 시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하지만 범죄의 모든 책임과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경찰력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으려 한다. 동네와 집안 곳곳에 CCTV가 설치되고 ‘내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를 위해 온갖 수단들이 강구된다. 방범, 보안 등 범죄예방 산업이 각광받는 산업으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 튼튼한 방범대책을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돈 없는 서민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범죄율이 늘고 범죄를 일으킨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그들이 된다. 게다가 국가는 위험을 관리․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각종 기본권 침해를 불러올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도입하면서 민주주의 기반 을 무너뜨린다.

격리만 있을 뿐 교정․교화 없는 구금시설

국가가 내세우는 번지르르한 교정·교화 이념과는 달리 감옥은 형사사법의 목표인 ‘범죄예방’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해 왔다. 50%가 넘는 재범률이 그것을 입증해준다. 행형은 범죄자들을 일단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낙인을 찍어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통과절차에 불과하다. 인간 존엄성이 말살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반성하기 보다는 더욱 더 지능적인 범죄자가 되거나, 재활을 꿈꾸지만 구속이후 가정이 파괴되는 상황 속에서 자포자기 하게 된다.

국가는 더 이상 이들을 위해 투자하지 않는다. 범죄의 모든 책임과 원인을 범죄자 개인에게 뒤집어씌우는 마당에 재소자들의 인권을 위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로 인식된다. 감시와 통제를 더욱 철저하게 하면서 구금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을 재소자 개인에게 최대한 부담시키려 든다. 민사, 행정 소송 등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재소자들에게 법정출두 비용을 부담시킨다든지, 몸이 아픈 재소자가 외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비용의 일부를 부담시킨다든지 국가가 당연히 부담해야 할 비용들마저 전가시키고 있다. 민영교도소 설립은 신자유주의 행형의 총화라 할 수 있다. 감옥은 점차 “사람 가둬놓고 장사하는 거대한 유통회사”가 되었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은 쉽게 풀려나거나 감옥에 가더라도 일반 재소자들보다 더 나은 조건에서 귀족처럼 행세 한다.

범죄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부터

이런 감옥을 어찌해야 하나? 감옥을 아예 없애 버리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범죄자들을 진정으로 교화할 수 있는 다른 방안들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현존하는 감옥을 어떻게든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고 재소자들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가난한 사람들이 범죄의 수렁에 빠져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감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강성 형벌정책과 이데올로기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지 않고 돈이 곧 정의가 돼 버린 세상에서 낙오된 다수의 사람들이 범죄의 늪에 빠져들거나 억울한 범죄자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운동, 사회운동 과정에서 늘어나고 있는 구속노동자, 양심수의 문제도 이런 맥락 속에서 발생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후퇴하는 감옥인권을 고민하면서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행형 또는 ‘교정’은 국가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의무이므로 민간에 그 역할을 이양하거나 재소자들에게 비용을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 시국치안에 낭비되는 비용들을 교정예산에 투입한다면 재소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충분히 조성할 수 있다. 둘째, 권위주의와 비밀주의로 가득 찬 교정관료 조직을 민주화하고 외부에서 시민들의 감시와 통제가 가능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셋째, 재소자들도 사회의 일원이라는 걸 인식할 수 있도록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충분히 보장해주어야 한다. 넷째, 교정 프로그램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재소자들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내용들로 채워질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 유포를 통한 정부의 교묘한 분리 정책 탓에 신자유주의 범죄정책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진보운동의 강력한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감옥인권이나 위험 감시정책의 문제는 아직까지 인권운동의 과제로만 머무르고 있고 그마저도 사안별로 대응하다 보니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서 반인권적인 교정행정, 범죄정책의 문제점들을 강력하게 제기하면서 투쟁해나갈 때 현재의 퇴행적 흐름을 끝장내고 진정한 변화를 일궈낼 수 있다. 과거엔 감옥문제 하면 양심수를 떠올리면서, 이들의 석방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데 그쳤다면 이제는 구금시설에 있는 모든 재소자들의 인권을 함께 고민하면서 잘못된 형사정책 전반에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광열 님은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입니다.
인권오름 제 221 호 [기사입력] 2010년 10월 05일 2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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