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물구나무] G20과 알파라이징?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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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돌리면 G20이다. 버스 전면에도, 빌딩에 걸린 대형 현수막에도, 광화문 네거리의 옥외 전광판에도 죄다 G20광고다.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그놈의 ‘G20 성공기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인터넷 상에도 TV를 화면에도 예외는 없다. 심지어 월스트리트저널 웹사이트에 G20배너광고까지 실렸고 대중들은 그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다면 한다 한국놈~’신나는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정말 매섭게 밀어붙이는 저들의 노력이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수많은 광고들 중에서도 노골적으로 불편한 광고가 있다. 바로 SK의 알파라이징 광고. 어린 시절 즐겨보던 로봇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 요상한 말은 G20 홍보의 기류를 타고 여기저기에 신조어처럼 쓰이고 있다. 알파라이징의 뜻은 A와 B를 더하면 기계적인 AB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C를 창조해낸다는 뭐 그런 의미인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알파라이징한 세상을 G20과 대한민국이 만들겠다고 생색내며 말하는 것이다. 그것도 차분한 목소리로 엄청 착한 척 하면서.

우선 이 광고를 톺아보자. 인도, 남미, 아프리카, 북극 등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나온다. 곧이어 각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이 흐른다. ‘자하라의 가게는 어떤 나라가 투자해야 할까요? 로베르토의 일자리는 어떤 나라가 준비해야 할까요? 심바의 학교는 어떤 나라가 지어야 할까요? 쿠눅의 북극은 어떤 나라가 지켜야 할까요? G20과 대한민국입니다.’







아무리 봐도 아리송하다. 심바의 학교를 짓고, 로베르토의 일자리를 준비하고 자하라의 가게에 투자할 권리를 누가 G20과 대한민국에게 주었는가? 심바의 학교는 심바의 정부가 지으면 된다. 오히려 G20이 그들의 학교와 일자리, 가게에 관여한다면 심바는 밤마다 입시학원을 다니고, 로베르토는 비정규직이 될 것이고, 자하라의 옆 건물에는 대형 마트가 들어올 것이다. 심지어 북극을 지키겠다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교토 의정서에 최대 배출국인 미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1990년에서 2006년까지 서유럽, 북미, 태평양연안 선진국들은 오히려 9.9%의 온실가스 배출증가를 보였다. 북극을 눈물 흘리게 한 주범들이 이제는 지키겠다고 생색을 낸다. 과연 그런가? 선진국들은 북극을 개발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전 세계 4분의 1가량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며 지하자원에 혈안이 되어 미국과 러시아는 영유권 다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주장에 G20 국가들은 항변할 것이다.

"그 나라들은 후진국이다. 스스로 인프라와 자본을 구축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가 도와주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분명 이렇게 말하겠지. 생색내는데 는 고수들이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심바의 나라를 무능력하게 만든 주범은 누구인가? 제국주의 시대를 소급할 것도 없이 근현대에 와서 아프리카의 값싼 노동력으로 카카오와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고 아마존의 밀림을 파괴하며 북극의 얼음을 녹이는 나라들은 어디인가? 칠레의 광물 자원을 독점하고 강대국의 소수 민족 탄압을 못 본체하며 빈민국의 내전과 전염병 창궐을 종용하는 나라들은 어디인가? 초국적 기업으로 시장을 교란시키고 주가를 조작하고 20대 80의 사회를 10대 90의 상황으로 심화시키는 건 어느 나라인가? 광고는 답하고 있다. “G20과 대한민국입니다.”

이제 제발 솔직해지자.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자. 커다란 바이러스를 심어놓고 표면적, 일회적 치료약만 주겠다며 생색내지 말고 근원적 시스템을 반성하고 완치할 수 있는 백신을 제공해야한다.

이러한 광고의 무서운 점은 이런 생색이 일반 대중들에게 그대로 먹혀든다는 것이다. G20 광고는 치밀하게 조직되고 어마어마한 물량공세를 통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와 인식을 심어주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G20 영 앰배서더’라는 것이 있다. 대학생들이 그룹을 지어 각종 방법으로 G20을 광고하고 국가에서는 이를 후원해주는 것이다. 그들의 블로그를 유심히 살펴보면 G20 홍보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작은 명함크기의 G20 광고지를 만들어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사이에 꽂아놓고 공공장소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등 광고의 방법은 창의적이다. 젊은이들의 개성적인 아이디어를 뽐내며 열정을 쏟는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젊음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정부와 거대자본에게 놀아나며 헛된 곳에 열정을 쏟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안타깝고 심지어 스펙 하나를 더 쌓으려는 듯 보여 한심해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일반 대중들이 G20의 이면을 알지 못하고 생색형 광고에 현혹되어 끌려 다니는 현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광고는 말 그대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인식을 조절한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말이 있다. 양고기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으로 선전은 버젓하지만 사실은 거짓으로 가득 차 내실이 그에 따르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심바의 학교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심바의 나라를 잠재적 테러국가로 간주하고 북극을 오직 자본투기의 보루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우리는 그 광고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의식을 파고드는 광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양두구육 하는 ‘대한민국과 G20'에 저항해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하라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24 호 [기사입력] 2010년 10월 26일 22: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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