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요의 인권이야기] 가족과 부양의무자 사이

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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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권운동연대라는 곳에서 기초생활수급 상담을 하고 있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리저리 헤매고 허덕이는 나이지만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은 마치 내가 해결사인양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보따리를 한꺼번에 풀어놓는다. 사실 가슴 속 깊이 쌓아 묵혀 두었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때면 나는 그 이야기들을 감당하기 너무 벅차다. 처음 보거나 혹은 알기는 알지만 그다지 친밀하지 않는 사람들의 개인사를 너무 많이 알게 되는 것이 불편하다. 그리고 내가 이분들의 걱정거리들을 열심히 듣는다고 하더라도 법과 제도의 굴레에 묶여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결론이 나버리면 너무나 허무한 마음에 하루가 뒤숭숭하다.

위 사진:[설명: 부양의무자 규정 폐지를 요구하며 서울 조계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출처: www.beminor.com]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상담 들어온 내용의 대부분은 ‘부양의무자’ 규정으로 인해 수급이 불허되거나 받고 있던 수급권이 탈락된 내용이다. 현재 부양의무자 규정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할 수 없더라도 부양의무자의 존재 때문에 수급에서 제외되는가 하면,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 및 재산의 소득환산액 기준이 비현실적이어서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의 동반추락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그 애들도 먹고 살기 팍팍한데 내가 어떻게 뭘 요구하겠소.”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수급자에서 탈락된 여성의 사연을 소개해 본다.

김씨(여성)는 10년 전에 이혼을 했다. 아들은 남편이 데리고 가서 키웠고 연락은 서로 하지 않았다. 장성한 아들이 보고 싶어 아들의 친구를 통해 수소문해서 전화번호를 알았고 작년에 아들과 연락이 닿았다. 몸이 많이 아픈 김씨는 1500만원 전세를 구하러 알아보다가 급하게 1500만 원짜리 경매로 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집을 샀다. 변변치 못하고 쓰러져가는 집이지만 처음 가져보는 집이라 기쁨도 컸다. 그러다가 김 씨는 몸도 아프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가족도 없으니 이 집을 아들명의로 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부모로서 평생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 미안함도 조금 덜고 싶고 이 핑계로 자식 얼굴도 한 번 더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용기를 내어 연락을 했다. 원하지 않는 아들을 설득하여 집 계약서를 썼고 주거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집을 수리하여 이사를 했다. 그러나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사무소로부터 자식의 소득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초과하여 수급이 탈락된다고 통보가 왔다. 동사무소로 달려가서 아들과는 연락이 거의 하지 않고 경제적 부양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호소했지만, 아들 명의의 집에 살면서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일련의 과정들은 서류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약서 쓰던 날, 젊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된다며 더 힘든 일이라도 돈 조금 더 올려주는 직장으로 옮긴다고 말하는 아들이 안쓰럽고 애처로웠지만 그래도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는데 그게 수급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는 본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요즘 상담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정작 속 깊은 이야기는 할 수 없는...? 나는 2년 전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을 했다. 사실 부모님과 대판 싸우고 도망치듯 집을 나와 버리고는 독립을 선언했다. 부모님의 마음에는 시집보내지 않은 딸이 혼자 따로 사니깐 여간 걱정이 아닌가 보다. 그래서 주말이 가까이 오면 여지없이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온다. 이번 주말에 집에 와서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말이다. 하지만 정작 집에 가면 사실 별 대화가 없다. 그냥 밥 먹고 각자 텔레비전 보고 방에 들어가서 잔다. 부모님과 나 사이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따로 나가서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같이 살고 있는 언니나 동생도 마찬가지이다. 주중에는 각자 학교나 직장 가서 저녁에 지친 몸으로 오고 주말에는 친구들 만나러 나간다. 부모님도 주말에는 모임에 가거나 산악회에 따라간다. 같이 집에 산다고 해서 고민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 이외의 곳에서 보낸다. 가끔 자는 공간 이외에 가정/집 그리고 가족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일까? 과연 정서적 위로와 안도감을 가족으로부터 받고 있는 것일까? 주요하게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다르고 고민하고 있는 일이 다른데 서로를 공감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함께 일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 동료들이 나를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이다. 농업사회라고 말해지는 전통사회에서는 마을 안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고 함께 교육하고 함께 일하기 때문에 가족관계가 사회관계와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현대사회는 핵가족화 되어 전통사회와 비교하면 가족구성원간의 결속력이 현저히 낮아졌다.’이다.

이렇게 가족 간의 결속력이 낮은데 가족이 서로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족쇄’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뉴스에 대학 졸업 때까지 양육비가 1인 평균 2억 6천이 든다는 보도를 보았다. 양육하고 부양하는 책임이 온전히 가족 구성원에게 넘겨지는데, 정부는 무슨 권한으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강요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뉴스를 보고 어찌 아이를 낳아 기를 용기가 생기겠는가. 지난해 장애아를 둔 아버지가 아들을 수급 받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올해 초, 지난 4일에는 60대 노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죽음을 선택한다.’라는 유서와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인권이 가족과 부양의무자 사이에서 힘겨운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빈곤의 책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권리가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언제쯤이면 벗어날 수 있을까?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아요 님은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34 호 [기사입력] 2011년 01월 12일 15: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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