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꾹꾹 참았던 말, 팡팡 터지다

시설에 갇힌 청소녀들의 속풀이 한판!

김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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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앞에 평등을 의미하는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가리고 있다. 법의 심판대에 오른 그 어느 누구에게도 편견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두 눈을 가림으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소년원에서 만난 청소녀들이 쏟아 놓은 말들은 ‘정의의 여신’이 법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함과 불평등을 외면하기 위해 마치 두 눈을 꽁꽁 싸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게 했다.

날개 달기 : 소년 사법 현장을 가다

인권교육네트워크는 8월 4일과 7,8일 3일 동안 법원소년부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12세 이상 20세 미만의 청소녀들을 수용하고 있는 소년보호교육기관인 안양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아래 안양소년원)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했다. 이번 인권교육은 120명이 넘는 청소녀들과 함께 하는 교육이었기에 돋움이들이 대거 결합했다. 많은 인원을 강당에 모아 놓고 일방적으로 떠드는 교육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작은 모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소녀들을 30여명씩 4반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다시 4, 5개의 모둠으로 구성해 인권교육을 실시했다.

소년원 아이들의 경우 ‘나쁜 짓’ 하고 들어왔으니 ‘죄인’ 취급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소년원 직원들도 이런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소년원이 운영되곤 한다. 또한 아이들을 항상 교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인권교육을 ‘착한 아이’ 만들기의 일환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인권교육네트워크에서는 시설 내에 있는 청소녀들의 상황을 고려해서 인권교육을 준비했고, 청소녀들을 대상화시키지 않으면서 교육의 적극적인 주체로 초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중 한 가지가 바로 ‘사법절차와 인권’이었다.

더불어 날개짓 1 : 봇물처럼 터져 나온 말! 말! 말!

청소녀들에게 말풍선을 나눠주고, 경찰서와 검찰청, 그리고 법원을 거쳐 소년원에 오기까지의 과정에서 겪었던 부당한 일들을 떠올리며 그때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말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청소녀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자신들이 겪은 부당한 일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위 사진:아이들이 쏟아 놓은 말들을 말풍선에 적어 넣었어요.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밤새도록 조사를 하지마세요. 조사할 때 반말 좀 하지마세요. 조사할 때 폭력을 쓰지 마세요.”
“욕을 잘 하고 막 대한다. 경찰이 폭력을 더 한다. 깡패야~ 모야~”
“조사하면서 이 서류만 작성하면 집에 보내준다면서 조사 다 하고 나면 말 바뀐다. 우리가 무슨 시험용인가-_- 완전 무시하는 듯한 행동과 말투가 기분 나쁘다. 죄를 지었어도 인격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소리도 지르지 말고 우리 말 좀 거짓말이라고 하지 마세요. 협박하지 마세요”

청소녀들은 자신들이 피의자라는 것과 어리다는 이유 때문에 더 위축될 수 있음을 역이용해 경찰과 검사가 죄를 덧씌우거나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조차 무시하기 일쑤라며 울분을 토했다. 실제 대부분의 청소녀들은 자백을 해도 경찰이나 검사가 무조건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조서를 마음대로 쓰거나 협박을 하는 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묵비권이 있다고 하면서도 진술을 거부하면 욕을 하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했다며 다시는 떠올리기 싫었던 경험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경찰서와 경찰청에 이어 법원과 소년원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도 청소녀들은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냈다. “학교 안 다닌다고 무조건 소년원, 주범이 1~3호 받았는데, 공범이 7호 받을 때, 억울해!!(1호에서 7호로 갈수록 높은 처분)” 한 청소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나도 그랬어, 맞아 맞아’가 연신 터져 나온다. “내가 잘못 했는데 부모님까지 죄인 취급 하지 말아요”라며 권위적인 판사의 모습을 비판하면서 자기 때문에 부모가 판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던 일,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참았던 일 등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부모가 재판에 오지 않아 소년원에 오게 됐다는 청소녀는 “부모가 있건 없건 공정하게 재판을 해 달라”고 외쳤다. 실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경우 보호하고 훈육할 사람이 없다며 더 가혹하게 처분이 내려진다는 것을 청소녀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위 사진:한 아이의 말풍선. "재판할 때 공평하게!"


“사회랑 너무 단절돼 있어”, “남자선생님들 있는데, CCTV 안틀었으면 좋겠구요”, “종교집회 싫어요”, “두발 자유!”, “군대처럼 우리를 구속하고 벌주고 때리고 체벌도 심하고 사람취급 안 하는 거 싫어” 청소녀들이 그동안 교직원들의 눈치만 보면서 참고 살아왔을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더불어 날개짓 2 : 새로운 수식어가 필요해

이어 사법절차 과정에서 겪은 인권침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이내 청소녀들은 “돈, 빽, 말빨, 학생신분, 부모”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걱~ 정답을 원한 건 아니지만 현실의 부조리를 그대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을 보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왔다. 하지만 청소녀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고문이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 등 사법절차 과정에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는 이미 부잣집이나 힘이 있는 가정의 자녀들에게만 불평등하게 실현되고 있음을 누구보다 청소녀들은 잘 알고 있었다.

위 사진:권리 카드


인권교육이 마무리될 때 쯤 청소녀들은 “우리 입장을 이해해줘서 좋았다”,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됐고, 말이 통해서 속이 시원했다”며 인권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청소녀들이 겪은 인권침해를 넋두리처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청소녀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인권을 이해하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폭력적인, 문제가 많은, 결핍된’이라는 수식어로만 소년원 아이들을 규정지었던 사회적인 편견의 벽을 스스로 깰 수 있게 된다. 또한 돋움과 꿈틀이들의 위로와 지지를 통해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권리의 주체로 서게 되는 것이다.

머리를 맞대어 : 부족한 2%를 위하여

인권교육이 진행될수록 청소녀들은 사법절차 과정에서 받아왔던 상처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힘의 관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이 청소녀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의 문제이며, 일상의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문제라는 것을 청소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인권교육이 소년원과 법원 등 소년사법 전반의 정책과 관행의 변화 등을 위한 노력과 만나지 못한다면 소년원 아이들에게 도리어 좌절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결국 인권교육이 하나의 교육과정에만 그치거나 장식용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소년 사법 전체의 변화를 위한 계기로 삼을 때에야 2% 부족한 인권교육의 갈증은 해소될 수 있다.
인권오름 제 18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23일 8: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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