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녕의 인권이야기] 우리 동네는 ‘일회용 디자인’과 씨름 중

서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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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내가 사는 동네 여기저기 마당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멘트 바닥을 다 깨서 정사각형 벽돌을 깔고, 화단도 예쁘장하게 다시 만들고 있었다. 그 무렵 우리 연립 주택도 그 이야기에 사람들이 바빴다. A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와서 연립 마당 사진도 찍어가고, 그 교수와 구청직원들과 우리 연립 주민들이 간담회도 했다. 연립 주민이 원하는 것은 최대한 다 들어주겠다며 처음부터 같이 소통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엄마는 날마다 날 붙잡고 예쁜 꽃을 인터넷에서 보여 달라고 하며 자기만의 꽃 목록을 만들기도 하였다. 서울시에서 공짜로 화단을 예쁘게 만들어주겠다니 신이 나셨다.

얼마 뒤, 한창 드나들던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발길이 뜸해졌다. 대신 용역업체 직원이 등장했다. 이때부터 뭔가 어긋났다. 용역직원들은 “주민들이 제시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없다”, “예산이 한정되어있다”, “이것으로 하는 게 좋겠다”며 역제안을 했다. 그 날 우리 엄마, 옆집 반장 아줌마, 103호 아줌마는 모여서 용역직원들 욕을 하느라 정신없었다. 이후 몇 번 더 동사무소에 모여 논의를 하였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이 제시하는 것을 용역업체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상당히 시간을 소모하였다. 결국 논의만 하다가 1년을 보냈다.

위 사진:[그림: 윤필]

서울시에서 제안한 이 사업은 ‘디자인 서울 빌리지’였다. 2009년 중곡동, 수유동, 신월동 세 곳에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해당 지역 주민의 100%가 찬성을 해야만 사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주민참여형 사업이었다.

올해, 연립 사람들은 어차피 용역업체는 돈 뜯어 먹으려고 싼 거 해 줄 테니, 그냥 꽃밭 넓어지고 계량기 높여주는 것에 만족하고 시작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이 무렵 속속 완성된 연립들을 보셨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예뻐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화단은 비바람 한 방에 푹 쓰러질 만큼 얇디얇은 나무 조각으로 붙여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지나다니다 앉도록 해놓은 의자는 앉자마자 흔들흔들. 그나마 앉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저녁이나 주말이면 주차해 놓은 차들로 의자는 실종상태다. 이뿐인가.

연립과 맞닿은 도로가 아니라 연립 소유의 땅 안으로 의자가 놓였다.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항상 그 흔적이 남는 법. 쓰레기 문제도 모두 그 마을 사람들의 몫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동네는 초등학교가 인근이라 아이들이 먹기 싫은 우유 버리고(꼭 터트린다) 과자 먹다 버리는 등 안 그래도 마을 청소문제로 골치 아픈 동네인데, 이를 더 해준 셈이다. 벌써 우리 동네에서는 ‘구리스 발라서 의자에 못 앉게 하자, 의자 빨리 망가지도록 내버려둬서 벽돌로 막아버리자’ 등의 이야기라 나오고 있다. 아직 공사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다.

반상회를 거쳐 모든 주민이 경관사업에 찬성한다는 서명을 하게 되면 곧 공사가 시작된다. 다른 연립처럼 똑같은 벽돌에 똑같은 화단 디자인이 될 것이다. 우리 연립사람들은 이미 공사가 끝난 후를 도모하고 있다. 어떻게든 빨리 망가뜨려서, 연립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위해서 말이다. 망가지면 보수는 못해준다고 한다니 말이다.

사실, 우리 동네에 의자는 말도 안 된다. 우리 동네 모든 연립들은 주차난으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쟁이다.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모든 도로는 저녁부터 주차장이다. 이런 곳에 의자라니. 동네 주민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바닥의 시멘트를 깨고 벽돌을 깔았지만 차가 몇 번만 지나가도 벽돌이 튀어나오고 더구나 트럭도 많은 동네고, 우리 연립의 경우는 포크레인까지 들어오는 판에 벽돌을 깔면 몇 개월 후 동네가 깨진 벽돌로 골치 썩을 게 훤하다. 용역업체는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똑같은 재료를 싼값에 사다놓고 시에서 주는 예산에서 이익을 내야하니깐.

주민과 소통하고 주민을 참여시키도록 하는 취지로, 특히나 아름다움을 중요시하시는 서울시가 만든 디자인 서울 빌리지 사업. 우리 동네 사람들은 결국 용역업체와 지난한 싸움에 지쳐서 대충 타협하고, 일회용 디자인이 될 것을 예상하며, 그 안에서 당신들 이익을 위해 공사기간 내내 용역업체 사람들과 옥신각신 할 것이다. 꽃나무 하나라도 더 좋은 것을 위해서 말이다.

연립 마당 의자가 완성되면 앉은 모습을 사진 찍어 구청에 보내야 된다고 한다. 앉자마자 흔들. 환하게 웃어본다. 찰칵!

덧붙이는 글
서녕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40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02일 13: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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