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어린이는 언제쯤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어린이의 삶으로 만든 어린이 문학을 기다리며

이기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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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 도서, 3~4학년 추천도서…….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가보면 수많은 추천도서를 볼 수 있어. 수많은 도서연구회, 독서운동 단체에서 해마다 추천도서를 내곤 해. 한 해에도 어린이 책이 수백 권 쏟아지는 마당에 어떤 책이 좋을지 알지 못하니 이런 추천도서가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어른이 뽑는 어린이 추천도서

첫 번째는 수많은 추천 도서 중에서 어린이가 직접 고른 추천도서는 없다는 점이야.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직접 뽑는 문학상 하나 없는 것도 이상해. 사실 어린이 책은 어른이 읽는 게 아니라 어린이들이 읽는 거잖아. 그런데 좋은 책들을 뽑을 때 왜 어린이들의 의견은 물어 보지 않는 걸까? 서점에 가면 어린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는 경우도 별로 없어.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책을 사주는 경우도 많아. 이것저것 읽어보고 자기가 집에 가져가서 재미있게 읽을 책을 고르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지 않고 책을 좋아할 수 있을까? 서점에 가면 “만화책은 안 돼, 판타지도 안 돼!” 뭐 이런 식으로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모습을 자주 봐. 좋은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기 전에 여러 가지 책들을 읽으면서 진짜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눈을 스스로 기르면 더 났지 않을까?

덧붙여 말하면 책을 읽고 뭘 쓰거나 그리거나 퀴즈를 내는 것도 이제 그만 하면 좋겠어. 사실 문제집을 제외하면 시험을 보고 공부하려고 책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 그런데 왜 어른들은 책을 읽으면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할까? 어른들은 예전에 읽은 책들을 모두 다 기억할 수 있나? 책의 종류가 수만 가지인 것처럼 어떤 책은 지루하게 읽고 어떤 것은 흥미진진하게 읽는 거 아냐? 그 모든 책들의 내용을 알아서 퀴즈를 맞혀야 정말 제대로 책을 읽는 것일까?

어린이가 쓴 어린이 소설

이런 저런 불만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우연히 책 한 권을 발견했어. 바로 어린이가 쓴 소설책이지. 책 제목은 『바이달린』(박한얼, 황금두뇌)이야.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쓴 소설들이 책으로 나왔다니! 깜짝 놀랐지 뭐야. 바이달린』은 박한얼이란 친구가 쓴 소설집이야. “나의 작은 나무 동굴에서”, “바이달린”, “화분” 이렇게 세 가지 소설이 담겨져 있어. “나의 작은 나무 동굴에서”는 학교와 학원 공부에 괴롭힘을 당한 주인공이 자연을 찾아 떠나는 가출 이야기이고 “바이달린”은 어려움을 딛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자 노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야. “화분”은 친구들 사이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고.

읽어보면 그림 그리는 듯이 풍경을 묘사한 것도 흥미롭고 6학년 아이들의 우정에 대한 생각들도 아주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요즈음 나오는, 어른들이 팔아먹기 위해 대충 쓴 인성 동화 시리즈 책들보다 훨씬 좋아.

그런데 이 책을 보며 불만이 하나 있어. 그게 뭔지 알아? 그건 이 책의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의 겉모습이야. 너무 성의 없게 만들어진 책 모양새가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 어린이가 쓴 책이라고 성의 없게 만든 것 같아서 너무 화가 났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분위기도 6학년 어린이가 쓴 책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갖는 경우는 많아도 이 책을 쓴 작가를 한 사람의 작가로 대우하는 분위기는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

좀 더 한 사람의 동등한 소설가로서 작가를 대우해주면 안될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런 어린이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자유롭게 출판 할 수 있도록 어린이 문학의 문턱이 좀 더 낮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어.

세상을 바꾸는 어린이

그 즈음에 내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차일드 폴』(이병승, 푸른책들)이야. 이 책도 어린이가 쓴 책이냐고? 아니 그렇진 않아.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이 참 놀라워. 이 책엔 대통령이 된 어린이가 나오거든.

어른들이 망친 지구 환경을 세계 어린이들이 대통령이 되어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어. 열두 살 꼬마 현웅이가 대통령이 되어 다른 나라 어린이 대통령과 지구의 환경을 지키는 모습은 감동을 주기도 해. 어린이들을 너무 순진하고 착한 존재로만 그리고, 빅 마우스(쥐)가 상징하는 게 좀 노골적이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재미있고 어린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주인공으로 그려진 점은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이야.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왠지 슬퍼져. 책 내용과 달리 세상의 아이들은 여전히 당당한 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야.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고르고 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언제쯤 어린이들은 어린이 문학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대략 어린이들은 이런 고민을 하고 이렇게 살 거야’라고 추측하는 어른들이 쓰는 흔해빠진 어린이 책이 없어지려면 어린이들이 직접 어린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어린이 책 작가들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어. 그리고 어린이 작가가 쓴 글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성의 없이 책을 만드는 출판사도 없으면 좋겠어.

아이들이 행복하게 읽고 책에 대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어린이 작가들과 가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 자신이 쓴 글도 출판사에서 소중히 출판해 줄 수 있다면 어린이책은 좀 더 어린이 삶에 가까운 내용으로 어린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려운 용어를 써 가며 이야기하는 지루한 어른들이 아니라, 우리 어린이들이 어린이문학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면 어린이 책이 훨씬 신나고 재밌어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규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242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15일 12: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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