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문헌읽기] 미안하다는 말을 잊은 사회

사죄합니다(케빈 러드, 2008)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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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간 영어권 국가에 인권 연수를 갔을 때, 내가 부러워하는 말이자 유일하게 할 줄 알았던 말은 ‘고맙습니다’(thank you)와 ‘죄송합니다’(I′m sorry)였다. 이리 툭 저리 툭 부딪쳐도 사과할 줄 모르는 아저씨들한테 이골이 난 나는 ‘미안하다’란 말을 자주 쓰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가끔씩 날 불러 밥을 먹여주던 한 선배는 그들 문화의 ‘미안하다’란 단어가 싫다고 했다. 진정성이 없다는 거였다. 눈길도 안 마주치고 그냥 기계적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sorry’를 내뱉는 것에 질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관찰해보니 그런 경우도 많았다. 팔꿈치만 스쳐도 ‘미안’, 스친 척만 해도 ‘미안’, 그냥 자동으로 ‘미안’이었다. 눈도 안 마주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내빼버리는 무관심한 인사가 ‘미안’이라는 걸 발견할 때는 신경질이 났다. 진정성이 없는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만큼 모멸적인 일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위 사진:2008년 2월 13일, 오스트레일리아 케빈 러드 총리가 연방정부를 대표하여 최초로 원주민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출처: 위키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이 무지 듣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에 너무 굶주려서인가 보다. 누가 봐도 분명한 직업병에 시달리다 청춘이 목숨을 달리했는데 그 회사가 조문도 안 오고 무슨 비공개 합의서란 것만 주고받고 97일 만에야 간신히 장례를 치렀다. 끝내 사과는 안했다. 대형 금융사고가 나서 신상정보가 탈탈 털리고, 없는 돈 있는 돈도 운신을 못했는데 용역회사 계약직 혹은 범죄인 탓을 하면서 제일 센 자, 최고경영자(CEO)라는 자는 사과를 안 한다. 이런 저런 공약 중에서 안 지켜도 된다고 애원하는 강물에는 칼질을 하면서 다른 것에는 표 때문에 그랬다고 안면 깔고 사과를 안 한다. 처자식 얼굴 볼 새도 없이 죽어라 일했는데 ‘니들이 경영을 알아?’라며 하루아침에 잘라놓고 시대를 따르라고 윽박질 한다. 고달픔에 줄줄이 죽어나가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다. 총기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학생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도 미안하단 말보단 무슨 제도 타령만 넘쳐난다. 학생도 인간대접을 받아 보자고 최하위의 조례라도 만들어 방파제 삼겠다는데 힘센 어른들 조직들은 꿈쩍도 안하고 있다 한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거리에서 모멸감을 참으며(‘애들은 맞아야 된다’, ‘너도 맞을래’라는 말을 하고 지나가는 어른들이 그리 많단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는 청소년들 가슴에 대못이 단단히 박혔다 한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할까?

‘미안하다’는 말은 분명 하기 힘든 말이다. 하지만 뭐든지 바로 잡고 새 출발을 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위기를 잠시 피하고자 잠깐 미안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이건 아니건 당연히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할 때가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잊은 사회,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사회는 분명 나침반 없이 헤매는 사회일 것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케빈 러드 전직 총리의 국회연설이다. 그는 취임 후 첫 국회연설에서 원주민들에게 백인들이 저질러온 인권침해에 대해 사과했다. 원주민 토지 반환 문제 등 실질적인 문제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죄합니다”, “미안합니다”란 그 한마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 사과문에서 “도둑맞은 세대”란 문명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와 공동체로부터 강제로 빼앗아 백인 가정이나 고아원에서 기르도록 했던 일을 가리킨다. 역대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 우리가 왜?’라며 사과를 거부해왔다. 그에 비춰 케빈 러드의 사과는 인권의 역사에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위 사진:오스트레일리아에 최초로 살았던 원주민들은 세대를 도둑맞았다. [출처: 위키백과]

1993년 당시 유엔의 특별보고관 테오 반 보벤은 ‘중대한 인권침해 희생자들의 배상 등 권리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 보고서에서는 ‘사실의 규명과 진실의 완전하고도 공적인 공개’와 ‘범해진 범죄에 대한 책임의 공개적인 인정’을 인권침해 피해자들에 대한 비금전적 배상형태의 우선적인 것으로 지적했다. 인정과 사과는 피해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안으로는 4․3 제주항쟁, 4․19혁명, 4월 26일 강경대 사망 20주년,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이어지는 때이고, 밖으로는 점령과 비인도적 범죄, 환경난민이 넘쳐나는 때이다. 피어나는 봄의 꽃잎에 서러운 아름다움이 깃드는 이때,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를 아무리 읊조려도 아쉽기만 하다.

케빈 러드의 원주민 인권침해 사과 연설(Kevin Rudd, 2008년 2월 13일)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문화인 이 땅의 원주민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원주민들에 대한 과거의 학대를 반성합니다. 우리는 특히 도둑맞은 세대였던 이들-우리 국가 역사의 오점의 장-에 대한 학대를 반성합니다.

이제 때가 왔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음으로써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에 새장을 열고 미래에 대한 신뢰로 나아갈 때가 왔습니다.

우리의 동료 오스트레일리아인들에게 엄청난 비통과 고통과 상실을 가했던 의회와 정부들의 법과 정책들을 사죄합니다. 우리는 특히 사죄합니다. 원주민과 토레스 스트레잇 섬 아이들을 가족과 공동체와 나라에서 떼어낸 것을 특히 사죄합니다. 이 아이들, 그 도둑맞은 세대의 고통과 상처, 남겨진 후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우리는 사죄합니다. 가족과 공동체의 파괴에 대해 어머니와 아버지들에게, 형제와 자매들에게 우리는 사죄합니다. 그로 인해 자랑스런 종족과 자랑스런 문화에 가해진 모욕과 멸시에 대해 우리는 사죄합니다.

우리,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는 이 사죄가 국가를 치유하는 일환으로서 받아들여지길 요청드립니다.

미래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대륙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쓰이고 있음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집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를 인정함으로써 첫발을 디뎠고 모든 오스트레일리아인을 포괄하는 미래를 주창합니다.

미래는 우리 의회가 과거의 불의를 다시는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결의하는 데 있습니다. 미래는 우리가 원주민이건 아니건 간에, 모든 오스트레일리아인들 간의 기대 수명, 교육의 성취, 경제적 기회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우리의 결의를 견고히 하는 데 있습니다. 미래는 구시대의 접근이 실패해온 지속적인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의 가능성을 부여잡는 데 있습니다. 미래는 상호 존중, 상호 결의, 상호 책임에 달려있습니다. 미래는 그 출신이 어찌됐든 간에, 모든 오스트레일리아인이 이 위대한 나라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에 새 장을 형성할 동등한 기회와 몫을 가진 진정으로 동등한 동반자라는 데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47 호 [기사입력] 2011년 04월 19일 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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