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핵 신화를 넘어]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시대의 우울

핵발전 중심 에너지계획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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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4억 원 VS 4,683억 원’

정부가 2009년도에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원자력 및 핵융합 분야에 투자한 연구개발비는 각각 거의 2배 차이가 난다. 통상적으로 기후변화대응이다, 에너지 계획이라고 하면 풍력발전이나 태양광 발전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막상 정부가 국내 에너지계획의 뼈대로 삼고 있는 것은 핵발전이다. 이러한 양상은 곧 발표를 앞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식경제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제5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을 보면 2011년 핵 발전량 비중은 32.7%에서 2020년에는 44%, 2030년에는 59%까지 올라갈 예정이다. 2011~2024년까지 발전설비 건설에 총 44조원을 투자하는데, 그 중 30조원이 핵발전에 할당되어 있다. 정부는 핵발전이 온실가스 배출도 적고, 전세계적으로도 시장가능성이 커서 우리나라의 미래성장동력에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연합 원전 수출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핵 산업에 대한 청사진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백일몽(白日夢)에 불과하다는 것이 에너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위 사진:출처 : 국제에너지기구(IEA), 세계 에너지 전망(2009)

핵발전이 수출동력이라고?

국제에너지기구(이하 ‘IEA’)는 2009년에 펴낸 보고서를 통해 전 지구적으로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ppm(피피엠, 100만 분의 1)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년경에는 기준시나리오 대비 13.8Gt(기가톤, 10억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체 배출량의 34%에 이르는 막대한 양으로 기후변화대응이 사회․경제 분야에 미칠 막대한 영향력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IEA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중 핵발전이 기여할 수 있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IEA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 경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양 중에서 핵발전으로 줄일 수 있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온실가스량을 줄일 수 있는 비중은 에너지효율개선이 57%, 재생가능에너지가 23%인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다.

핵발전에 비판적이지 않은 IEA조차 핵의 온실가스 감축기여도를 낮게 평가했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점을 시사한다. 첫째 우리나라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세계에서는 핵 시장이 크게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재생가능에너지가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나 시장 확대에 있어 훨씬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설명대로 핵을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삼기에는 효과가 너무나 미미하고, 미래성장동력으로 삼기엔 세계가 핵발전에 대해 매우 비우호적이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 이후 유럽 국가들은 핵발전에 대한 정책을 재고하고 있고, 가동 중인 발전소마저 앞 다퉈 폐쇄를 결정하고 있다. 심지어는 중국마저도 핵발전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핵발전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만 핵발전 중심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물론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자원집약적인 현대 사회의 속성상 에너지소비도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증가할 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과 기후변화대응과 에너지 과잉소비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책을 써서 수요를 낮출 것이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정부는 대책이 없다.

에너지 효율개선이나 소비량 감축에 관심 없는 계획

제5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최종 에너지원별 수요 목표안은 석유 43.8%, 전력 22.8%, 도시가스 12.4%, 신재생에너지 10.4%, 석탄 9.5%, 열에너지 1.1% 등으로 나타났다. 총 에너지 수요는 연평균 2.0% 증가해 2030년에는 3억8890만TOE(티오이, 석유환산톤)에 달한다. 놀라운 것은 이 예상치가 불과 1년 전에 발표된 4차 기본계획의 전망치 3억4280만TOE보다 13.4%나 높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총생산증가율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국제유가나 에너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근거로 1년 만에 예상치가 대폭 상향됐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는 정부가 에너지 효율개선이나 에너지 소비량을 저감할 수 있는 정책에 관심이 없다는 반증이며, 국가의 경제와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장기 에너지정책을 얼마나 부실하게 세웠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21세기 인류가 맞이한 최대위기로 인정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어떻게 소비를 줄일 것이냐 하는 수요관리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70~80년대 경제성장시기의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핵발전은 그러한 잘못된 에너지계획의 핵심이다.

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핵발전 정책

게다가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사회적으로도 큰 불평등을 야기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전력은 영남과 호남에서 생산한다. 반면 50%에 가까운 전력을 수도권에서 소비한다. 서울의 에너지생산량은 2009년 현재 84만MWh(메가와트아우어, 에너지/열량의 단위)고 판매량은 4498MWh로 전력자급률은 1.9%에 불과하다. 반면 화력발전소가 집중되어 있는 충남은 전력자급률이 333.9%로 지역에서 소비하는 양의 2배 이상을 다른 지역으로 넘기고 있고, 핵발전소가 위치한 전남과 경북은 각각 전력자급률이 278%, 189%에 달한다. 도시민들은 자신의 아파트 옆에 거대한 화력발전소나 핵발전소가 들어오는 걸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너지소비량이 많지 않은 지방과 농촌, 어촌 주민들은 도시민들에게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공해는 물론이고, 재산권 침해, 공동체 몰락 등의 직간접적인 피해를 감내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에너지 불평등, 에너지 부정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만에 하나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같이 불행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해당 지역주민들은 도시민에 비해 훨씬 더 파괴적인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 문제가 인권의 문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행하는 한국

이명박 정부는 2009년에 발표한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을 통해 “2020년까지 세계 7대 녹색강국, 2050년까지는 5대 녹색강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는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에너지 소비량은 계속 증가하고, 공장 증설을 용인하며, 교통은 여전히 철도가 아닌 도로교통을 중심에 두는 것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핵발전소는 14기나 증가한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5대 녹색강국이 아니라 5대 핵발전 국가라는 오명만 공고히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시대는 역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진우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인권오름 제 247 호 [기사입력] 2011년 04월 19일 18: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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