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양구의 인권이야기] ‘착한’ 마케팅이 지키는 ‘나쁜’ 세상

강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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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착한’ 마케팅이 유행이다. ‘착한 초콜릿’, ‘착한 커피’, ‘착한 청바지’, ‘착한 여행’ 등. 이런 착한 마케팅이 가장 먼저 공략하는 타깃은 인권 감수성이 남다르다 자부하는 구매력 있는 시민들이다. 그런데 과연 착한 마케팅은 착할까? 시민단체까지 너도나도 이런 착한 마케팅에 뛰어드는 시점에 한 번쯤은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착한 마케팅은 ‘공정 무역(fair trade)’에서 나왔다. 공정 무역의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바나나, 초콜릿, 커피와 같은 먹을거리를 비롯한 옷, 신발, 가구 등을 생산하는 제3세계 노동자, 농민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자는 것. 이 때문에 공정 무역 상품은 세계 시장 가격과 상관없이 더 높은 가격을 치르도록 소비자의 주머니를 연다.

위 사진:[그림: 윤필]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착한 여행의 문제의식도 비슷하다. 관광을 하긴 하되 원시 환경, 토착 문화 보호를 최우선에 놓자는 것이다. 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눈살 찌푸려지는 ‘코리언 스타일’을 보급하는 한국의 관광객을 염두에 두면, 이런 착한 여행은 정말로 필요한 일인 듯하다.

언뜻 보면 딴죽을 거는 게 이상하게 보이지만, 이제 불편한 진실을 살펴보자. 우선 착한 먹을거리! 오늘도 착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 이들은 깜짝 놀라겠지만 정작 제3세계의 먹을거리 문제를 고민하는 이들 중에는 공정 무역 먹을거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공정 무역 먹을거리는 아주 나쁜 구조를 전제한다.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생산자는 코코아, 커피와 같은 선진국 소비자의 기호품을 생산하는 데 평생 자신의 노동을 투여해야 한다. 공정 무역을 통해서 손에 들어오는 돈은 좀 더 늘겠지만 생계를 선진국 소비자에게 의존하는 이런 나쁜 구조는 계속된다.

위 사진:[그림: 윤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생산자들이 자신과 이웃의 먹을거리를 재배하지 못하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선진국 소비자의 기호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제국주의의 강제 때문이었다. 그들이 기아의 구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이렇게 먹을거리를 자급할 토대를 잃은 탓이다.

더구나 이런 무역 구조가 지속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석유 고갈 사태가 초래되거나, 온실 기체 감축에 대한 압력 때문에 먹을거리 원거리 이동에 드는 비용이 훨씬 더 커졌을 때도 이런 무역 구조가 가능할까? 생산자는 더 이상 판로를 찾지 못해 몰락할 것이며, 소비자는 공정 무역 먹을거리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 자체가 차단될 것이다.

공정 무역 상품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봐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먼저 한 가지 예부터 살펴보자. 공정 무역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한 단체는 제3세계의 농민에게 비싼 가격으로 커피를 사와서, 그 커피를 폐기 처분한다. 비싼 가격에 커피를 사주다 보니, 과잉 공급을 막을 수 없었고, 결국 남는 커피를 폐기해야 했던 것이다.

그냥 제3세계 농민이 커피 대신 자신과 이웃의 먹을거리를 재배할 수 있도록 했더라면 이런 어이없는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착한 커피에 주머니를 연 소비자의 선의는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남은 선진국-후진국의 나쁜 구조를 존속시킨다.

그렇다면, 착한 여행은? 이 역시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착한 여행이 원시 환경, 토착 문화 보호 등을 그 내용으로 내세우지만, 사실 제3세계의 원시 환경 같은 것은 현실에 없다. 이 원시 환경은 주로 미국, 유럽과 같은 제1세계에서 온 관광객의 기대를 만족시키고자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런 설명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국립공원과 같은 이른바 ‘야생 보호 구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전 세계 야생 보호 구역은 약 3000곳 정도로 지구 전체 땅의 3% 정도다. 그런데 이런 야생 보호 구역은 애초부터 사람 한 명 찾을 수 없는 원시 상태였을까? 아니다! 상당수의 야생 보호 구역은 그곳의 원주민을 추방하고 나서 말 그대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야생 보호 구역의 원형을 만든 미국 국립공원의 역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1872년 세계 최초의 야생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옐로스톤 공원을 만들면서, 그 공원에 사는 쇼쇼니 인디언을 강제 추방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군대는 추방에 저항하는 약 300명의 원주민을 학살했다.

중앙아메리카 벨리즈의 예는 더 극적이다. 세계 최고의 야생 보호 국가로 꼽히는 벨리즈 역시 만들어졌다. 제1세계 관광객의 생태 관광을 위해서 야생 보호 구역 곳곳에서 원주민은 폭력적인 방식으로 추방되었다. 이제 벨리즈 주민의 상당수는 자기의 땅에서 쫓겨난 채, 착한 관광을 위해서 방문한 관광객에게 ‘강요된’ 토착 문화를 팔아서 생계를 꾸린다.

이제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놓고 토론을 벌여야 할 때가 아닐까?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마냥 착한 일을 한다고,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나쁜 구조 속에서는 사람들의 선의는 자신도 모르게 흉기로 바뀌곤 한다. 이른바 착한 마케팅을 또 다른 그런 예라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가?
덧붙이는 글
강양구 님은 프레시안 기자입니다.
인권오름 제 251 호 [기사입력] 2011년 05월 17일 16:5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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