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거부] ‘대학거부’를 만나 다행이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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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학생!”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붙잡는다. 수원역에 기차 타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길을 설명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면서, 그가 나를 불렀던 호칭을 괜히 한 번 더 곱씹어본다. 나는 학생이 아니다. ‘학교에 다니는 사람’의 의미에서 나는 꽤 오래 전부터 학생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학생’이라 부른다. 특정 나이대로 보이는 어떤 사람들을 이 사회는 ‘학생’이라 부른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다니다 자퇴하고 나서, 그래서 ‘공식적인’ 학생이 아니게 되고나서, 사람들이 “학생이세요?”라고 물어보면 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곤 했다. “학교 안 다녀요.”라고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이것저것 이유를 물어보고 설명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런 물음에 일일이 대답하는 게 지쳐 “네, 학생이에요.”하고 대충 둘러대기도 했다.

이제 같이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했다. 지금 나와 동갑내기인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교 2학년이거나 1학년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학생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몇 학번이세요?” 하고 물어보지만 나는 학번을 갖고 있지 않다.


대학생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 … 대학에 왜 안 갔냐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나는 내가 당연히 대학에 갈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는 ‘당연히 가는 곳’이라고 모두가 이야기 했다. 초등학교 때는 잘 기억 안 나지만, 중학교 때부터 수업시간마다 ‘대학교’를 강조하는 교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니들 계속 이런 식이면 서현역에서 버스 탄다.” 서현역은 그 당시 내가 살던 성남에서는 나름 교통의 요충지였고, 각 지역의 대학교로 가는 스쿨버스가 서현역을 지나갔다. 이 교사의 말은 “이런 식으로 공부 못하는 애들은 지방대 간다.”라는 뜻이었다. “‘지방잡대’ 가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공부해.”라는 이 말을 우리는 듣기 싫어하면서도 다들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인서울’ 대학생활을 그리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고등학교 다닐 때의 꿈을 종종 꾸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조용한 교실에서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문제를 풀고 점수를 올리는 연습에 더 익숙했다. “이거 시험에 나온다”면서 콕콕 집어주는 교사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늘 인기가 많았다. 밤 10시까지 이어지던 야자는 빼먹고 싶어도 다음 날 맞을까봐 겁나서 꾸역꾸역 참가했다. 새벽에 알람소리를 듣고 억지로 잠에서 깰 때마다 생각했다. 주섬주섬 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각했다. 이 지긋지긋한 학교는 언제까지 다녀야 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던 그 때, 그 일상과 하루하루는 더 이상 나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자퇴를 선택했다.

자퇴 이후, 자연스럽게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당시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하려고 준비하던 악기연주를 계속 배웠다. 그리고 그 즈음, 청소년인권활동이라는 것도 만났는데, 활동을 하면서 예전부터 대충 ‘이거 좀 문제야’ 정도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입시경쟁교육’에 대해 좀 더 확실하고 진지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입시를 위한 음악을 배우면서,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억지로 하는 공부처럼 싫지는 않았지만, 점점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교수님은 이런 소릴 좋아하시고, 또 다른 교수님은 안 그래. 교수님에 따라 (대학에)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아무래도 콩쿠르 나가서 상 타는 게 입시에 도움이 되겠지?”,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지.” 내게 악기를 가르쳐주던 담당 교사도, 평소 내가 좋아라 하던 한 연주가도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 음악수업은 한 달에 네 번 정도 받는 레슨이지만 수업비가 비싸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그 수업비를 다 낼 수 있을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입시를 위해 음악공부를 한다는 것도 생각보다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좋아서 시작한 공부이긴 했지만 내가 좋아한 것은 매력적인 그 악기의 소리이고, 그 소리를 직접 연주하며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지, 연주 실력으로 또 다른 틀에 박힌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문제집 풀이만 하지 않는 것일 뿐,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찌됐든 그 경쟁을, 그 시험을, 그 평가를, 치러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를 외치는 운동을 접하게 된 것도 “지금 이대로 괜찮나” 하는 고민의 계기가 되었다. 입시경쟁교육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입시폐지를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는 입시에 편승해버리는 스스로가 껄끄러웠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하는 게, 정확히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게,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인지 이 사회에서 대학을 강요하기 때문인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던 대학진학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나를 설득할 수 없었고, 나는 남들 다 보는 수능을 보지 않은 채 그냥 스무 살, 스물한 살이 되었다.

친구들은 ‘여대생’인데 넌 이름이 뭐니? … ‘대학중심사회’가 만들어낸 현실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내 자신이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그건 내가 종종 스스로 대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지내기 때문이기도 한데, 어쨌거나 이렇다 할 만한 다른 점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괜찮다고, 내가 개의치 않는다고 세상도 나를 괜찮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친척들에게 내가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친척은 내가 계속 재수, 삼수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고, 어떤 친척은 내가 대충 서울의 어느 예술대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알고 있다. 또 가끔 인권교육 등을 나갈 때가 있는데 어떤 기관에서는 최종학력 명시를 요구한다. 그럼 그 때마다 평소에는 잊고 살던 나의 학력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 친구들을 만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 정말이지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다 대학생이구나, 나는 이 그룹에 속하지 않는구나, 나는 다른 길에 서있구나. 그래서 때때로 부럽기도 했다. 그냥 ‘평범하게’ 대학교를 다니는 나의 생활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면 나를 설명할 명함 하나 더 생기는 걸 텐데.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에 그냥 대충대충 ‘대학생이에요’ 하며 편하게 넘길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이런 것이야말로, 내가 친척들에게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그냥 대충 대학이 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대학중심주의’를 잘 보여주는 일인 것 같다. 그나마 뚜렷한 길이 ‘대학’인 것 같으니까 ‘안정적’인 것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배우고 싶은 욕구’도 한 몫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음악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교가 아닌 곳에서 그런 나름 전문적인 공부를 지속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일반 아카데미나 문화센터 같은 곳을 뒤져봐도 돈도 많이 들고, 대학교처럼 체계적인 수업을 하는 곳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모든 수업과 공부가 ‘대학’이라는 곳으로 몰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대학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대학중심사회’의 악순환이다.


이 사회에서는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다들 ‘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은 채 대학생이 되도록 떠밀려 왔다. 비록 원하는 공부, 괜찮은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딱히 잘 먹고 살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대학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교 1학년이 아니라 그냥 고등학교 4학년 같아.”라는 말을 대학생 친구에게서 들었다.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이 문제 시험에 나오니까 잘 봐둬라.’라고 한다니까.”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들이부어야 하는 현실도 한 몫 한다.

이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종종 연락이라도 좀 할라치면 ‘과제기간’에 ‘시험기간’이라고 한다. 대학생이 되면 ‘대학생활의 낭만’이 기다리고 있기는커녕, 결국 우리 중 많은 이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제와 온갖 시험들이다.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 세대’의 삶이다. 친구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유예되는 삶에 하루하루가 짓눌리더라도 가는 길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다고 다들 말한다. 그 경쟁의 레이스에서 밀려나는 순간 낙오자 취급을 하는 것이 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들. 지금 우리들의 현실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대학거부’를 만나 다행이야

예전부터 학벌중심, 대학중심사회에서 ‘수능 거부’를 외쳤던 이들이 있었다. 올해는 그런 목소리를 모아 좀 더 집단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투명가방끈’을 만든 것이다. 이 ‘투명가방끈’ 덕분에 나도 힘을 얻은 부분이 있다. 사실 나는 딱히 ‘수능 거부’ 이런 걸 공개적으로 한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냥 그럭저럭 ‘비청소년’이 되어버린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투명가방끈’ 활동을 함께 하면서 그 동안 혼자서 견뎌야 했던 크고 작은 차별들, 시선들에 대해서 왠지 조금 더 당당해지는 기분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 자신감을, 힘을 주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세상이라는 게 손바닥 뒤집히듯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행동을 보고 사람들이 마음속에서만 바라고 혼자서 생각하던 것을 말과 행동으로 내뱉을 수 있는 일종의 기폭제가 됐으면 한다. ‘대학거부’를 만나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저런 사람이 저런 걸 하네. 나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하는 ‘대학거부’ 운동의 목적일 수도 있다. ‘대학 거부’로 세상에 알리고자 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이다. 나는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힘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냥 조용히 대학을 가지 않은 채 예전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우리를 낙오자 혹은 루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문제인지 아니면 세상이 문제인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잘못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우리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야기가 모여서,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만을 위한 삶이, 대학중심사회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을 향해야만 하는 삶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오로지 한 길’이 아닌 옆으로 새는 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삶이고 싶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아도,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그래도 우리 모두가 괜찮은 삶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난다 님은 청소년 인권활동을 만난 2008년이 청춘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난다, 난다난다신난다입니다.
인권오름 제 278 호 [기사입력] 2011년 12월 06일 18: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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