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정옥의 인권이야기] 남과 더불어 변화한다는 것

공유정옥
print
단체에서 상근을 하다보면 가야할 회의가 참 많다. 단체 안에서 열리는 회의나 모임 말고 단체 밖에서 모이는 회의는 대개 어떤 싸움에 지혜와 힘을 모으기 위한 연대회의다. 참말로 많은 곳에서, 참말로 많은 사안들에 대한 싸움이 있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맞닥뜨리건, 스스로 인간임을 부정하지 않는 한 투쟁과 저항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 그럴 테다.

이런 싸움들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모든 회의에 다 참여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나름대로 꼭 가야할 자리와 안 가도 되는 자리를 구분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내가 꼭 가야하는 연대회의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현장투쟁 승리를 위한 공대위’라는 곳이다. 금속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여긴 이른바 ‘장투(장기투쟁)’ 사업장이다.

위 사진:하이텍 노조는 지금도 계속해서 매주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이번 달에 진행된 금요집회


지난 5년 동안 지지리도 끝나지 않는 싸움을 싸우고 있는 이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4년 여름이었다.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던 이가 대학시절부터 연대해오던 노동조합 동지들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염려하며 상담을 주선해왔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하이텍 노동자들의 고통은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슬픔과 분노가 들끓을 지경이었다.

비열한 자본에 대한 분노. 어제까지만 해도 동지라 믿었고 오죽 힘들면 조합을 탈퇴했을까 이해하려 했지만 법정에서 천연덕스럽게 사측을 옹호하는 거짓 진술을 하는 비조합원들에 대한 배신감. 과연 언제까지 버텨야 하며 이길 수는 있을까 하는 불안감. 오랜 투쟁 과정에서 연대하러 왔다가 상처만 남기고 떠난 이들에 대한 원망.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동지들과 가족들에게 너그럽고 따스하게 대하기도 어려울 만큼 정서가 불안정하고 피폐해지면서 느끼는 일상의 고통……. 차마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고 삼킨 슬픔과 고통은 또 얼마나 컸을까.

하긴, 물리적 폭력이나 언어 폭력 말고도 조합탈퇴 종용, 조합원에 대해서만 공격적 직장폐쇄, 비조합원들만 복지시설 출입 허가, 조합원들만 따로 모아 라인을 만들고 왕따 시키기, 조합 사무실 문 앞에 CCTV 설치하고 감시하기 등 회사가 노동조합을 뿌리 뽑기 위해 저지른 온갖 일들을 견디고 버텨온 그녀들의 가슴 속이 멀쩡하다면 이상한 일이었을 게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을 다니면서 확인해본 결과 열세 명 모두가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고통을 보듬어 이겨나갈 수 있도록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다함께 산재신청을 했다. 치료에 들어갈 비용과 시간을 보상받는 것 뿐 아니라 그 원인인 노동조합 탄압과 감시차별에 대해 세상에 알려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회사 쪽에서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산재요양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불승인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 나가다보니 비단 하이텍뿐 아니라 전국 도처에서 수많은 산재노동자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불승인과 강제 치료 종결 등의 폭력행정에 짓밟히고 있음이 드러났다. 1인시위와 집회, 항의방문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저항하던 끝에 네 명의 동지들이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위 사진:지난해 9월 30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500인 동조단식투쟁


단식을 결의하던 작년 8월 17일 영등포 집회에서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경찰특공대가 진압에 나서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관심을 제법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앞 단식/노숙 농성투쟁이 43일간 이어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하루를 함께 굶는 ‘릴레이 동조단식’과 ‘사람 살리는 100인 동조단식’(9/9), ‘500인 동조단식’(9/30), 전국순회투쟁 등을 통해 함께 뜻을 모으고 힘을 보탰다. 때로는 벅차고 즐거운, 때로는 외롭고 힘겨운 농성투쟁은 여의도로 옮겨져 마무리될 때까지 200여 일간 이어졌다.

그리고 2006년,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집단정신질환 해결을 위한 공대위’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현장투쟁 승리를 위한 공대위’로 재편되었다. 이전 공대위에 함께 하며 투쟁해온 단위들 중 일부가 새로운 공대위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사이 하이텍 자본은 구로공장에 생산직 노동자 40여 명만을 남기고 주말을 틈타 모든 업무를 충북 청원 오창의 신축 사옥으로 옮겨버렸다. 작년 8월 18일에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해고자 다섯 명에 대한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4천만 원씩 줄테니 그만 포기하라고 뻔뻔하게 권유해올 뿐이다. 노동부 감독관조차 ‘이런 경우는 보다보다 처음’이라 혀를 내두르는 사측의 불성실과 기만 ‘덕분에’ 정기교섭은 어느 새 70차를 훌쩍 넘겨 공전 중이다.

위 사진:충북 청원 오창에 새로 들어선 하이텍의 신사옥.


새로운 공대위는 매주 열리는 회의와 구로공장 집회 뿐 아니라 매달 한 번씩 충북 오창으로 멀리 원정투쟁까지 다녀야 한다. 그 곳에 가면 먹고 살 수 있도록 임금을 올려달라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5년째 묵살하고 노동자의 피땀을 알뜰히 모아 건립한 1만평 규모의 ‘으리번쩍한’ 신축 사옥도 볼 수 있고, 그곳 구석구석을 낱낱이 감시하고 있는 수많은 감시카메라들도 볼 수 있다. 사진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사타구니에 사진기를 숨겨놓았다가 꺼내어 조합원들 몰래 사진을 찍고 다시 집어넣는 엽기적인 관리자들도 볼 수 있고, 조합원들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이며 회사 문 앞을 가로막고 버티는 구사대들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작년과 올해 사이에, 아니 지난 5년간의 투쟁 속에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만 같다. 그게 이른바 ‘장투’ 사업장과 그에 연대하는 이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일일 게다. 하지만, 분명히 변한 건 있다. 바로 우리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저항하는 ‘버티기’의 중요함과, 동시에 단순한 밀고당기기를 극복하기 위한 집중의 중요함을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다하여 함께 하는 일상적인 저항과 구체적인 연대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고 변화를 체험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동지 아닐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딘가에서 함께 싸우고 변화하는 누군가의 동지일 것이라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어디든 함께 하길 권한다. 일단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천 원을 휴대폰으로 결제하고 4차 평택 평화대행진의 10만 준비위원이 되는 것이다.

2006년 5월, 법원은 하이텍 대표이사에게 CCTV를 이용한 조합원 감시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2006년 9월1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조합원에 대한 차별행위에 대하여 하이텍 노동조합이 제기한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법」제2조 제4호의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라고 판단하고 대표이사에게 시정권고를 결정했다.
덧붙이는 글
공유정옥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22 호 [기사입력] 2006년 09월 19일 18:04:02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