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정옥의 인권이야기] 어느 병 이야기

공유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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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대 후반부터 심각한 병을 하나 앓고 있다. 다행히 평소에는 큰 아픔이 없지만, 일상 생활에서 곤란함을 종종 겪을 뿐 아니라, 어떨 때는 통증 때문에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 병이 결코 완치될 수 없다는 사실이 유난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병명은 변비.


1. 발병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학생 한명으로 시작해서 삼십여 년 간 엄청나게 학생이 늘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화장실이 무척 비좁았다. 화장실에 들어가 쪼그려 앉으면 궁둥이가 뒤쪽 벽에 닿기도 했다. 아마 학생이 늘어나면서 화장실이 모자라니까 제한된 공간에 칸막이만 더 늘린 모양이다. 우리들은 스스로 이마도 앞 벽에 닿지 않고 궁둥이도 뒷벽에 닿지 않는 노하우를 익혀야 했다.

위 사진:변비는 사회적 질병이다. <사진 출처: 대한영상의학회 www.radiology.or.kr>
그런 화장실에 들어가서 휴지를 손에 꼭 쥐고 궁둥이가 뒷벽에 닿지 않도록 어정쩡한 자세로 쪼그려 앉아 임무를 완수하고 나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학생 수에 비해 화장실이 모자라니, 쉬는 시간이 되면 화장실은 늘 북적였다. 십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시원하게 장을 비워내고 뒷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게 위해서는,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서 몇 개 안 되는 칸을 재빨리 선점해야 했다. 자칫 굼뜨게 굴다가 긴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면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화장실 생활을 삼년 했다. 그 삼년은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밤 열한 시까지 타율학습을 하는 책상잡이 생활이기도 했다. 식당 개 삼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던데, 나는 그런 고등학교 삼년으로 변비를 얻었다.


2. 악화

여학교에서 6년을 보내고 재수학원에 갔다. 콩나물 교실에다가, 절대 다수가 남학생이었다. 여자애들은 앞쪽 자리에 모여 앉곤 했는데, 화장실에 한번 가려면 손에 휴지를 들고 비좁은 책상과 가방들 사이를 게걸음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교실 안에서 고등학교 때처럼 우다다 달려가는 것은 공간상으로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화장실로 달려가는 내 모습을 남자애들이 비웃는 듯하여 심리적으로도 어려운 일이었다.

학원에서도 쉬는 시간은 여전히 짧았다. 똥을 싸느라 늦어서 수업을 시작한 뒤에 문을 열고 들어와 수십 명의 남자애들 책상 옆을 가로질러 내 자리로 들어와 앉는다는 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나도 지금은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여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재수 1년을 하면서, 변비는 깊어만 갔다.


3. 적응

대학에 들어갔다. 학교는 집에서 두 시간 거리였고, 첫 학기에 들어야할 강의는 일주일에 서른여덟 시간쯤이었다. 강의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수업과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은 후딱 지나가버렸다.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없었다.

몇 개의 강의를 들었던 4층짜리 이과대학 건물에는 여자화장실이 딱 하나 있었다. 같은 과 여학생만 사십여 명이었고, 몇이나 되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다른 과 여학생들까지 모두가 그 화장실에 몰려들었다. 그런 곳에서 천연덕스럽게 똥을 싸는 일은 범죄에 가까웠고, 몇 분만 넘어가도 신경질적인 노크소리가 화장실 안에 울려퍼지곤 했다. 여자화장실이 늘어나지 않는 한, 나같은 변비환자의 배변권은 무참히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싸면서 살았는지 기억하기도 싫은 2년을 보내고, 본과에 진입하면서 다른 캠퍼스로 자리를 옮겼다. 한 층에 두 개의 강의실이 있었고, 강의실 하나에 한 학년이 모두 모여 하루 종일 눌러앉아 강의를 들었다. 그 옆에 여자 화장실이 있었다. 같은 층을 쓰는 두 학년의 여학생 팔십여 명이, 세 칸의 화장실에서 일을 봤다. 교수들은 종종 쉬는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강의를 이어갔다.


4. 동병상련

당시 나는 몇 가지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우선, 내 병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똥을 싼다는 게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몸의 필요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내 얘기를 듣는 친구들은 남사스러워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고, 괴짜 취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환우들과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적지 않은 성과였다.

또 다른 변화는 내게 적당한 배변을 위한 시공간을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업시간 도중에 살짝 나가서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느긋하게 앉아 일을 보기도 하고, 아예 낮에는 인적이 드문 도서관에 가서, 그 중에서도 제일 사람이 적은 2층 화장실 맨 안쪽 칸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싸기도 했다.


5. 깨달음

하지만 학교를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터의 환경에 따라 다시 내 병세도 악화와 호전을 오갔다. 내 병력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여러 일터를 다니면서 살펴보니, 변비는 그야말로 사회의 병이었다.

대부분의 일터는 쉬는 시간이 불과 십여 분인데다가, 화장실 수는 적고, 여성노동자 수가 적은 사업장에는 아예 여자화장실이 없기도 하다. 일하던 도중에 라인을 타던 노동자가 “똥 누고 올 동안 기계 좀 세웁시다.”라고 말할 수 없고, 은행 창구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줄지어 선 고객들에게 “저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기다려주세요. 변비라서 좀 오래 걸려요.”라고 말할 수 없고, 지하철을 몰던 노동자가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급히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열차 당역에 십 분간 정차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똥조차 제대로 쌀 수 환경은 가끔 엽기적인 사건을 낳기도 한다. 몇 년 전 어느 지하철 사업장에서는 배탈이 나서 똥을 오래 누다가 열차 탑승 시간에 늦은 기관사를 질책하여, 기관사가 ‘앞으로는 배탈이 나지도 않고, 똥을 오래 누지도 않겠다.’라는 분노의 경위서를 써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또 어느 중공업 사업장에서 쉬는 시간을 1분이라도 어기면 임금에서 까기로 했다는데, 변비 환자들 보고 ‘나오던 똥도 끊고’ 일어서라는 건지 뭔지.

그런 현실들을 통해 제대로 쌀 수 있는 시공간을 찾는 나 혼자만의 적응 노하우나 단순한 동병상련을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고 있다. 학교와 일터에서 화장실과 휴식시간을 늘리는 일처럼, 모두들 제대로 쌀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드는 쪽으로 말이다. 우리, 똥 좀 제대로 싸면서 살자.


덧붙이는 글
◎ 공유정옥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입니다.
인권오름 제 14 호 [기사입력] 2006년 07월 25일 14: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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