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의 훼손은 내 경험에 대한 훼손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톺아보기 ⑤

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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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몇 가지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우울해지는, 가능하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인생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이왕이면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그런 경험들이, 조금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도 그 중 하나다.

“넌 뭐 하고 살아?”

친구들, 친척들, 알바 동료까지. 요즘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이다. 스무 살도 넘은 애가 대학도 안가고 빌빌거리는 것처럼 보이니까, 아마 그들로서는 많이 궁금한 것 같다. 그러면 생각한다. 난 뭐 하고 살고 있지?

너무 많이 말해서 이제는 슬슬 질리지만 한 번 더 말해보자면, 나는 열일곱 살에 학교를 자퇴한 후 대안학교에 다니다가 지금은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 인권 활동가이다. 스무 살이 넘어서 지금까지 과연 나를 청소년이라고 칭해도 될까 헷갈리고, 하는 것도 없으면서 감히 나를 활동가라고 말해도 될까 주저되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우겨보자면, 나는 청소년 활동가다.

하지만 저 질문을 들을 때 마다 항상 이 긴 설명을 주절대지는 않는다. 대개는 귀찮아서 “뭐 그냥 살아요.”라거나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어요.” 같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않는 말을 내뱉기 마련이다. 애초에 몇 마디 말로 뭘 하고 사는지 설명하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하지만 한 때, 누군가가 요즘 뭘 하고 사냐고 물어볼 때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학생인권조례 운동 한다”고 대답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땐, 그랬다.

주민발의 잔혹사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다. ‘매일 매일’, ‘하루 종일’이라는 닳아빠진 수식어가 그렇게 실감나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손이 얼어버릴 것 같은 겨울부터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까지, 보정에 보정을 거쳐 서명을 받았다. 첫 번째 제출 때는 정말 70시간 정도 한 숨도 안자고 서명지만 정리하기도 했다. 며칠 밤을 새고 잠깐 쪽잠을 자러 들어간 활동가를 30분도 지나지 않아 억지로 깨우기도 했고 (그 활동가는 잠시 정신을 못 차리다가 화장실에 가서 한바탕 게워낸 뒤, 서명지를 정리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캐리어에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합숙을 오기도 했다. 9박 10일의 ‘농활’을 사무실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우리 아이들을 위해” 어쩌고 하는 말을 입이 닳도록 해댔고, 눈앞에서 서명지를 찢어 얼굴에 던지고 가는 사람 앞에서도 웃어야만 했다. 서명을 부탁하는 우리의 목소리에 시끄럽다고 짜증내는 사람들, 붙잡고 뭐라 뭐라 훈계하는 사람들, 멈춰서 호통 치는 사람들보다 더 상처였던 것은 무심히 지나가는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주민발의를 성사시켰다.

법도 아니고 고작 조례로 무슨 실효성이 있겠냐는 생각. 이렇게 활동가들을 거의 죽여가면서 조례를 만드는 게 무슨 의미냐는 생각. 청소년/학생을 위한 조례임에도 그들은 서명을 할 수 없다는 생각. 정말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 생각, 생각. 수많은 생각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명을 받았다. 그렇게 주민발의를 성사시켰다.

그러니까, 그랬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나에게 학생인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의 훼손은 내 경험에 대한 훼손이었고 서울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내 기억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렇게 독 오른 고양이처럼 날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몇 번 정도, 이제 정말 끝났구나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서명지를 제출했을 때도, 연장 서명 기간이 끝났을 때에도, 보정기간을 거쳐 두 번째 제출을 했을 때도. 하지만 마음을 놓을 만하면 학생인권조례는 다시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 안의 차별 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과 ‘임신/출산’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제일 처음 들었던 생각은 ‘또야?’ 정도였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그랬다.

그래서, 그랬다. 농성에 돌입했다는 걸 알면서도 밤이 늦어서야 농성장으로 향했고, 처음 농성 며칠간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사무실 이사 문제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그 일로는 변명이 되지 않을 만큼, 별로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서명을 받을 때의 그 마음은 다 어디로 갖다 버렸는지, 어이없을 정도로 미적지근하게 생각했다.

그 때 왜 그랬을까, 조금 나중에야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대답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민발의로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아직 추스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생해서 받은 서명이 이렇게 무참하게 무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위해 신발끈을 묶고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에. 눈을 돌리고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러면 안 됐다. 왜 그러면 안 됐는지 설명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인권이 심의의 대상이 되는 것, 존재가 타협의 대상이 되는 것. 더 이상 뭐라 길게 말 할 필요도 없이 그러면 안 됐다.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청소년 인권 운동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 바로 그런 것 아니었나? 하지만 나는, 음, 그랬다.

그래서, 그랬다. 농성장 앞에서 시의회 압박 기자회견을 다섯 번쯤 할 때도, 보수 단체 회원들 앞에서 침묵 농성을 할 때도, 모두 함께 모니터로 본회의를 초조하게 지켜볼 때도, 많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앞으로 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다행히, 정말로 다행히 차별 금지 조항의 훼손 없이 학생인권조례가 가결된 뒤, 그래서 안도했다. 내 경험이 조금이나마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반, 그리고 처음부터 농성을 이끌고 함께해온 사람들의 경험이 보상받았다는 느낌이 나머지 반. 그렇게, 내 스무 살을 지배했던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지나갔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

이 모든 게 이미 작년의 일이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2012년이 된 지금도 재심의니 뭐니 하면서 끝나지 않고 있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과정이, 더욱 더 믿기지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뭐라 해줄 말도 없는 저들의 유치찬란한 공격 앞에 또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묶어야 할 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조금 기대해보자면, 이제부터의 싸움은 지금까지처럼 헤매지 않길, 주저하지 않길, 서로를 원망하지 않길, 싸워야 할 장소를 헷갈리지 않길. 그래서, 설령 지금까지 우리가 ‘연대’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서로 미워하거나 혹은 미안해하지 않길. 그렇게, ‘함께’ 싸울 수 있길 바란다고, 부끄럽지만 한 번 말해 본다.
덧붙이는 글
어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83 호 [기사입력] 2012년 01월 18일 1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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