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패러디는 거울처럼 현실을 비출 뿐

제3회 청소년 인권캠프에서 만난 유스 이갈리아

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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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 ‘남성’과 ‘여성’, ‘선생님’과 ‘학생’, 그저 나란히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미묘한 높낮이를 갖는 것 같은 관계의 단어들이 있다. 어른과 아이, 남성여성, 선생과 학생, 보이는 대로다. 위의 단어들에 담긴 두 존재는 노골적인 위계질서 속에 놓여있다. 만약 너무나 익숙한 이런 사회적 위계들이 각자의 위치를 맞바꾼다면 어떤 모습일까? 가령 “청소년(어른) 말 잘 들어야지 착한 어른(애) 된다.” 같은 말들이 자연스러운 덕담이 되는 세상이라면? 정치, 경제활동은 판단력 깨끗한 청소년들이 알아서 하고, 세상 때에 찌들어 제대로 사리판단을 못 하게 된 성년자들은 얌전히 청소년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회체제가 현실이 된다면? 이처럼 유스 이갈리아는 청소년이 권력을 쥔 세상이라는 다소 골 때리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유스 이갈리아로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팁

□ 1단계: 최면
유스 이갈리아 프로그램의 관건은 참가자들이 이 새로운 세상에 얼마나 빠르게 이입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도입부 분위기 조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흔히 프로그램 시작과 동시에 ‘당신들은 지금 이 순간, 2012년 대한민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최대한 진지하게 선언한다. ‘이제부터 여기는 청소년들의 유토피아- 유스 이갈리아’ 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열심히 주지시킨다. 절대 웃어서는 안 된다. 은근히 민망해해서도 안 된다. 뻔뻔한 피피티(ppt), 머릿속이 몽롱해지는 배경음악(이번 교육에서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 테마곡이 줄기차게 울려 퍼졌다),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동원해 최대한의 효과를 낸다. 유스 이갈리아가 어떤 곳인지를 소개하는 피피티(ppt)를 발표하는 동안 참가자들과 진행자 모두 최면(?)에 빠져야 한다. 원래 현실 따위는 잊어버려, 앞으로 2시간은 여기가 유스 이갈리아임, 청소년인 내가 짱먹음, 어른 다 비켜, 대충 이런 식의 시건방진 마인드를 갖추게 된다면 성공이다.

□ 2단계: 상황극 만들기 및 발표
피피티(ppt)를 통한 소개가 끝나면, 모둠 별로 간단한 상황지를 나누어주고 20여분 동안 간단한 상황극을 만들도록 한다. 처음엔 나이권력이 바뀌었다는 것 자체에 적응을 못 해서 상황지 속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헤맬 수 있다. 어려울 것 없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청소년들은 현실 속의 어른들처럼 횡포를 부리면 되고, 어른들은 청소년들처럼 당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연출된 상황극은 거의가 이 공식 속에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모둠 속에 나이 꽤 있는 어른들이 한 둘쯤 껴있으면 백이면 백 웃긴 극이 연출된다. 40대 학교 교사 머리를 쿵쿵 쥐어박으면서 “야” 소리는 물론이요, 상황극 내내 '과성숙'을 이유로 무조건적인 훈계와 묻지마식 갈굼을 쏟아낼 수 있다. 연습 때는 미안하고 어색해서 차마 선생님을 막 대하지 못 하던 10대들이 실제 연극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대차게 잘 갈군다. 짜릿한 전복의 쾌감은 유스 이갈리아의 원동력이다.


유스 이갈리아의 대안, 그리고 학생인권조례 공청회

우리 팀이 받은 상황지는 ‘몰래 음주를 하다가 청소년들에게 걸린 비행 과성년자’였다. 유스 이갈리아는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드는 역할 전복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다. 처음부터 재밌는 극을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극을 올리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프로그램 진행자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받은 상황에 관련한 고민이나 대안으로 생각한 것들이 있나요?” 순간적으로 좀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왜 저런 질문을 하지? 어렴풋이 들은 것도 같았다. 상황지 나눠줄 때 대안 얘길 했었지, 그냥 흘려들었는데…. 기억도 못 하고 있었으니 논의한 게 있을 턱이 있나. 당연히 그런 거 없다고 쿨하게 얘기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전혀 생각도 못 했다는 점 때문인지, 그 잠깐의 일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유스 이갈리아 다음 프로그램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가상 공청회였다. 두발복장, 체벌, 강제야자보충, 학생회 참여 4가지 주제를 두고 모둠 별로 조례 안을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학생회 학생들이 다수 있고, 다소 모범적인 학생들이 모인 캠프라는 이야기는 듣고 갔었다. 모둠마다 발표하는 조례안은 솔직히 말해 교사들이 좋아할 법한 내용들이었다. 기존의 규칙 언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체벌을 논의했던 조에서는 원하는 체벌을 선택한다며 체벌선택제라는 안을 내기도 했다. 급기야는 교육을 요청한 교사가 그런 학생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상한 어른들의 반응에 학생들은 영문을 몰라 했다.

패러디는 거울처럼 현실을 비출 뿐

유스 이갈리아는 결국 나이 어린 자들이 어른들의 사회에 보내는 패러디다. 유스 이갈리아의 청소년들이 억지 쓰며 그저 나이를 이유로 성인들을 규제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상황극은 같은 방식으로 청소년을 억압하는 현 사회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유스 이갈리아 속의 세상이 비현실적이라면, 지금의 현실 또한 비상식적이다. 두 세계는 거울처럼 꼭 닮았다. 한 세계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한 세계는 그것을 비춘 상상일 뿐이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스 이갈리아는 결코 이상향이 아니다. 패러디는 기존의 이야기를 비틀어 보여주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유스 이갈리아에서 우리는 아이가 권력을 갖고, 어른이 억압 받는 권력관계를 또 다시 고정시키고 그 질서에 의존한다. 유스 이갈리아 프로그램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상황극은 2시간 잠깐 어른 놀이를 하는 상황을 즐길 뿐, ‘어른’이라는 권력 자체를 문제시하지는 않는다. 유스 이갈리아의 청소년이 쥔 권력은 그저 어른 같은 권력이다. ‘어떤’ 권력인지에 대한 의문이 없을 때 현실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 그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랬다. 유스 이갈리아 프로그램에서는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안에 대한 부분을 생각하지 않았다. 유스 이갈리아라는 세계가 주어지는 순간, 모든 의문과 문제의식을 멈췄다.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 공청회에서 평생 알고 살아온 규칙 밖을 넘보지 않았다. 이 두 조각은 결국 한 질문 속에 있다. 우리는 과연 주어진 상황, 그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가? 범생이 학생들의 보수성 탓으로 상황을 단정 짓고 안타까워하면 그만일 만큼, 쉬운 질문이던가? 그 하루가 지난 후 이제야 이 질문이 속에 맺혔다. 더는 사족을 붙이지 말고, 일단은 여기까지만 담아두고 싶다.
덧붙이는 글
엠건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286 호 [기사입력] 2012년 02월 15일 13: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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