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인권도시’, 과도한 기대를 털어내야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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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는 올해 5월 15일부터 18일까지 ‘2012 세계인권도시포럼’을 열 예정이다. 2007년 ‘광주광역시 민주·인권·평화도시 육성 조례’를 제정한 후 2012년 ‘광주광역시 인권 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로 전부개정하고 인권지수의 개발 및 평가 등의 활동을 벌이며 유엔 인권도시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2005년 진주에서, 한국에서는 최초로 인권도시를 추진하는 흐름이 만들어진 이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도시’가 추진되고 있다. 지자체마다 인권도시를 추진하는 방식이나 인권조례의 내용 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인권을 지자체의 주요한 가치로 만들어가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듯하다. 작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민권리헌장’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것 역시 유사한 흐름이다. 인권의 대중화가 지자체 수준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흐름에서 인권운동은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

‘인권도시’에 대한 과장된 기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은 인권을 특정한 정치공동체의 주요 가치가 되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국가가 인권의 보장과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 역시 인권의 보장과 실현을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도시(지역)는 인권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살펴보려는 인권도시는 유엔으로부터 지정받거나 지자체 스스로 선언하거나 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도시’임을 선포하는 운동이다. ‘인권도시’가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인권도시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대체해 버리는 ‘인권도시’의 유행을 반길 수만은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최근 모습이 보이듯 ‘인권’이라는 가치가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권도시 추진 흐름이 그러한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은, 지금의 인권현실과 인권주체들의 역량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과장된 기대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도시의 의의를 말하는 글에서 흔히 보이는 말들은 비슷한 점을 들고 있다. 추상적인 담론보다 구체적이고 지역적인 실천, 사회권의 보장을 위해 더욱 유리한 접근, 인권주체들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아래로부터의 운동, 인권교육의 일상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의들은 ‘인권도시’ 그 자체가 보증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인권도시 ‘운동’이 어떻게 펼쳐지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또한 인권도시 ‘운동’이 인권조례 제정을 주요 수단이자 목적으로 삼을 때 우려는 더욱 커진다.

추상과 구체의 이분법

인권도시는 특정한 지역에서의 인권 실현을 도모하는 것인 만큼 구체적이고 지역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인권 현실을 파악하고 인권 과제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생략한 채 국가와 도시를 추상과 구체로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오히려 지역적인 실천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인권조례를 통해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거주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어떤 지역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출입국관리소에 의해 강제출국당하는 상황은 지역적인가 비(非)지역적인가. 이런 구체적인 현장에서 인권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각각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인권도시는 지자체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

또한 인권도시를 선언한다고 해서 인권이 갑자기 생활에 밀착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은 멀고 조례는 가깝다는 것 역시 부적절한 이분법이다. 이미 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 조례의 존재를 아는 주민은 얼마나 될까. 무상급식조례는 분명히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 학교에서 밥을 돈 내고 먹느냐 그냥 먹느냐의 문제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전입신고를 하는 것 역시 생활이다. 주민등록법이 그것을 요구한다.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은행도 이용하지 못하고 각종 사회보장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 역시 생활이다. 구체적이고 지역적인 실천을 통해 인권을 실현하려는 운동은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추상적이며 정치적인 실천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상호보완적으로 이와 같은 실천이 벌어질 때 인권도시도 가능해진다.

위 사진:[사진: 2011 국제인권도시네트워크 (출처: 광주광역시 블로그 http://saygj.com)]

인권조례와 인권도시

인권조례 제정은 인권도시의 비전을 밝히고 지자체 수준에서 인권보장을 위한 체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다. 그러나 인권도시 운동에서 인권조례 제정이 필수적인 것도 아니며 인권조례 제정 자체가 인권도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제정된 인권조례안들은 대부분 국가 단위의 인권보장체계를 지역 단위로 축소 재구성한 내용에 가깝다. 지역적 수준에서 구체적으로 착목하는 인권 의제나 실질적인 증진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조례가 제정되었더라도 조례가 종잇장 위에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법이나 조례의 제정 등 인권의 제도화는 인권 실현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장애인운동의 성과인 동시에 새로운 장애인운동이 조직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처럼, 제도화는 인권주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나 제도화 자체가 부각될 때 인권은 인권주체들로부터 유리된 장식품이 될 수 있다. 특히 조례 제정을 위해 상층 정치에 의존하게 될 때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대부분의 인권조례 제정은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 구성에서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졌을 때 추진된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기회‘만’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조례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제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인권주체들의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놓치고 정치공학에 의존해 조례 제정을 추진할수록 인권주체들의 자발적 움직임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그 성과 역시 인권주체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정치인의 치적으로만 남기 쉽다. 인권조례가 제정된 많은 지자체들에서 지역의 인권사회단체들조차 인권도시 추진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비판이 높은 것은 ‘운동’의 현재적 조건이기도 하다.

‘인권도시’가 전략을 대체할 수 없다

지자체 수준에서의 인권조례가 사회권의 증진을 위해서 더욱 유리한 전략이라는 기대 역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인권도시는 ‘도시에 대한 권리’와 연관 지어서 자주 이야기된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구체적인 공간에 대한 권리로 연결된다. 보행 공간, 광장, 주거와 도시개발, 공공역사 등 도시에 대한 접근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에 주목하게 하고 이것은 사회권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인권도시가 그 자체로 사회권 실현에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세입자가 보장받는 임대차보호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아 주택의 점유를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거권이 취약한 것에 대해 인권도시는 어떤 전략을 가질 수 있을까. 주거 환경의 열악함이나 비주택 거주민의 주거 현실을 구체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인권도시라는 선언만으로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인권도시가 아니라 사회권의 실현 전략이다. 올해 초 서울시가 발표한 뉴타운, 재개발에 대한 신(新) 정책구상은 작년 말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의 개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을 넘어서 도시 개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 또는 한국철도공사의 서울역 노숙금지조치를 서울시 조례를 통해 철회시킬 수 있을지 등은 모두 ‘인권도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한 구체적인 운동의 전략에 달려 있는 것이다. 또한 인권도시나 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복지 담론을 시혜에서 권리로 전환하는 데에 기여할 것처럼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인권 자체의 가능성이지 인권도시나 인권조례의 가능성이 아니다. ‘인권도시’에 대한 막연한 기대들이 오히려 인권도시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인권도시는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권조례 제정을 통해 인권교육을 체계적으로 확산시키려고 하며 공무원에 대한 인권교육을 적극적으로 벌이기도 한다. 인권교육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나, 주민들이나 공무원들의 인권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권교육이 필요하다는 문제 설정은 인권조례 제정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인권조례를 아래로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어디에서나 강조되지만 실제로 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과정은 인권 전문가들이 조례안을 만들고 공무원들이 조례를 실행하며 정작 인권주체들은 교육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권조례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인권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인권도시 운동은 거주민들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지가 인권도시를 만들어가는 데에 핵심적인 질문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런 질문 없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참여’는 사실상 특정한 집단의 목소리만을 들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효과만 낳을 수도 있다.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에서부터 권력 관계가 작동한다. 자신의 욕구, 분노, 의지 등을 사회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요구로 만들거나 조직된 힘으로 분출시키는 역량은 여러 가지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가난할수록, 사회적으로 배제될수록, 차별에 자주 노출될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더욱 어렵다. 인권도시 운동이 가장 긴밀하게 만나야 할 인권주체들일수록 인권/도시/운동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멀리 있다. 각별한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참여’의 의미를 묻지 않을 때 참여는 잘해야 절차적 정당화에 그칠 수 있다. 또한 개인적 이해가 참여의 강한 계기가 된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인권도시가 갖추어야 할 공공성을 저해할 수도 있는 위험요소가 된다. 따라서 인권조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인권주체들의 개인적 이해에 머무르지 않고 인권의 가치를 벼리면서 주민들이 보편적 인권의 옹호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인권도시 운동은,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살아가고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보게 하며,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연대의 가능성을 열고 권력관계가 도시/공간을 통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보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들을 현실화하기 위해 정작 중요한 질문들을 대체해버리는 ‘인권도시’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걷어내야 한다. 인권도시는 누군가에 의해 개발되거나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인권주체들이 생산하고 창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권도시 운동은 도시에서의 갈등에 직면하고 그 구조를 밝혀 인권의 언어로 설명하며 인권주체를 옹호해나가는 과정이다. 인권도시 운동은 빈곤과 불평등의 해소에 도전하는 운동이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동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인권도시는 조례의 제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다양한 운동들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 인권도시 운동이 무엇을 만들어낼지,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질문은 바로 인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답이 있어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면서 다시 새로운 질문을 길어 올리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는 용기와 끈기가 ‘인권도시’를 인권도시로 만들 수 있다.
덧붙이는 글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289 호 [기사입력] 2012년 03월 14일 9: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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