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냥의 인권이야기] 어느 죽음의 허망한 이유

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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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시즌이다. 학교들이 개학하자마자 지난주에는 집단 따돌림으로 한 명, 이번 주에는 성적 비관으로 두 명의 청소년이 자살했다.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올해만큼 10대의 자살이 많이 보도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특정한’ 죽음이 언론에 계속 노출된 적이 과거에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가계신용대란 때 가족동반자살이 그랬다. 자녀들과 함께 자동차에 타서 창문을 모두 봉하고 가스를 틀어 자살하거나 흉기로 가족을 모두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하는 일들이 자주 보도되곤 했었다. 빚에 내몰린 사람들은 채권추심을 견디다 못해 죽음을 선택했고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하며 혀를 차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녀들에 대한 살인행위라고 엄중히 비난하기도 했더랬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03년 가족이 하던 가게가 부도나면서부터 2008년까지 나는 채권추심에 쫓기며 살았었다. 당시 받았던 채권추심은 꽤 다양해서 은행권은 물론이거니와 신용협동조합과 캐피탈, 금고, 카드회사 등의 제2금융권, 그리고 케이블TV 광고를 장악하고 있는 제3금융권(사금융)에다가 개인 사채들까지... 지인들에게 빌린 것도 사채니 그걸 따로 분류하면 카테고리가 5개쯤 나오나? 나중에 법원 서류로 정리할 때 채권자가 총 19명이었으니 내가 받은 채권추심은 제법 무용담을 늘어놓을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내가 요즘에 채권추심을 받고 있다면 카톡으로 받았겠구나.’

지난주에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한 학생은 카카오톡으로 집요하게 욕설을 듣고 정신적 가해를 당했다고 한다. 그 뉴스를 보며 나는 예전의 채권추심을 떠올렸다. 그리고 요즘이었다면 채권추심을 카톡으로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상상해보라. 상대방이 확인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 수 있는 그 ‘1’ 자의 존재가 채권추심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지 않은가.

다행인지 뒷북인지, 가계신용이 다시 위기라 대선 예비후보들도, 몇몇 국회의원들도 여신법(*)과 대부업법(**)을 손봐야 한다며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27일에 대부업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는 기사도 떴다. 근데 어라? 이 타이밍에 잠깐. 다시 청소년 자살로 생각이 되돌아갔다. 뭐지뭐지뭐지? 채권 추심으로 쏟아지는 문자, 폭언, 폭행이 사회문제가 되고 그래서 법률 개정 운동이 일어난다고? 근데 왜 학교 폭력에서 행해지는, 카톡을 통한 폭언에는 사회적 해결이 고려되지 않지?????

지난주 집단 따돌림으로 자살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에게 카톡을 통해 온갖 욕설과 언어폭력을 당했고, 그래서 아이사랑국민연대라는 단체에서는 카톡 등 통신망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나 굉장히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하는 새로운 장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리하여 결국 ‘학생 스마트폰 중독 예방과 치유에 관한 법률(가칭)'의 제정하기 위한 운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휴대폰을 얼마만큼 사용할 것인지, 카톡과 SNS 그리고 게임은 사용하게 할 것인지 못하게 할 것인지 등을 보호자가 정할 수 있고 사용하더라도 언제든 '셧다운(사용중지)'을 시킬 수 있게 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다. 헉! 이게 뭐야! 이건 21세기형 유신이잖아!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아함이 커졌다.

한쪽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풀이되고 사회적으로 해결이 고민되는데, 왜 다른 한쪽의 죽음은 개인들의 행동을 조정하고 제약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이야기되는 걸까? 채권추심을 받는 사람들의 휴대폰에 문자 수신을 차단해준다고 해서 부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카톡을 통한 학교 폭력이 폰 사용을 규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닐 텐데, 왜 죽음의 이유가 스마트폰으로 지목되어지는 걸까. 두 가지 죽음이 무엇이 달라 이렇듯 감히, 섣부르게 다루어지는 걸까.

어떤 죽음이든 그 죽음의 이유에는 귀를 기울여야 할 텐데, 죽음의 이유로 지목되는 것이 너무 허망해 서글프다.

(*) 여신전문금융업법
(**)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이 법은 제도권 금융 문턱이 너무 높아 넘지 못하는 서민들이 사채를 쓸 수밖에 없으니 아예 법을 제정해 사채를 양성화시키자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사금융시장을 만들고 개방시킨 법이다. 이 법이 없었으면 우린 그토록 많은 사채CM송을 듣지 않을 수 있었을 거다.
덧붙이는 글
진냥 님은 "교사로 밥을 벌어먹은지 십년차. 청소년들의 은혜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12 호 [기사입력] 2012년 08월 29일 14: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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