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총무의 인권이야기] 마을활동에 주민이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배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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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상의 대부분을 집수리 현장에 갇혀 지낸다. 집수리 일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동네목수’가 장수마을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에 그렇다. 아쉬운 것은 개인적으로 집수리 일을 하면서 육체적으로 지쳐있다 보니 주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소통할 짬이 안 난다는 것이다. 가끔씩 외부에서 몇몇 지인들과 같이 사회경제나 협동조합에 관한 공부모임을 하고 있지만, 장수마을 같은 독특한 주민들의 삶의 구조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동네목수’ 대표는 내가 현장보조 역할만 하다 지치지 말고 인력관리, 자재수급, 공정일정 체크 등 총무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고 하지만 마음처럼 그리 안 된다. 집수리 현장에 가면 현장 일에 당장 매달려 있기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동네목수’의 열악한 재정구조상 체계적인 인력 배치를 할 수 없고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을 빨리 끝내고 다른 집수리 일을 해야 하는 처지이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잘 순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늘 현금 유동성 위기에 부딪히고 월급날 ‘동네목수’ 대표는 돈 구하러 다니느라 피가 마르는 것이다. 예전 어느 드라마에서 “장사꾼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버는 것이다.”라고 말한 게 떠오른다. ‘동네목수’가 집수리 일을 하며 주민들을 남기고 있지만, 이윤문제 역시 아무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지금 서울시에서 발주한 장수마을의 역사문화 보존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진행 중이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서울시가 용역발주를 할 의지가 강한 상황에서 이왕이면 우리의 고민과 관점을 이어가면서 장수마을의 주거환경이 개선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면 하여 그 과정에 함께 하고 있다. 용역의 핵심은 재개발예정구역으로 묶여있던 장수마을을 다른 주거환경정비사업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주민참여와 주민주도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으로 장수마을에서 기존 골목의 커뮤니티를 살리면서 각 골목별 주민모임을 통해 주민조직을 구성하기로 했다. 골목별 리더 분들을 골목통신원으로 위촉하여 골목별 의견들을 수렴하는 실질적인 주민조직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반영으로 지난 9월 16일 하반기 마을회의에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였고, 이 자리에서 6명의 골목통신원이 위촉되었다. 상반기에는 ‘다섯이 모이면 골목이 바뀐다’라는 공모사업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주민 5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오면 골목 난간 설치 등을 성북구청 토목과와 협의하여 진행하겠다고 하니 골목마다 주민들이 낡은 종이에 이름을 쓰고 손도장까지 찍어서 가지고 올 정도로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한 참여의 결과가 골목길을 정비하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면서 골목별 모임을 주목하고 기대하게 된 것이다.

위 사진:[사진: '다섯이 모이면 골목이 바뀐다' 공모에 낸 골목 주민들의 동의서]

한편으로 장수마을에 도시가스 같은 기반시설이 들어올 계획임이 알려지고, 집주인들의 집수리 욕구가 점점 높아지면서 세입자의 주거안정이 흔들리는 난제도 생기고 있다. 얼마 전 대안개발연구모임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앞으로 장수마을에서 고려되어야 할 항목에 대해 구성원 전원이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꼽았다. 10년이 넘도록 처음 계약한 그대로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살고 있는 세입자분들이 장수마을에는 많이 있다. 그런데 ‘동네목수’가 집수리 일을 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집수리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상황이 되자 임대료가 올라가지 않을까 세입자분들은 불안해한다. 실제로 집주인이 집수리를 위해 세입자를 내보내는 일도 있었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집수리가 불가피하고,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집수리가 활발해지면 세입자의 임대료 상승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뾰족한 방안이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장수마을 주민들 내에서 마을 협정 같은 것을 체결하여 과도하게 임대료를 올리지 않도록 주민들 간에 합의하는 것도 방안으로 얘기하지만, 그게 실질적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세입자 모임도 만들고, 집주인들의 모임도 별도로 구성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향후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서로 좋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마을공동체의 싹이나 마을주민들의 역량 강화에 대한 상도 윤곽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을이 변화하고 그 변화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역량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달성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과연 지역공동체의 복원이나 우리가 원하는 대안적인 모습으로 장수마을이 변화할 수 있을까 의구심도 든다. 궁극적으로 주민들의 몫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기가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노력들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복지를 얘기하면서도 재원의 문제만을 논하며 그 안에서 실질적인 주체형성의 문제는 간과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마을 만들기를 통해 주거환경 개선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주체형성의 문제와 인권의 문제가 하나로 묶일 수 있었으면 한다. 10년도 더 지나간 그때 막연하게나마 ‘단순, 무식, 과격’하게 지역공동체를 꿈꿨던 그 마음이 장수마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배정학 님은(주)동네목수 총무이자 장수마을 주민입니다. 장수마을 소식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카페에 들러주세요. (cafe.daum.net/samsun4, 장수마을 안에 동네목수의 작은 카페도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17 호 [기사입력] 2012년 10월 10일 15: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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