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준의 인권이야기] 의외로 ‘빡센’ 예비군 훈련

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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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예비군 동원훈련에 2박3일 동안 ‘끌려갔다’왔다. 물론 강제로 끌려간 것은 아니고 내 발로 들어간 것이다. 훈련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부담하게 될 1년 이하의 징역,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솔직히 무서워서였으니 굳이 ‘자발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총을 들지 않기 위해 감옥을 선택한 동료가 있는 마당에 예비군 훈련까지 내 발로 찾아갔다는 사실은 ‘들키지 말았으면’ 하는 비밀이다. 아무리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지지한다 하더라도 지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진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훈련 당일 아침에는 늘 몸이 무거워진다.

예비군 훈련장에 나타난 문정현 신부님

위 사진:훈련(?)을 받고 있는 예비군들. 예비군 훈련의 일반적인 풍경이다.<출처; 국방부 홈페이지>
하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이고 결국 마음이 몸에 허리를 굽히는 경우는 많다.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탄띠를 두르고 소총을 둘러메고 철모를 쓰다보면 내 안에 있을 지도 모를 ‘인권감수성’은 더 희미해진다. 그런데 올해가 마지막이라 자위하면서 시간을 때우던 내가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은 ‘정신교육’ 시간이었다. 주로 어두운 실내에서 의자에 앉아 1시간 넘게 ‘반공비디오’를 봐야하는 이 시간에 예비군의 ‘관례’는 시작 5분 안에 졸기 시작해서 끝날 때쯤 깨어나는 일이다. 예상대로 예비군들이 하나 둘 고개를 떨구고 나도 동참하려고 숨을 고르던 중 색다른 영상이 나왔다. 눈에 익은 대추리 초입과 문정현 신부님의 모습, 그리고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라는 피켓이었다. 곧이어 무엇인가를 불태우는 장면이 언뜻 지나가더니 민간인들과 군인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나왔다. 올해 초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 한미연합 상륙훈련에 반대하며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연 기자회견. 한반도 전쟁시나리오인 ‘작계5027-04’에 따른 당시 훈련에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인 에이브러햄 링컨호가 한반도 해역으로 진입해 참여하기도 했다.

정신교육의 내용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내용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철없는 소수의 주장’이라는 ‘주장’이다. 비디오를 지켜보는 예비군 중에는 분명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공존하고 있을 테지만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언제나 ‘다수’의 입장이 된다. 예비군 훈련은 그런 다수의 입장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노골적인 장치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을 즈음 들어간 예비군훈련에서 동대장은 “국가보안법 폐지되면 나라가 거덜 난다”고 했다. ‘무장공비’와 총격전도 해봤다는 이 노병은 “군 최고통수권자가 폐지해야 한다고 하던데…”라는 질문에는 대놓고 대답하지 못했다. 1996년 한총련의 연세대 투쟁 직후 예비군 교육장에서는 한총련 학생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를 ‘좌익동조자'로 몬 안기부 제작 비디오를 틀었다가 대법원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예비군 훈련이라는 장치는 간혹 정신교육처럼 노골적이지만 대체로는 ‘정밀하고도 빡센’ 장치이다. 입소와 함께 군번과 현역 당시 계급을 상기시킨다. 아무도 긴장하지 않는 입소식·퇴소식이라 하더라도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은 빠지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줄맞춰 행진하기’는 필수다. 입소와 함께 지급되는 소총은 훈련 기간 내내 필요하지도 않지만 언제나 들고 다녀야 하는, 잃어버리면 큰 일 나는 물건이다. 예비군 훈련은 이렇게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누구나 동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주지시킨다. 예비군은 또한 우리 사회가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호칭에서 드러난다. ‘병장’을 졸업한 이 ‘영원한 병장’들에게는 어떤 현역병 훈련조교도 ‘나보다 군대 늦게 들어온’, ‘쫄따구’일 뿐이다. 반말의 대상이자 ‘개김’과 ‘놀림’의 대상이다. 대부분의 예비군에게 전역 이후 처음으로 맘대로 ‘갖고 놀’ 수 있는 ‘부하’가 생기는 예비군 훈련의 경험은 남성들에게 특별한 희열을 주는 모양이다. 물론 그것은 퇴소와 함께 물거품이 되지만, ‘군대는 계급’이라는 획득된 인식은 퇴소한 예비군 남성들이 모여 사는 훈련장 바깥 또한 점점 군대로 만들고 있다.

군형법 적용받는 동원예비군

위 사진:예비군 훈련은 민간인들에게 다시금 군인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국방부는 어디서 이런 사진을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예비군 훈련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출처; 국방부 홈페이지>
예비군 훈련이 강력한 것은 단순히 군대문화를 다시 각인시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도 훈련 기간 동원예비군은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군인’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예비군이 ‘대간첩작전’이 아닌 정권유지의 도구로 사용된 예도 있다. 1991년 강경대 열사로부터 촉발된 ‘분신정국’에서 서울 지역 일부 예비군 동대에는 “소요진압 작전 태세를 강화하고 전 부대는 즉각 출동태세를 유지하라”는 대외비 공문이 하달되기도 했다. 1992년에는 당시 전북 정읍군에서 예비군 62명을 군청사 경비에 동원해 농민시위를 무력화시킨 군청 공무원이 이듬해 농림수산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향토예비군설치법’이 “무장소요가 있거나 그 우려가 있는 지역 안에서의 무장소요의 진압”을 예비군의 임무로 두고 있는 것이 근거가 됐다. 그러니까 계엄령이 선포되지 않더라도 경찰력으로 부족하면 예비군도 동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 직후 법개정으로 추가된 예비군의 임무이다.

애초 예비군이 창설된 계기는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한 이른바 ‘1.21사태’와 그 이틀 뒤 발생한 이른바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었다. 그해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되었고 충남도교육위가 최초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산하 학교에서 시행했다. 북이라는 외부의 위협을 핑계로 내부의 시민들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눈 ‘애국주의’ 물결은 1972년 10월유신의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당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인권의식은 성장했지만 예비군 훈련에 동원된 시민들은 귀찮아하거나 ‘개기기는’ 하더라도 거부하지는 못한다. 간혹 응급처치요령이나 방독면 쓰는 법을 가르쳐주니 ‘배워서 남 주나’ 식으로 자위하기도 한다. 하지만 징역과 벌금을 감수하면서도 양심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벌금을 낸다고 해서 훈련의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훈련통지서는 계속 날아오고 그때마다 벌금은 쌓여갔다. 이들은 예비군 훈련에 참여해온 ‘다수자’들에 의해 ‘소수자’로 내몰렸다. 물론 그 ‘다수자’에 나도 동참해왔고, 그래서 부끄럽다. 그리고 예비군 폐지운동을 고민해 본다.

예비군 폐지운동이 가능할까?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소수의 주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예비군이 창설된 그해 6월 야당정치인 김영삼은 폐지법률안을 제안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야당후보는 예비군 폐지를 공약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예비군 폐지를 주장한 두 사람이 ‘전직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예비군은 건재하다. 지난해 국방부는 ‘국방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현재 300여만 명인 예비군 규모를 2020년까지 150만 명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은 각 군의 동원 전담부서를 증편하는 등 ‘정예’ 예비군을 만들겠다는 계획일 뿐이다.

아무리 예비군을 줄이고 훈련 기간을 단축한다 하더라도 시민들에게 똑같은 군복을 입혀놓는 것만으로도 애국심은 상기된다. 그 애국심이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예비군 훈련은 전시를 준비하는 ‘훈련’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의 ‘실전’인 것이다.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자는 운동은 국가가 시민에게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 묻는 운동이 될 것이다. 또한 병역,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 전시학도호국단 편성 등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우리 사회 곳곳을 짓눌러온 미시적인 장치들을 철폐하는 운동과 함께 걷게 될 것이다.

걸림돌도 많을 것임이 틀림없다. 전국적으로 4천여 명의 초급장교 출신 예비군 동(읍·면)대장들과 훈련장 주변의 상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계를 여기에 걸고 있다. 동원예비군의 폐지까지 주장한다면 ‘동원사단’의 장교들도 구조조정의 위협으로 반발할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따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예비군 창설 4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예비군 폐지’라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떤 관리도 정치, 조국애, 종교 또는 기타 의견이 갈리는 문제에 있어서 정통성을 부여할 수 없으며, 시민들에게 그들이 품고 있는 신념을 말이나 행동으로 고백하도록 강제할 수 없다." (1943년 미 연방대법원)
인권오름 제 24 호 [기사입력] 2006년 10월 11일 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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