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방앗간] 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위한 <의료결정권>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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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며칠 전, 엄마와의 저녁 식사에서 듣게 되었던 말도 그 뻔하고 식상한 말과 다르지 않았다. 자식 세 명의 결혼과 혼수 비용을 미리 걱정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있는 엄마에게,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던 내 말에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넌 그럼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이 혼자서 그렇게 외롭게 살다가 쓸쓸하게 죽을 거야?”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은 혼자 쓸쓸하게 살겠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어떤 삶을 지향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이들은 결혼과도, 가족과도 별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방황하고 변화하는 유동적인 존재로서의 나를 묵묵히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내 가족이 아니라 내가 곁에 두기로 선택한 나의 파트너 혹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가족 형태 및 상황의 시대적인 변화와 그에 맞물려 다양화된 개인의 파트너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뿌리깊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법제도는 ‘정상’ 가족에 포함되지 않는 관계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주택, 보험, 고용, 입양, 상속 등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영역들에 대한 법제도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는 관계는 법률혼과 친족으로부터 파생된 관계들이다. 그러나 혼인 또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반드시 한 개인에게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며, 자신에게 소중한 타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파트너십을 형성해나가는 모든 개인들에게 파트너십에 대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법률은 유효하다. 특히 가족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가장 큰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기도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경우에는 파트너십에 대한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는 법제도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의료상황에서의 가족중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


혼인·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파트너십이 존중되지 않는 일상적 상황들 중 하나가 바로 ‘의료상황’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지난 12월 8일, 가족구성권연구모임과 언니네트워크는 ‘의료상황’에서 ‘가족 중심적 결정이 소수자들의 삶에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는지’ 살펴보고, ‘의료조치에서의 자기결정권을 제도화한 사례’인 ‘사전의사결정’의 국내 정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소수자의 가족구성권을 위한 <의료결정권> 워크숍’을 주최하였다. 워크숍에서는 생생한 사례를 담은 발표와 토론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들이 현 의료상황에서 겪고 있는 차별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례들 중 하나는 바로 한 비혼 여성의 사례였다. 그녀는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동의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친언니에게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사로부터 ‘결혼한 언니’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의사는 ‘부모님 아니면 남자 형제’의 동의를 요구했다. 이처럼 수술동의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환자 본인 외에도 다른 가족 구성원의 추가적인 동의를 요구받는 것은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관행인데, 이번 워크숍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현재 의료법상 ‘수술동의서’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각 병원에서 제시하는 수술동의서는 모두 제각각이며, 병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응급상황에서는 법정대리인이 아닌 ‘동행한 자’에게도 환자의 알 권리를 위임할 수 있는데, 환자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해 가족의 동의를 받아 오라는 병원의 요구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의료조치에 앞서 가족의 동의를 필수요건으로 요구하는 의료관행은 당장 가족의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한 의료조치가 지연되는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게다가 환자 본인이 가족 구성원을 대리인으로 지정하기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가족 구성원의 동의가 요구되는 상황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성정체성을 이유로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된 동성애자나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트랜스젠더 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의 경우, 가족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단순히 번거롭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그 과정에서 심각한 차별이나 인권 침해를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환자가 무엇을 불편해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환자를 대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환자의 건강을 1순위로 고려하는 것이 마땅한 의료상황에서 매우 비합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의 자기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사전의사결정’ 제도

대리인 지정에 관한 환자의 의사가 존중되지 않음과 동시에 환자의 대리인이 가족범주 내 보호자로 한정되는 상황에서, 해외 일부 국가에 정착되어 있는 ‘사전의사결정(Advance Directives;AD) 제도’는 눈여겨 볼만하다. 사전의사결정 제도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의 측면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하나는 특정 검사 및 처치에 대해 환자가 미리 그 수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의료과정에서 환자의 소외를 예방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 본인이 직접 자신의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환자에게 보다 적절한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특히 해외의 AD 제도는 대리인의 범주를 한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리인으로 지정할 수 없는 사람의 범주를 예외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혼인·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닌 다양한 파트너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의의가 있다.

환자가 받을 검사 및 처치에 대한 결정이 가족 중심적으로 이루어지는 현 의료상황에서 AD 제도는 소수자의 자기결정권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안적인 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AD 제도의 국내 정착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구체적인 소수자적 위치에 따라 AD 제도가 어떻게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충분히 살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여겨진다. 예컨대, 평생 병원에 다녀야 하지만 많은 편견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는 HIV/AIDS 감염인의 경우에는 가족들의 외면과 냉대로 가족과 단절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대리인을 직접 지정할 수 있는 AD 제도가 절실히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방적인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지면서 일상적으로 의료상황에서의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장애 여성의 경우에는 AD 제도 도입에 앞서 평상시의 자기결정권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선결 과제일 것이다. 사전의사결정에는 자기의 몸 상태에 대한, 그리고 자신이 받게 될 검사와 처치에 대한 환자 본인의 충분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처한 상황과 맥락, 그들이 가진 기존의 의료접근성 차이에 따라 AD 제도는 여러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소수자들에 대한 기존의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그들의 의료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고민될 때, AD 제도는 비로소 소수자들의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적절한 틈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의 의료결정권과 가족구성권에 대한 고민 속에서 AD 제도의 국내 정착이 논의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평화님은 언니네트워크(www.unninetwork.net) 활동가입니다. * 이 글은 여성주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니네’(http://www.unninet.net/)의 채널[넷]에 동시 연재됩니다.
인권오름 제 328 호 [기사입력] 2013년 01월 02일 17: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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