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비의 인권이야기] 꿈을 노래하는 청소노동자 합창단

꺼비
print
‘내가 소프라노야?’

‘지금 어디 부르는 거야? 어이구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지금 여기 부르고 있어요. 소프라노는 여기 위쪽 부르는 거예요. 밑에 있는 거는 알토고. 우리도 처음에는 다 그랬어요.’ 합창을 배운 지 5개월 된 선배단원이 선배님 포스를 물씬 풍기며 신규단원에게 설명 중입니다. ‘자, 소프라노부터 파트 연습해보겠습니다. 반주 시작.’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모두들 반주에 맞춰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데, 합창에 익숙하지 않은 신규단원이 갑자기 ‘이거 재미있네.’라며 큰소리로 혼잣말을 합니다. 지휘자 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단원들이 ‘하하 호호’ 배를 잡고 웃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세종문화회관 노동조합 회의실은 50~60대 여성들의 웃음과 수다와 노랫소리로 가득 찹니다. ‘한마음 합창단’의 연습 풍경입니다.


한마음 합창단은 홍익대, 서울스퀘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화여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으로 지난해 10월 첫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창단한 지 5개월 남짓 된 신생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벌써 한 차례 공연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첫 공연 이후 인기가 높아져 7명이던 단원도 18명으로 늘었습니다.

화음, 각자의 음을 내며 어우러지는

합창 연습을 시작하면서 제일 힘든 것이 각자의 파트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합창은 난생처음이고 또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단원들이라 어떤 때는 알토가 소프라노를 따라가고, 또 어떤 때는 반대가 되는 등 화음이 무너지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고육지책이 귀를 막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니 자기 소리를 내기 좀 더 쉬울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잠깐은 몰라도 계속 이렇게 연습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함께 피아노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프라노와 알토가 미묘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가는 대목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건 다른 파트의 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제대로 박자를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래의 즐거움, 합창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합창단원들은 본인과 다른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는 최초의 청중입니다. 이 화음을 듣지 않고 자기 목소리만을 내는 것은 함께 화음을 만드는 즐거움과 환희를 느끼지 못하는 기계적 작업일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작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더욱이 악보 읽는 것도 힘겨워하는 아마추어 합창단 연습과정에 그렇게 화음이 딱 맞아떨어지게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그러나 간혹, 몇 번의 연습 끝에 아주 잠시 화음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소프라노는 소프라노의 음을, 알토는 알토의 음을 정확히 내는 그 순간은 음치인 제 귀에도 너무 아름답게 들려 소름이 살짝 끼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합창 연습을 하며 문득 우리 운동이 합창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내야 할 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전체의 소리를 들으며 함께 하모니를 만드는 합창과 같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


청소노동자 합창단의 시작은 작년에 개최된 3회 청소노동자 행진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꿈,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꾼다.(3회 청소노동자 행진 슬로건)’라는 연극에서 청소노동자들은 학창시절로 돌아가 교복에 갈래머리를 하고, 미래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눈물겨웠습니다. 평소 주름과 거친 손에 가려 보지 못했던 청소노동자들의 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60대의 여성노동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 이제는 꿈같은 것은 잊은 나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모진 세상살이에 지쳐 혹은 자식과 남편의 꿈을 위해 가슴 한켠에 접어둘 수밖에 없었던 꿈들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그 꿈들을 응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조합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삶과 꿈을 나눌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노동자 합창단은 그 꿈들 중의 하나입니다. 인생의 황혼이 아니라, 노동조합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이 꿈꾸는 삶입니다. ‘에휴. 노조 없을 때 겪은 거는 말로 다 못해. 소장이 반말은 기본이고 온갖 욕에...’ ‘최저임금도 다 안 줬으니까. 그 땐 최저임금이 뭔지도 몰랐지’ ‘그래도 짤릴까 봐 말 한마디 못했어.’ ‘노조가 생기고는 180도 달라졌지. 임금도 오르고 인원도 늘고. 이제는 대학 직원들이 인사도 해.’ ‘게다가 세종문화회관에서 합창 연습도 하잖아. 공연도 하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야.’ ‘지난번 우리 공연 동영상을 남편이랑 애들한테 보여줬는데 깜짝 놀라더라고요. 저를 다시 봤데요.’

3월 8일, 청소노동자 합창단의 두 번째 공연


한마음 합창단은 두 번째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00여 년 전, 무장한 군대에 맞서 빵과 장미의 권리를 외치던 미국 방직공장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며 포기할 수 없는 꿈을 노래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공연은 여성의 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이 공연을 위해 매주 읽을 수 없는 악보를 대신해 음 하나하나를 온몸으로 외우며 연습을 반복하는 합창단원들이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꿈을 노래하는 한마음 합창단의 공연이 기대된다면 3월 8일 오후 4시 보신각에서 개최되는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함께하면 됩니다. 3월 8일 붉은 장미와 함께 청소노동자 합창단의 두 번째 공연을 응원해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덧붙이는 글
꺼비 님은 공공운수노조 활동가로 청소노동자조직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334 호 [기사입력] 2013년 02월 20일 18:48:00
뒤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