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 날다] 차별의 속살: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끊임없이 구성된다.

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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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인권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렇게 단정 짓는 일은 위험하다는 불안감이 자리한다. 그 법은 누구의 언어로 쓰였나,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다문화가족구성원이 한국사회에서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은 그 대상을 ‘다문화가족’으로 한정하고 다문화를 매우 협소하게 적용하면서 이주노동자나 그 가족, 난민 등을 배제한다. 다문화가족을 한국인 남성과 결혼이주여성으로 구성된 가정인 것으로만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법이 담고 있는 내용이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적용과정에서 왜곡되거나 축소된다면 그 의미는 퇴색한다. 법을 구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풍부한 인권감수성을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할 때 ‘억울해도 법이 그래요’가 아니라 ‘법보다 인권’의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기준이나 문제설정의 축을 달리하면 새로운 언어와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에서 주최한 예비법조인과 함께한 ‘공감 인권법캠프’에서의 인권교육은 이를 목적으로 우리 사회 차별의 요인과 맥락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내 안의 소수성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보통 특정 집단을 연상한다. 차별의 문제는 내 문제 혹은 나와 같은 어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추상적인 것, 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그 상황이나 맥락을 읽기에 앞서 개인의 성품이나 특별한 사건으로 쉽게 치환해버린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소수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자체로 늘 차별을 야기한다기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고, 다른 특징이 어떤 소수성을 커버하거나 상쇄할 뿐이다. 내 안의 소수성을 살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소수성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차별의 사유와 작동방식을 살피는 일은 타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참가자들에게 몇 가지 차별 사유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돌아볼 것을 주문했다.


위와 같은 사유들로 차별을 당했다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우대받은 적이 있는가. 과거의 경험과 함께 현재의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0을 기준으로 본인이 감지하고 느끼는 정도를 표현해본다. 차별을 받았다거나 위축된 경험이 있다면 마이너스(-)영역에, 반대로 인정받거나 우대받았다면 플러스(+)영역에, 자신과의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거나 없다고 생각하면 0으로 표현한다. 어떤 사유로든 현재까지 차별의 경험이 있다면 이것들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개인적 용기의 발현부터 제도, 정책의 변화까지 가능한 모든 것들을 찾아달라고 주문했다. 참여자들 각자 자신만의 그래프를 작성한 후 모둠별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받았는데, 면접 볼 때였어요. ‘결혼은 할 생각이냐? 애기는 낳을 거냐? 애기를 낳으면 직장생활을 어떻게 할 거냐?’ 남자들한테는 이런 질문하지 않잖아요. 나이도 먹을수록 차별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신체조건이 과거에는 0이었는데 현재는 마이너스로 내려갔어요. 학교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취업을 하려니까 이쁜 게 좋은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나이가 드니까 여자들은 취직하기 더 힘들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가족형태도 마이너스예요. 1인 가족이라 주변에서 뭐라고 많이 해요.”

“저는 부산에서 왔는데 가끔 지방이라는 얘기 듣기는 하는데 별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 저는 여자라서 상대적으로 대우받고 산 거 같아요. 과 대표할 때도 여자라고 남학생들이 많이 도와주고 그래서…”

“저는 남자로 대우받고 산 것 같아서 두 칸 정도 위로 색칠했어요. 남자는 군대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고 하잖아요. 아직 군대는 안 다녀왔는데, 과거에 비해 나이 들면서 대우받는 거 같아 현재는 나이도 플러스로 한 칸 칠했어요. 학력은 좋은 편이라는 소리 들었는데 여기 오니까 그냥 그래서 0이구요. 하다 보니까 제가 별로 이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상황과 맥락이 소수성을 구성한다

각자 작업을 끝내고 나니 장애나 성적지향을 차별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도 하고 주변에서라도 관련한 문제를 경험한 적이 없다 보니 고민해보지 않은 것이 외려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성별, 나이, 학력은 여전히 주요한 척도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사회적 기준 혹은 척도와 만난다. 남성이면서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왔고 부모님의 능력은 중산층... 그런데 이러한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참여자들이 어떤 상황과 맥락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마구 이동했다. ‘뉴질랜드에 살 때는 여자라서 뭐 어떻다는 게 별로 없었고 오히려 대우받는 느낌이었는데 한국에 오니까 확실히 달라요.’라는 한 참가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소수성이 심화되지만 남성은 그 반대로 작동했다.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주류에 포함되기도 하고 변방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성별이나 출신지역과 같이 개별 사유만으로도 연출되지만 성별-나이, 성별-나이-신체조건, 성별-나이-가족형태와 같이 서로 결합되어 심화되거나 새로운 차별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런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상황들이 왜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되는지 ‘왜?’라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차별의 정당화 논리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차별을 정당화하나. ‘차별의 수레바퀴’를 통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이러한 이유로 소외되고 있는 다른 사회적 약자는 없는지 찾아보았다. 원의 단계마다 맨 안쪽부터 <소수성-차별 현실-정당화 논리-같은 이유로 차별받는 또 다른 소수자들>을 생각해보았다. 이 과정에서 찾기 어려운 것은 차별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논리였다. 외모로 인한 차별을 하는 이유로 우리가 찾은 것은 ‘좋은 인상에서 오는 호감의 긍정적 효과’, ‘상업논리’였다. 성별에 대한 차별이 용인되는 이유는 ‘여성에 대한 시선’, ‘경제적 효율성’, ‘가임능력’, ‘사회적 통념’,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은 ‘서울중심사회’, ‘그 지역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성급한 일반화’가 이야기되었다. 이같이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거나 차별사유를 동어 반복하는 데 불과한 내용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차별받는 또 다른 소수자들이 누구인가 살피다 보니 동일한 논리가 다른 소수성을 구성하는데 동원되고 스스로 정당화하는 구실까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차별을 없애자고 요구할 때 반대논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전통 혹은 사회통념이다. 요즘은 경제적 논리가 큰 활약(?)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이유를 살짝만 들춰봐도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도 빈약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야말로 전통으로 굳어질 만큼 오랜 시간을 공생하면서 자연스러운 문화로 우리 몸의 일부로 체화되어 질문하거나 떨어져서 살피지 않을 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어떤 모양인지 살피기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밖으로 나와서 이 사회가 어떤 모양인지 살피는 도전을 해보기를 권한다.
덧붙이는 글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34 호 [기사입력] 2013년 02월 20일 2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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