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이상하게 바라보는 네가 이상해~

아는 얘기 다시 보기… 남녀 성역할 고정관념

고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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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키가 더 크다. 이상해”
“남자가 치마를 입었어. 우하하~ 이상해”
“여자가 왜 요리를 못해? 이상해”
“남자가 주부래. 진짜 진짜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나와 다른 모습, 나와 다른 말, 다른 생각에 대해 ‘이상해’라고 표현할 때가 있어. 이때 ‘이상해’라는 말은 단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계하거나 놀리려는 부정적 감정을 담고 있기도 해. 완전히 반대하거나 부정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닌 것 같은’ 마음과 의식의 표현으로 종종 ‘이상해!’라고 말하는 것이지. 여전히 여자라면 요리를 잘해야 하고, 남자는 바지를 입고, 공주 그림이 그려진 크레파스는 여자 어린이 것으로 놓아 둔 생각의 틀 안에 있기 때문이지.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책을 소개하려고 해. 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 책은 다 아는 얘길 길고 지루하게 설명하진 않아.


바다 여행으로 성역할 구분과 성소수자에 대한 낡은 시선을 거두다

나카야마 치나쓰의 『이상해!』에서 ‘나는’ 어느 날 화장도 안하고 머리카락도 짧은 이모를 만나면서 계속 ‘이상해!’ ‘이상해!’라고 말을 하게 돼. ‘이모 왜 머리가 짧아? 남자 같아. 이상해!’ ‘이모 왜 화장 안했어? 여자인데. 이상해!’

수중카메라맨인 이모는 나를 데리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여행을 시작하고, 바다 속에 살고 있는 여러 물고기를 만나면서 나는 깜짝 놀라게 되지. 어릴 때는 모두 수컷이었다가 성장하면서 가장 큰 놈이 암컷이 되는 흰 동가리, 배 주머니에서 어린 새끼를 키우는 아빠 해마, 커다란 암컷 옆구리에 조그맣게 붙어 살아가는 초롱아귀도 만나게 돼. 물론 바다 속 물고기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계속해서 ‘이상해, 이상해’를 외치지만 반대로 물고기들도 엄청 놀라며 나를 보고 ‘이상해’를 외치기 시작해.



“뭐야? 너는 커서 여자가 될 수 없다고? 이상해!”
“아니 엄마 뱃속에 있었단 말야? 이상해!”
“남자가 여자한테 붙어살지 않는다고? 이상해!”
바다 속에서 돌아 온 나는, 아기를 업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이모부를 보고 더 이상 ‘남자인데 이상해!’라고 생각하지 않아. 더 이상은!

주저함 없이 이것도 저것도 이상하다고 말하던 아이가 도리어 이상해진 낯선 세상은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묘하게 신선함을 주는데, 누구나 이상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상하다고 부정당했던 이전 나의 어떤 모습 혹은 생각도 어쩌면 이상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기대가 피어난 것이랄까. 그래서 충격과 함께 신선한 호기심을 불러오는 책이지. 또 별다른 ‘가르침’이 없지만 쿨하게 생각을 바꾸며 끝내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야. 왠지 ‘아이들에게는 설명을 자세히 해야 돼’라는 고정관념마저도 날려버리는 것 같아서 통쾌한 기분이 들거든.

성역할 구분은 글로 배워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삶에서 체화된 습관의 축적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아. 시험문제로 나온다면 정답을 맞힐 수 있지만, 생활에서는 ‘에이 분홍색이잖아요! 싫어요. 우린 남자라구요.’라고 말하듯, 성별에 따른 구분이 툭툭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지. 무의식은 의식보다 강력한 자기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하는 면도 있어. 생각의 틀을 바꾸고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일은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매우 적극적이어야 가능할 테니까.

책이 의식적으로 목적을 담을 때, 종종 딱딱하고 재미없고 노골적으로 교훈적인 ‘다 아는 이야기’가 되곤 해. 그런 면에서 『이상해!』는 주제와 목적이 분명하면서도, 재미있고 신기한 바다 생물을 만나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책이야. 또 성 역할 구분의 문제만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삶도 떠올려 보게 해. 특정한 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성이 정해지는 흰 동가리의 이야기 속에서 말이야.


돼지모양이 많아지는 집안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도 남녀(사람)의 역할을 성에 따라 구분 짓는 고정관념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야. 요리며 청소, 빨래, 설거지 등 집안일을 몽땅 엄마에게 맡기고, 먹고 놀고 학교가고 일하기만 하는 아빠와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결국 엄마가 집을 나가고 집은 돼지우리가 돼버려. 글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돼지가 되어가는 가족들과 돼지모양이 많아지는 집안의 풍경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해. 마지막에 집에 돌아 온 엄마는 환한 얼굴로 자동차를 정비하고, 아빠와 아이들은 집안일을 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남녀 성역할 고정관념이 문제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어쩌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로 너무 일찍 제쳐놓은 것 때문이 아닐까. 마음도 행동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다 아는 얘기’되면서, 더 깊게 더 넓게 생각하는 과정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남녀 성역할 고정관념에는 어떤 가치와 힘의 관계가 작동하는지... 따져보기도 전에 덮어 버린 ‘아는 얘기’로 말야. 아는 얘기를 꼼꼼히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일상을 변화시키는 시작일지도!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38 호 [기사입력] 2013년 03월 19일 2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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