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수다]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서

정리/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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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사회에서 종종 논쟁이 되는 폭력/비폭력 논쟁을 오늘의 수다 주제로 잡았다. 비폭력과 관련한 담론이 운동사회에 도입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에 대한 합의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비폭력 투쟁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현장에서 대면하는 각종 문제들로 인한 고민들까지 사회운동가들의 진솔한 속내를 들어보았다.

수다쟁이들

사회: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참가자: 아침(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장진범(사회진보연대 활동가), 권현태(서울청년단체협의회 활동가)




폭력투쟁의 기억

(박래군) 오늘은 운동의 실천과정에서 종종 맞부딪치는 문제인 폭력/비폭력 투쟁 문제에 대해 수다를 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엔 ‘투쟁’ 하면 폭력투쟁 밖에 몰랐죠. 폭력투쟁을 하지 않으면 싱거운 거 같고 투쟁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80년대에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권현태) 고백을 해야 하는 건가요?(웃음)
(아침) 과거부터 얘기해야 하나요? 누가 PC 통신 할 때 아이디를 ‘폭력투쟁’이라고 한 거예요. 다들 내가 하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못했는데 그런 거예요, 옛날에.(웃음)
(권현태) 1991년인가? 열사 투쟁 정국 때였지요. 그때 비폭력 평화투쟁을 중심으로 투쟁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학교 사노맹이 대자보를 붙였던 게 기억나요. 그때 “비폭력 평화집회는 민중에 대한 테러이다”라고 했어요. 지금은 정권 퇴진 투쟁을 해야 할 땐데, 싸우지 않고 그게 무슨 짓이냐고 질책하는 거지요.
(박래군) 예전에는 ‘투쟁’ 하면 화염병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안 그러면 도리어 이상할 정도였지요. 그게 언제까지 그랬지요?
(권현태) 1997년까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염병’(화염병)이 날아다니고 그랬어요. 그때까지는 ‘염병’을 쓰는 게 문제될 게 없었는데, DJ 들어서면서 최루탄을 쏘지 않았잖아요. 무최루탄 때부터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폭력성을 공격했던 거 같아요. 그럴 때 잠깐씩 우리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얼마 못 갔지.
(아침) 사실 그냥 추세라서 ‘염병’을 안 던졌던 건 아니지요. ‘염병’을 던져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니까. 그런 게 더 크지 않았나요?
(박래군) 합법 공간이 열리면서 그랬겠죠. 그러니까 80년대에는 불법집회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게 1989년인가 경실련에서 처음으로 집회신고를 했어요. 합법적인 집회신고를 절차에 따라서 처음으로 한 거예요. 불법시위라고 해도 다 폭력시위는 아니죠. 6월 항쟁이 불법시위라고 해서 폭력시위라고 하지는 않죠. 요즘은 전경들이 가하는 폭력 때문에, 비폭력시위를 하자고 하는 말이 안 먹힐 때가 있어요, 시위를 하는 사람들한테. 지난 5월 4일 평택에서 비폭력투쟁을 하던 중인데 워낙 경찰들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초반부터 유혈이 낭자하니까 시위대들이 뭔가를 찾더라고, 그래서 죽봉이 나왔지요.
(아침) 저는 나중에 사람들이 죽봉을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나는 거예요. 어디 가서 집회 나갔다가 다쳤다고 하면, ‘그러게 왜 죽봉을 들었냐’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지요. 또 하나는 비폭력이라는 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잖아요. 폭력도 어떤 힘을 사용하는 거라면, 비폭력도 힘을 행사하는 건데, 서로 다치지 않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그때 다쳐서 병원에 갔는데, 우리는 그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예상은 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대비는 안 하죠. 그러니까 나중에 나오는 소리가 ‘역시 우리가 뭐라도 들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죠.

서로 일치하지 않는 폭력/ 비폭력 투쟁의 개념

위 사진:장진범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장진범) 근데, 경계선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어떤 때 폭력이고, 어떤 때 비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오늘 자리에서는 주로 비폭력 담론에 관한 진보세력들의 견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사실 비폭력을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삼는 것은 법이나 국가잖아요. 그들에 따르면 자신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비폭력이라는 이상이 ‘범죄적인 위험계급’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예방폭력’ 차원이라는 겁니다. 요컨대 ‘비폭력’이라는 담론은, 모종의 폭력 및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앞에서 사태의 원인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보다 적확한 해법을 도출하기보다는, 폭력의 표출 자체를 미봉하고 결국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비폭력의 긍정성을 주장하려면, 이런 식의 비폭력과 어떤 점에서 차별성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동반되지 않은 채, ‘그러면 너희는 폭력이 좋다는 거냐, 대항폭력의 문제점을 인정하지 않는 거냐’는 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권현태) 사실 넌센스인데, 이라크가 침공당할 때 거의 무장해제된 상태잖아요. 미국과 이라크는 서로 폭력을 주고받았다고 하는 게, 제가 보기에 미국과 이라크가 서로 전쟁을 한다는 거 자체가 우습죠. 이스라엘이랑 팔레스타인이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팔레스탄인인들은 거기서 데모하고 있는데, 생존권적 차원에서 싸우고 있는 거고, 먼저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거죠. 그걸 가지고 폭력이라고 부르면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이스라엘은 엄청나게 군사적 대량공세를 퍼붓잖아요. 팔레스타인은 비행기 하나 없는 나란데. 이걸 폭력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저는 평택, 5월 4일이든 그 다음이든, 이런 과정에서 공권력에 대항하는 걸 폭력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넌센스로 보여요. 그건 저항권의 문제이지요. 저항권의 문제를 가지고 폭력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정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안중근도 그런 거잖아요.
(박래군) 일상 시기와 그렇지 않을 때는 구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침) 운동사회에서 폭력투쟁을 자제한 게 합법집회가 가능해지고, 최루탄을 안 쏘고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런 걸 주장하는 이면에는 운동사회 내부의 성찰이라는 게 존재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런 게 받아들여졌던 건,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염병’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런 길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그때는 보이는 게 너무 좁았어요. 그때는 그거 만들고 날라주고, 박수 쳐주고, 그리고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싸웠다. 그런데 그때 싸우는 건 누구인지. 예를 들어 여성이고 혹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싸움에 낄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이겼다고 하는 게 끽 해야 한 차선 점거 해봤다 정도죠. 우리끼리는 투쟁을 했지만, 우리 주장이 사람들한테 알려졌거나 아니면 걔네들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줬나, 그런 거는 하나 없다는 거죠. 저는 학교 다닐 때는 그런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걸 썼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평택이든 어디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 충분히 하고 있잖아요. 얘기 방향을 바꾸어서 폭력을 쓸까, 비폭력을 쓸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더 많이 같이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차원으로 접근을 하는 게 좀 더 쉽지 않을까요?

비합법시위와 폭력시위

위 사진: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박래군) 비합법적인 시위를 일반적으로 폭력이라고 부르나요?
(권현태) 불법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폭력이라고 하지는 않죠.
(장진범) 누가 합법/불법을 규정하느냐가 문제인데. 국가가 합법을 규정하기 때문에 국가는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그거는 말 그대로 ‘잠재적인 폭력’이라고 주장하죠. 그렇게 규정한다고 생각해요.
(박래군) 비합법 시위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꼭 등치되는 건 아니잖냐는 거죠.
(아침) 비폭력 교재에서 나오는 시위는 거의 비합법이죠. 혹은 합법의 테두리를 넘나들면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아요.
(박래군) 난 비합법 시위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장진범) 간디가 당시에 했던 것도 사실은 ‘저 사람들’이 보기에는 폭력적일 수 있는 거잖아요. 왜냐하면 파업을 하는 거고, 뭔가를 중단을 시키는 거였으니까요. 그것을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하여튼 정상적인 활동을 중단을 시키는 거니까.
(박래군) 그렇게 비폭력적인 방법을 쓸 때는 정당성이 높아지는 거 아닐까요? 우리가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공격을 했다고 하는 것과 우리 몸을 던져서 비무장으로 했는데도 폭력적으로 진압 당했다고 하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설득력이나 정당성에서 차원이 다르지 않나요?
(장진범) 저는 그 정당성이라는 게 폭력적인 수단을 썼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폭력적인 수단을 썼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볼 때 그러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고 공감을 해주면 되는 거잖아요. 그건 폭력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그것 자체가 정당성이 있느냐의 문제이고, 폭력을 쓸 때는 정당성을 해치는 수준까지 폭력이 나아가느냐 안 나가느냐에 대해서 스스로 성찰하고 조절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폭력적인 수단을 썼다/안 썼다는 이분법적인 걸 가지고 판단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권현태) 전적으로 동의해요. 저도 경찰에게 맞다가 병원에 실려 간 게 한 두 번이 아닌데……. 우리가 경찰에게 맞을 때에는 거의 ‘작살나게’ 맞잖아요? 거의 죽을 정도로 맞을 수도 있고……. 그 때는 워낙 쇠파이프를 들고 싸우고 이럴 때니까 그렇지만. 그런데 사실 폭력을 쓸 때는 불의의 사고도 일어나게 되거든요. 몇 만 명이 움직이는 싸움일 때, 오천 명이 ‘빠이(쇠파이프)’ 들고 나가는데, 싸우다가 잘못 맞으면 죽는 거죠. 폭력이라는 게 불의의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전제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박래군) 예를 들면 이전에 화염병이 잘못 날아가서 상가를 태울 때 이때는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변명할 거리가 없는 거고. 그때 참 곤란하지 않았어요? 쇠파이프로 한다고 하더라도 누굴 죽이려고 공격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막상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단 말이죠. 이런 경우들이 생길 수도 있고, 이럴 때 어려운 경우를 당하잖아요. 이데올로기 공세가 막 들어오고, 비난은 우리가 다 받고 했잖아요. 그런데 영국의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보습 만들기 투쟁에서 평화 활동가들이 핵잠수함 기지에 들어가서 핵잠수함을 다 부수고 했죠. 그런데 좁은 개념으로 폭력을 얘기하면 그것도 폭력이라고요. 더구나 망치까지 준비를 해서 핵잠수함 기지를 들어가는데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폭력을 썼다고 하지 않죠.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는 이럴 거야, 아마도. 우리가 미군기지를 뚫고 들어가서 뭔가를 파괴했다고 칩시다. 군사시설이라든지 아니면 군사장비를 파괴하면 우리 사회는 뭐라고 할까. 당장 “폭력배”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권현태) 그건 “테러”에요.(웃음)

비폭력은 수단인가? 신념인가?

(박래군) 폭력이나 비폭력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건가요?
(아침) 저에게 이전에는 ‘비폭력’이라는 게 수단이고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가치이자 신념이예요.
(권현태) 아,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게?
위 사진:아침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아침)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행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거(웃음). 왜냐면 너무나 폭력적인 사회에서 물든 걸 어떻게 해. 항상 고민인 거지. 그런데 진짜 폭력을 썼을 때 그런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고, 힘들잖아요. 저 사람 때려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처럼 날뛰던 사람들이 10만 명이나 모이곤 했잖아요? 그 사람들 다 어디 갔는지 모르잖아요. 그런 게 그냥 단순히 분노라든지, 적개심과 같은 감정의 표출이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요. 제가 비폭력을 신념으로 삼는 이유 중에는 단순히 분노나 적개심 때문이 아니라 예를 들면 평택에 미군기지를 만든다고 하면 여기가 평화롭게 지켜져야 하기 때문에, 여기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할까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싸우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비폭력투쟁을 제가 처음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중 하나가, 비폭력투쟁이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같이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심지어 그런 거죠. 우리가 싸워야 돼. 쟤네들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그런 생각이었던 거죠. 그런 예를 들면, 평택에서 포클레인 기사가 그냥 돌아간다든지, 아니면 용역들이 와서 이런 줄 모르고 왔다, 미안하다 얘기하는 걸 직접 경험한 적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 그게 어떻게 보면 비폭력의 힘인 거 같아요.
(권현태) 비폭력적으로 하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 그런 건가요? 제 생각에는 명령을 안 내렸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거죠. 폭력적으로 밟으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죠. 저도 전경들과 함께 담배를 많이 피워 봤어요. 지휘부에서 정세 판단하면서 용역들에게 적당히 밟아라 하면 밟는 거죠. 말씀 하신대로 그럴 수는 있는데, 쟤네들이 용역 계약에 묶여 있어서 못하는 거구.
(아침) 그런 것도 있고……. 아까 말씀 드린 것 중에 예전에 폭력시위 때 흔히 얘기되는 무기, 화염병, 쇠파이프, 돌, 그런 걸 한다고 했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한정적이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고, 그게 비폭력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장진범) 폭력에 관해 말할 때 흔히 나오는 ‘적과 싸우다가 적을 닮아 버렸다’는 말처럼, 폭력에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나치의 극단적 폭력에 시달렸던 유태인들이,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이 같은 폭력의 비극적 측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폭력에 관한 집단적 반성과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느냐 여부에 따라 폭력에 관한 담론들을 평가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대항폭력’이라는 담론은 상대편의 폭력을 근거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본 논리를 갖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이같은 정당화 때문에 자신들의 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반성과 대응이 억압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모든 저항에는 모종의 폭력적 측면이 동반되지 않을 수 없지만, 이것을 대항폭력이라는 ‘담론’에 따라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비폭력’이라는 담론은 대안일 수 있는가.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앞서 지적했듯, 비폭력이라는 담론은 폭력을 사고와 정치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사고나 정치와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 바깥으로 배제하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점에서 대항폭력이나 비폭력이 아닌 ‘반폭력’이라고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폭력을 당연시하거나 혹은 ‘비인간적/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항상 동반되는 고유한 의제로 인식하고 대처하려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운동과 비폭력투쟁 관계

(박래군) 비폭력 투쟁의 방식은 알겠는데요. 비폭력투쟁의 준비는 어떤 게 있나요?
(아침) 비폭력직접행동을 준비할 때는 매우 긴 시간 동안 준비를 해요. 토론만도 몇 개월이 걸리면서 이 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요. 상당히 여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이죠. 각 그룹들이 있으면 얘기를 해서 그룹에서 얘기가 되는 것을 기다렸다가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는데 그전에 또 훈련을 몇 개월씩 해요. 열 사람이 뭘 하기로 했는데, 한 명이 같이 하는 것이 곤란하다면, 이 사람은 거기서 빠지고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치를 하고, 다른 식으로 끊임없이 토론하고. 행동을 직접 하겠다고 하면 모두가 다 깊이 논의하고, 명확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각각의 경우에 대비해서 아주 치밀하게 준비를 하는 거죠.
(박래군) 시애틀 세계화 반대 시위 할 때 사람들이 되게 준비를 많이 하더라고요. 치밀하게 훈련도 같이 하고.
위 사진:권현태 서울청년단체협의회 활동가
(권현태) 폭력/비폭력이라는 것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가 비폭력 집회라고 규정을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잖아요. ‘효순이, 미선이 집회’ 때 우리가 비폭력집회를 주장했다가 처음에는 많이 맞았잖아요. 그런데도 저들은 폭력집회라고 한단 말예요. 폭력/비폭력은 법과 제도를 장악하고 있는 힘을 가진 저들이 규정하는 것이지, 우리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죠. 이것은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규정성이라고 봐요. 어차피 한국 사회에서 살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든 구조적, 제도적 장치를 날려버리지 않는 한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폭력에 길들어 있다는 것 자체는 운동사회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대중들 속에서 폭력은 적당한 선에서 제어가 된다고 봐요.
(아침) 그러니까 첫 번째 얘기한 것 있잖아요. 구조적 폭력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새롭고, 재미나고, 다른 사람이 함께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힘도 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죠. 사실 비폭력 역사에서는 한번 썼던 것을 또 써 먹는 것이 아니라 투쟁에 필요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거거든요. 촛불집회라는 것도 일반사람들의 분노를, 일반사람들이 희망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어떤 수단 중에 가능한 것을 찾은 것이었던 거고, 삼보일배도 처음엔 좋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별로고…외국에서나 각광을 받는다고요. 그리고 비폭력투쟁을 통해서 명망가들 중심에서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방향을 틀었잖아요. 그런 것에서도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장진범) 그런데 비폭력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사실과 다를 수 있어요. 시위를 할 때 사수대를 꾸려서 보내면 많은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함께 할 수 있잖아요. 저는 비폭력이라는 것 자체는 사실은 훨씬 훈련도 많이 되어야 되고, 결의수준도 높아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비폭력이라는 걸 강조하게 되면 좋은 점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게 명망가 중심의 운동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삼보일배나 단식 같은 거, 농성…비폭력이라고 얘기하면 선도투쟁 중심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훈련된 활동가들만 할 수 있는 방식. 저는 이건 평가를 한번 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죠. 간디 같은 경우에도 끊임없이 강조한 게 비폭력이라는 게 비겁한 게 아니고, 만약에 비겁함과 폭력이라는 두 경우밖에 없다면 폭력을 선택하겠다고 말했죠. 왜냐면 자기가 생각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비겁함이고, 스스로가 도덕적으로 사기가 저하되고 점점 더 기존 상황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하는 걸 제일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훈련도 필요하고, 준비도 필요하고, 사고도 필요하고.

대중운동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

(아침) 만약에 폭력이라는 게 들어가게 되면, 예를 들면 평택투쟁에서 폭력을 쓸 수 있는 인원을 준비할 수 있고, 그것을 동원할 수 있는 단체가 그 투쟁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 쪽에서 제안한 일정과 계획대로만 갈 수 있다는 거죠. 만약에 비폭력으로 한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느냐. 거기에 들어가서 계속 농사를 짓는 등의 일상을 이어가는 거, 그것을 우리가 높이 사는 거죠. 비폭력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을 하면서 거기에 초점을 두고 하면서 알려나가는 거, 그런 게 더 맞다고 생각을 해요.
(장진범) 그런데 역도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비폭력 투쟁을 했을 때도, 예를 들어 내가 조직에 있는데, 우리 회원들이 대부분 직장인들이면 기존의 합법 공간을 넘는 경계를 넘는 비합법 투쟁을 하고 그래서 연행이 되고, 구속이 되는 상황이면 그럴 수 있는 활동가들을 많이 갖고 있는 조직이 주도권을 잡는 거죠. 오히려 대중조직들이 여기서는 소외될 수 있죠. 대중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도, 비폭력만이 아니라 비폭력 플러스 합법 활동일 경우에 대중들이 잘 참여할 수 있지, 비폭력인데 반합법투쟁처럼 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이미 그 순간부터 대중의 참여는 쉽지가 않아요.
(권현태) 폭력투쟁이냐 비폭력투쟁이냐는 건 투쟁 주체들이 선택하는 거죠. 자기조건과 신념과 고민에 맞게 활동하면 된다고 보고요. 이게 서로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봐요. 여기서 일반적으로 폭력을 주장하는 건 아니죠. 폭력투쟁이나 비폭력투쟁이 서로 따로 분리되어 있거나 떨어진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광주와 같이 시대가 원하고 상황이 원해서 피를 원한다면 피를 흘리고 싸워야죠. 지금 오히려 고민해야 할 지점은 폭력과 비폭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문제들이 계속 쟁점화되어서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운동의 대중화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운동이 대중들과 거리가 있게 만들어지고,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긴 하지만, 대중을 가진 단체들이 힘있게 일체성을 담보하고 자기 단체를 유지한다거나 이런 게 많이 침체되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요.
(박래군) 바꿔 말하면 폭력투쟁, 비폭력투쟁 이런 말이 자꾸 나오는 것은 대중운동이 약해져서다 이런 말이네요.
(권현태) 그런데 비폭력투쟁을 수단과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로 보게 되면 폭력투쟁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저는 폭력투쟁이라도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실천하는 경우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목을 죄는 기본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실은 정의라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아침) 그런데 그것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앞으로 다른 방식을 고민해 보자는 거 아닌가요?
(권현태) 그렇기 때문에 비폭력투쟁과 폭력투쟁이 대립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폭력투쟁과 비폭력투쟁은 자기 처지와 조건에 맞게 전개하면 되는, 전술적인 문제지 결코 전략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거죠. 대중을 어떻게 전취하고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일상적 폭력이 증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FTA 체결되어 봐요. 일상적인 폭력은 극단적 폭력을 부릅니다. 이 폭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대항권리들이 더 중요하죠. 중요한 것은 대중운동을 어떻게 다시 세우느냐에 있다는 겁니다.
(박래군) 오랜 시간 같이 수다를 떨어봤는데, 의견들이 좁혀지지 않네요. 오늘 수다가 무엇을 합의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폭력/비폭력 문제를 갖고 이렇게 대중운동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 각자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운동사회에서 폭력, 비폭력 투쟁과 관련해서 더 깊은 논의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인권오름 제 25 호 [기사입력] 2006년 10월 18일 16: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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