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우리를 모이게 해준 공권력

‘집회 시위 제대로’ 모임 출발

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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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노조나 처음 투쟁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경찰이 요구하는 준법시위양해각서 같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집회신고서에 쓴 글이 맞춤법이 틀렸다고, 경찰에게 모욕을 당하고 신고서 접수가 거부되기도 한다. 사람을 얕잡아보는 경찰의 이런 태도에 속이 많이 상하지만 잘 몰라서 못 싸우기도 한다.’

‘집회신고서에는 플래카드를 3개만 쓴다고 했다며, 4개째 다는 날 연행했다. 경찰이 천막을 집회신고물품으로 받아줄 수 없다고 해서 법원에 소송을 해 이겼다. 그랬더니 중구청이 나서서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철거했다.’

‘불법을 저지르는 경찰에 맞서는 우리가 합법/불법을 먼저 고민하게 되면 대응할 수 있는 게 없다. 사후 법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투쟁 현장에서부터 저들이 그런 행동을 못하게 강하게 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벌금부과가 계속되니 투쟁을 할 때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 다짐을 하고 있다. 돈은 어떻게 해서든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투쟁을 못하기 시작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다.’


위 사진:집회시위 제대로 해보자는 워크숍 사진<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지난 4월에 열린 ‘집회시위의 권리를 넘어, 연대와 저항의 권리 찾기’ 워크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인권활동가, 투쟁사업장 노동자, 철거민, 학생, 변호사 등 제대로 집회 시위 해보고 싶은 이들이 모였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현실, 아니 법과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집회개최를 사전에 신고하는 것도 억울한데 의기양양하게 준법서약서를 내미는 경찰, 신고서 접수 즉시 접수증을 발부하게 법률에 명시되었음에도 모욕적인 언사를 남발하며 접수를 거부하는 행태들, 소송으로 겨우겨우 이겨도 금세 다른 법률 조항을 들이밀면서 탄압하는 공권력들. 그 날 워크숍에 모인 사람들은 집회 시위 현장에서 직면하게 되는 수다한 문제들이 단지 형편없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문제만도 아니고, 법적 대응을 잘 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현장의 경험 속에서 느끼고 있었다.

공권력은 집회시위의 본질을 꿰뚫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집시법 2조의 집회 정의를 찾아보면 ‘옥외집회란 천장이 없거나 사방이 폐쇄되지 아니한 장소에서 여는 집회’라고 되어있다. 이건 집회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옥외’에 대한 정의다. 집시법에는 집회에 대한 정의가 없다.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그건 모두 집회가 된다. 그래서 집시법 15조에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冠婚喪祭), 국경행사에 관한 집회에는 ‘사전신고제-금지보완통고-처벌’로 이어지는 일련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모임과 만남을 정치적-비정치적으로 구분하고 판단해 통제하겠다는 목적이 분명한 법률이다. 재기발랄한 표현형식이라고 알려진 플래쉬몹에 대해서 대법원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집회이므로, 사전에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단지 전형적인 집회라고 생각되는 것들만 규제하는 법률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검찰과 경찰이 집회 시위를 탄압하거나 관리하는 수단은 집시법에 그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이 규율 관리하려는 것은 집회 시위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사회적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이다. 검찰, 경찰은 노조법(불법 쟁의행위), 형법(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모욕죄, 명예훼손죄) 경범죄처벌법, 경찰관직무집행법, 집시법과 같은 다양한 꽃놀이패를 손에 쥐고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평화적인 집회 그 자체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대법d원의 판례로 인해, 불법집회라며 해산명령불응죄로 참가자들을 처벌하는 게 어려워지자 경찰이 더욱 애용하는 게 형법상의 일반교통방해죄다. 유인물 배포행위를 경범죄처벌법으로 처벌하기도 하고, 강정에서는 집회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직접행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대거 업무방해죄로 체포 처벌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나 단체행동은 태반이 불법쟁의행위로 규정되어 업무방해혐의로 처벌되거나 집시법 상의 불법 집회, 중복 집회 등으로 금지되고 있다. 사장과 경영진에 대한 비판은 명예훼손죄로 다수가 고발당하고 처벌당하고 있다. 지난 총선 때 전국 각지의 투표소에서 청소년들이 벌였던 청소년 참정권 요구 1인 시위를 선관위 직원들은 선거법 처벌조항을 언급하면서 제지 협박했다.

최근 대한문 일대에서 벌어지는 경찰과 중구청의 ‘창의적’인 탄압을 떠올려보자. 절차적으로 문제없이 ‘허가된’ 집회인 대한문 농성장을 집시법으로 건드릴 수 없자, 중구청이 도로교통법을 끌고 와 통행에 방해가 되는 천막이므로 철거한다며 행정대집행을 했다. 통행에 불편을 준다더니, 화단을 만들어서 인도를 아예 반으로 줄여버렸다. 덕수궁 앞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반영구적 구조물을 만들었다고 항의하니 허가를 받아온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은 걸까? 새누리당 의원들이 문화재 주변에서 집회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 법률을 발의했다. 오로지 대한문 앞 집회 감시만을 목적으로 하는 감시카메라까지 설치되었다. 경찰-중구청-문화재청-새누리당, 집시법-도로교통법-문화재관리법으로 집회 시위를 탄압하는 공권력과 법률의 이름은 다를지라도 목적은 동일하다. 대한문뿐만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천막농성장에 대해서 비슷한 방식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천막이 사라진 자리에 화단까지 놓는 게으른 모방까지 그대로!

검경이 볼 때, 도심에서 벌어지는 집회 시위나, 개별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단체행동과 쟁의행위, 강정과 밀양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 싸움, 철거민들의 주거-생존권 싸움은 동일한 맥락에 있다. 이 모두 공공질서라는 이름을 가진 지배질서를 위협하거나 소란스럽게 하는 사회적 저항과 연대의 움직임인 것이다. 그러니 집회 시위에 온갖 법률을 적용해서 탄압하는 것도 가능하고, 전형적인 집회 시위로 생각되지 않았던 쟁의행위, 기자회견, 문화제 등에 집시법을 적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과거 유신시대의 긴급조치나 80년대 군사독재 시절처럼 모든 저항을 탄압하거나 무조건 잡아들이지 않는다. 검경은 모든 집회, 시위, 쟁의행위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합법과 불법으로 구분 짓고 적극적인 포섭과 배제 전략을 사용한다. 선진 집회 시위 문화, 성숙한 노사문화라며 치켜세워지거나 용인되는 행위들이 한편에 있고, 그들이 불법으로 규정해 합법의 틀 안에 들어올 때까지 탄압당하는 저항행위들이 다른 편에 있다. 그래서 단지 탄압만 당하는 게 아니라 규율되어지고 관리되는 것이다. 경찰이 이 코스로는 집회 신고를 접수할 수 없으니 다른 길로 가라고 할 때, 12시까지는 집회를 마무리하고 해산을 하라고 요구할 때, 2개 차선은 내줄 수 없고 1개 차선으로만 가라고 할 때, 경찰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말 지 누구나 고민하게 된다. ‘짜증나지만 굳이 벌금이나 처벌을 감수해야 할까’라는 생각들을 하며 특별한 결의(?)나 계획이 없는 한 대부분 경찰의 요구를 따르게 된다.

‘집회 시위 제대로’ 모임에서 기대하는 새로운 기운들

그래서 집회 시위 제대로 하고픈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기에,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도 다 같이 모여서 집회시위, 저항과 연대의 흐름에 대한 탄압에 체계적이고 총체적으로 대응해가자는 마음으로 모였다. 공권력은 저리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부처와 법률의 경계를 뛰어넘어 공동대응하고 있으니 말이다. 집회 시위 탄압하려고 협조하고 공조하는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공무원 사회의 답답함이나 관료제의 문제 같은 건 다 거짓말 같다.

흔히 서로 다른 현안과 주제를 가진 투쟁들이 만나고 연대하게 되면서 경험하는 운동의 성장을 이야기한다. 집회 시위, 저항과 연대의 권리를 찾기 위한 이 모임 역시 마찬가지다. 집회 시위의 권리는 그 동안 주로 인권단체들에서 ‘집회 시위의 자유’라는 자유권의 중요한 권리항목으로 보고 싸워왔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쟁취한 집회의 자유라는 보편적인 권리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공권력에 의해 권리와 법률의 보편타당성이 심히 훼손되는 때에는 애초에 권리를 획득하던 때로 되돌아가 아래로부터 권리의 정당성을 획득해가는 운동이 더욱 필요하다. 저들은 집회 시위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확신에 차 떠들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현행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전제를 지킨다면 말이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집시법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집회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선 안 된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 내용에 공감하고 함께 하려는 낌새가 보인다면 가차 없는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가 외치는 집회 시위의 자유는 추상적인 인권원칙에 머물러선 안 되고, 현장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삶의 권리와 주장들이 자유롭게 울려 퍼질 수 있는 자유가 되어야 한다. 이런 외침이 불법적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주장이므로 억압하고 규율해야 한다는 권력의 뻔뻔함에 맞서야 한다.

'집회 시위 제대로' 모임은 바로 그런 기운을 만들어내려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다. 삶의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싸움들이 더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서라도 집회 시위의 자유는 정말 중요하다. 경찰이 집회 시위를 규율관리하려고 한다는 것은, 단지 집회현장에서 잘 통제하겠다는 것을 넘어서, 바로 그런 싸움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임을 많은 사람들이 직감하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정해진 통로로만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자유 없이 평등과 연대는 불가능하고, 평등과 연대 없는 자유는 기만일 뿐이라는 익숙한 이야기가 집회 시위 현장에서 더욱 절절히 느껴지는 때다. 공허하거나 당위적인 권리가 아니라 싸우는 사람들의 존엄을 일깨우는 감각으로서 연대와 저항의 권리, 그리고 그런 자존감에서 출발하는 집회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실천들이 분명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감히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45 호 [기사입력] 2013년 05월 15일 11: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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