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지선의 인권이야기] 국가안보는 중앙정부만의 몫일까?

박원순 시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

고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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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미군기지 환경문제에 다시 불을 붙였다. 지난 9일, 페이스북을 통해 "2001년 서울 용산 미군기지 주변에서 기름유출이 발견된 후 12년이 흐른 지금 유출이 지속되고 그로 인한 토양·수질 오염은 확산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면서 ”오염원인 용산 기지 내부를 조사해야 하지만 주한미군 당국이 이를 거부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이라며 분노했다. 이 글은 접한 많은 시민들은 박원순 시장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미군을 상대로 새로운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기대에 찬 응원을 보내고 있다.

미군은 갑, 한국정부가 을, 거기에도 끼지 못했던 지자체

미군기지 기름유출에 대응하는 서울시 행보에 주목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미군과 관계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역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확장문제뿐 아니라 환경문제 해결에서도 당사자가 되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행정체계가 중앙집중식인 탓도 있지만, 국가안보와 연결된 미군기지 문제는 당연히 중앙정부의 몫이라는 사고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미군기지 확장이나 환경문제의 피해 당사자는 지역주민들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민이나 지방자치단체 역시 당사자이다. 그동안 군산, 원주 등 상습적으로 기름유출이 되었던 미군기지가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담당공무원들은 미군뿐 아니라 환경부, 국방부 등 중앙정부의 무시와 폐쇄성에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미군과 협상에서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중앙정부로 권한과 책임을 돌려왔었다. 자발적으로 미군기지 환경오염, 소음피해를 모니터링 하는 주민조직의 문제제기에 대해 ‘큰 일이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는 식으로 주민들의 활동을 무시하던 일도 여러 지자체가 보여준 전형적인 모습이다.

미군기지 전담민원을 체계적으로 처리하는 전담부서 운영하는 일본

미군의 주둔 현황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서는 90년대에 주일미군에 정보공개를 주일미군기지인 사가미하라시 보급창 내에 PCB 수만 톤이 쌓여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환경오염사고에 민감하던 당시 일본사회는 유해물질인 PCB가 미군기지 내부에 일본 사회가 모르는 사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큰 충격에 빠졌다. 결국 주일미군은 국제간 거래에 민감한 환경오염물질을 캐나다로 보내려고 하다가, 현지 주민들의 반대로 미국으로 보냈다가 결국 태평양 섬에서 처리하였다. 이 사실을 처음 밝혀낸 사람은 해당 미군기지가 있던 곳의 한 시의원이었다. 엄청난 보급기지가 자기 지역에 있는데, 지자체나 주민들의 접근뿐 아니라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는 불안감에 주일미군에 직접 정보공개를 신청했다. 물론 수없이 많은 시도 중에 중요한 자료 하나를 발견한 것이지만, 주목할 것은 이런 시도를 지방자치단체, 시의원, 주민들이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비단 이 곳뿐 아니라 주일미군기지가 있는 주요 지자체에는 미군기지 담당부서가 따로 있어서 소음, 범죄, 환경오염 등에 관한 여러 가지 민원을 체계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위 사진:군산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기름 <사진 출처: 군산 미군기지피해상담소>

더 이상 시간끌기는 안 돼

이번 회의에서 논의가 되는 녹사평역 기름유출은 이미 12년이나 지난 사건이다. 현재 용산기지 주변의 녹사평역, 캠프 킴(Camp Kim) 주변 등에 기름 유출로 오염이 확인된 대지 면적은 최소 1만 2천235㎡(약 3천700평)에 달하며, 오염을 정화하는 데 그동안 소요된 비용이 58억원 가량이라고 알려졌다. 2001년 기름유출사고 당시에도 무려 2년 동안 기지 내․외부를 조사했고, 그 결과 용산기지 안의 기름유출이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도 서울시는 녹사평역 주변 토양과 지하수오염을 계속 정화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정화비용만 총 30억 원에 달한다. 당시 미군은 기지 외부의 한국 측 조사를 믿을 수 없으니 재조사하자는 식으로 시간을 끌었다. 결국 휘발유 오염원을 규명하는 데 1년이 걸렸고, 등유 오염 조사로 추가 1년을 보냈다. 그런데도 끝내 미군은 등유로 인한 오염을 인정하지 않았고, 2003년 12월에 공동조사단의 활동을 종료했다.

미군이 환경문제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태도가 시간끌기인데, 다른 환경오염 사례에서도 담당자 출장, 조사방법 협의 등을 이유로 공동조사단 구성과 운영은 지연되기 일쑤였다. 이번 환경분과위원회에서는 도대체 왜 12년이 지난 지금도 기름유출은 계속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는 게 핵심이다. 기지시설관리는 엉망은 아닌지, 미군은 그 원인을 알고서도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숨기고 있는 것인지 밝혀야 할 것이다. 오염이 계속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끌기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SOFA 개정 없이는 서울시의 의지 지속될 수 없어

서울시의 행보를 응원하지만, 지금 제도에서는 서울시 의지가 지속되기는 어렵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더라도 계속 주민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일단 기지 내부의 시설관리, 환경문제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지방자치단체의 기지접근권을 보장하는 형태로 SOFA(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가 개정될 수 있어야 한다. 사고가 터진 후에야 대응하는 체계를 벗어나 오염을 예방할 수 있는 체계개선이 필요하다. 현행 제도상으로도 미군은 자체 환경관리기준(EGS)에 따라 4년에 한 번씩 미군기지별 환경관리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제대로 작성이 되고 있는지 정보공개요청을 하고, 시민들에게 공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SOFA에 환경조항이 생긴지 10년이 지났지만, 그 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사회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는 결코 좋은 제도로 기능할 수 없다. 서울시가 만들어 놓은 좋은 계기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조, 시민들의 지지 등으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더 늦기 전에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할 수 있도록 다시 한 걸음나아가자!
덧붙이는 글
고이지선 님은 녹색당 전국사무처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49 호 [기사입력] 2013년 06월 12일 17: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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