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 폭동] ‘나는 처녀가 아니다’는 왜 유머 사진이 되었을까?

‘순결’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향한 그들의 시선

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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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녀가 아니다’는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이름이다. 우리는 ‘나는 처녀가 아니다’라는 제목을 걸고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피케팅에 나서고, 청소년 당사자들이 자신의 성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청소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발칙한 선언’을 진행했다. 처음엔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의 누군가가 ‘여성 청소년이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고 밝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하는 물음에 피켓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위의 선언 프로젝트가 한겨레 21의 기사로 여섯 페이지 넘게 나오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우리가 처음 ‘나는 처녀가 아니다! 여성 청소년에게 순결을 강요 말라’등의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던 것은 2012년 퀴어퍼레이드 때였다. 피켓을 만들기 위해 여러 청소년 활동가들과 모여 피켓 문구를 고민하는데, ‘우리에게 둘만의 공간을’, ‘애인이랑 통화하게 요금제 좀 올려줘’, ‘어린이의 몸은 어린이의 것! 어린이는 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등의 가장 절실하고 재미있는 문구들이 많이 나왔다. 그 뒤로도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은 행사나 집회에 참여할 때 이런 피켓들을 들고 나섰다.

‘나는 처녀가 아니다’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우리가 실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성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드러낼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외치고 우리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주력했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조롱과 언어폭력

‘나는 처녀가 아니다’ 피켓을 든 우리의 사진이 널리 퍼지게(?) 된 시작은 작년 잡년행진 때였다. 기자들의 반짝이는 플래쉬에 멀뚱멀뚱 서 있던 사진이었는데, 어느새 보니 일베(일간베스트)니 디씨(DC인갤러리)니 하는 사이트와 블로그에 ‘나는 처녀가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사진에 나온 세 명의 얼굴은 피켓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고, 악플을 단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린 거라고 했다(누군가는 ‘처녀 부정하는 자기 얼굴 밝혀져서 처녀로서의 시장가치가 떨어지는 건 싫다는 거네? ㅋㅋㅋㅋㅋㅋㅋ’라는 댓글을 달았다). 뿐만 아니라 못생겼네, 뚱뚱하네, 줘도 안 먹(?)겠네 등의 전형적인 악플들이 있었고, ‘미래의 룸나무(룸쌀롱+꿈나무)’라는 창의적인 댓글도 있었다. 쟤네를 강간하겠네, 따먹겠네, 그런 성희롱 댓글은 기본이고, 또 하려면 몰래 하지 왜 저걸 자랑하냐는 댓글도 많았다.

내가 처음에 이 사진을 발견하게 된 건 페이스북에서 지인들의 공유 때문이었다. 어느 유머 사진을 주로 올리는 계정에서 우리 사진을 올린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댓글로 친구들의 이름을 태그 걸어 이 사진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했다. 그들은 우리를 비웃거나 욕하거나 가벼운 일상의 유머로 취급했다. 최근에는 일베 게시판에 이 사진 뿐 아니라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의 카페와 페이스북 계정까지 스크랩을 해서 올려둔 게시물이 있었다. 어떤 기독교 사이트에는 우리 사진을 두고 ‘청소년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발판삼아 거리낌 없이 지껄여댄다’는 둥, ‘전교조와 종북단체가 이러한 활동을 옹호하고 있다’는 둥 하며, 우리 아이들을 파멸시키려는 사단의 흉악함을 청소년인권이란 가면을 쓰고 아이들을 악하게 만드는 저들을 이젠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우리 활동에 위협을 가할 모의에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혐오와 악플에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진 않지만, 피켓을 들고 나설 때 누가 사진을 찍거나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면 조금 꺼려지게 되는 게 있다. 개념이 하도 많으신(?) 분들의 시선이 바뀌지 않으니 일 년이 지나도 겁이 난다.

세상은 청소년에게 무성적일 것과 성적 대상이 될 것을 동시에 강요한다. 학교에선 여학생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지 매일 아침 검사하면서, 포르노 사이트에는 교복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네이버에 ‘콘돔’을 검색하면 청소년이 볼 수 없는 정보라고 하고, 피임방법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임신하면 학교를 전학가라고 한다. 여성 청소년은 더욱 조신하게 행동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밤길도 다니지 않아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아직도 어떤 학교에서는 ‘순결 사탕’을 나눠주며 순결을 약속하게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오프라인 피케팅 뿐 아니라 청소년 당사자의 경험을 담은 ‘나는 처녀가 아니다–청소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발칙한 선언’온라인 선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많은 분들이 리트윗과 좋아요 등으로 공감을 표시하며 응원을 해주시고 있다. 또 우리의 선언을 본 청소년들이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게 ‘실제냐? 너네가 지어낸 거 아니냐?’ 그런 말들을 한다. 선언을 진행하면서 얼굴은 드러내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목소리의 떨리는 외침이 왜 들리지 않는지, 왜 진정성을 의심하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한 달간 서른 개가 넘는 선언들이 모이고, 미처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는 분들, 시즌 2를 진행한다면 꼭 참여하겠다는 분들이 계신다. 나름 성황리에 끝난 프로젝트라고 생각이 되어 앞으로는 더 나은 무언가를 하려 한다.

‘나는 처녀가 아니다’ 피케팅의 걸음도 멈추지 않고, 온라인 선언 프로젝트도 시즌2를 기획하고 싶다. ‘나는 처녀가 아니다’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출판도 할 계획이다. 우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그렇게 쉽게 지워버릴 순 없을 거라 말하고 싶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와 차별,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묵인되는 온갖 불합리한 것들에 맞서기 위해,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은 다른 청소년인권단체와 함께, 또 청소년의 성적권리를 지지하는 여성단체나 성소수자단체와 함께 운동을 해나가려 한다.

‘나는 처녀가 아니다’ 사진은 한낱 비웃음거리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지만, 언젠간 좀 더 진지하게, 우리의 목소리와 요구를 듣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윤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50 호 [기사입력] 2013년 06월 19일 12: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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