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오래된 기억 속, 어린이의 세상

고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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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랑 놀았어? 아이, 예쁘다 해줘~”
“아니, 강아찌 이치로 이떼 피이한찌 어마 멍...%&*%”
“아이구, 그렇구나. 이제 가자”

옆에 선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엿듣게 됐는데, 이런... 귀 기울인 보람도 없이, 듣고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문득 엄마는 아이의 말을 알아들었단 말인가?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엄마의 손길을 뿌리치는 아이의 울상진 얼굴을 보니, 아이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듯. 바쁜 시간 탓이든, 익숙하지 않은 표현 탓이든, 어린이의 말과 세상을 다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이가 아닌 사람들의 안타까움.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욕망인가? 아이와 강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런 궁금증은 뭐든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어른의 욕망이 아니라 기억을 더듬는 그리움이라고 해두자.

누군가와 소통, 대화, 이해를 말할 때 ‘눈높이’를 강조한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자고. 가끔은 정말 그들, 어린이들의 세상이 궁금하다. 『모르는 마을』(다시마 세이조 글/그림)은 어린이들의 세상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그림책이다.


소풍을 떠난 ‘나’는 그만 버스를 놓치고, 뒤이어 온 버스를 혼자타고 ‘모르는 마을’에 내리게 된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나의, 모르는 마을 소풍이 신기하고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차도 놓치고, 모르는 마을에 내렸다면 ‘아, 어떡하지’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들법도 한데 그림책에서 두려움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그림은 밝아지고, 찻길에 내려선 처음부터 민들레가 함께 걷는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것에 두려움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어린아이는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세상에서 모든 걸 처음 만나니까. 일상에서 어린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두려움을 차단하는 보호막을 자처하지만 두려움은 어린이가 아닌 사람들의 경험이다. ‘모르는 마을’이 누구에게는 낯선 곳의 의미로 두려움을 전할 수도 있지만 일면 누구에겐 새롭고도 자연스런, 기묘한 조화가 어우러진 소풍이지 않을까.


‘새가 나 있었다.’
‘바나나 두 마리를 잡았다.’
‘밭에는 소랑 돼지랑 물고기가 자라고 있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만 산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때는 언제였지? 구름을 타고 둥둥 떠다닐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또 언제인가?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 큰 깨달음이 있었을 터. 지금은 그 순간조차 기억할 수 없지만, 『모르는 마을』은 오래된 기억을 되짚는다. 시내에서 헤엄치는 망고와 바나나, 길을 걷는 민들레를 보고 읽고 있으면 ‘나도 이런 생각 했는데..’라고 말이다. 사물을 사람처럼 의인화하고, 어찌 보면 뒤죽박죽 꿈 속을 여행하는 것 같기도 한 소풍이 결코 낯설지 않은 느낌을 주는 건, 오래전 상상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른이 되면 다시는 그런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없는 걸까? 쉽지 않은가 보다. 『셜리야, 물가에 가지마!』(존 버닝햄 글/그림)를 보면, 같은 장소, 같은 공간에서도 어린이와 어린이가 아닌 사람들은 전혀 다른 여행을 한다.


부모와 함께 물가에 놀러 온 셜리. 가족이 함께 놀러와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엄마 아빠와 셜리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의자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신문을 읽고, 차는 마시고, 낮잠을 자는 부모와 달리 셜리는 엄청난 모험을 한다. 바다에서 배를 타고, 해적선을 만나 위험에 처하는가 하면, 친구가 된 개와 한 편이 돼 해적과 맞서 싸우고, 보물지도를 훔쳐 바다에 뛰어 들고, 보물을 찾아간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부모이라고 비판적 시각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어린이에겐 어린이의 세계가 있다는 걸 기억나게 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어린이가 아무것도 아닌 종이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화분의 꽃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큰소리를 치고, 커튼 뒤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도 너무 당황하지 말기를! 맘껏 그들의 세상에 뛰어들기 두렵다면 살금살금 잠시 빠져주는 것도 좋으리라.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58 호 [기사입력] 2013년 08월 14일 15: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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