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 폭동]‘가족’이 없으면 참 좋을텐데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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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에 같이 사는 40대의 남녀와 10대의 청소년 둘. 이들의 조합을 생각해보자. 어떤 단어가 머릿속에 콕 박히진 않는가? 딱 보고 떠올린 사람도 있을 수도 있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 무릎을 탁 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전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집도 저런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이 모여 나름 재미있게 살고 있다.

가족은 아니지만

나는 항상 고민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운 학년이 될 때 마다 쓰는 자기소개서, 가족에 대해 물어보는 친구들, 같이 사는 사람들과 자주 가는 편의점의 점주, 부모님은 뭐하시냐고 물어보는 선생님들. 온갖 가지 가족에 관한 질문들이 날아올 때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난 같이 사는 사람들이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가족일 것 이라고 전제하고 물어보는 질문들이 참 곤란하다. 그래서 그럴 때는 적당히 타협하고 가족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한 다음 대답하거나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사람들일 경우엔 우리가 같이 살게 된 이유와 역사를 설명하는 편이다.

엄마가 이혼하고 지금의 동거남을 만나 같이 살고 있다. 그 동거남도 이혼했고 아들이 하나있다. 그렇게 넷이 산다.

주로 이런 종류의 대답들이다. 사실 이것도 스스로가 썩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다. 엄마 애인과 나의 관계가 ‘아빠-딸’관계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엄마와 나의 관계는 ‘엄마-딸’ 관계라고 수긍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깐.

엄마와 아빠 그리고 딸이 있었을 때

딸이란 포지션으로 내가 가족구성원일 때가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럴 수 없는 것들이 부모님에 의해 결정되었고 그 속에서 참 많이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다. 어딜 따라가든 가족과 함께 있었을 땐 난 ‘박예진 혹은 박씨’가 아닌 ‘아빠의 딸 예진이’, ‘엄마의 딸 예진이’ 로 소개되었다. 그건 굉장히 굴욕적이었다. 최근에 또다시 그런 굴욕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어떤 북콘서트에 행사 스텝으로 일을 하다가 생긴 일이었다. 음료 주문을 받으러 다니는데, 어렸을 때부터 집회현장을 따라다니느라 꾸준히 얼굴을 알고 지내온 한 활동가를 만났다. 그 활동가가 앉아 있던 테이블에는 그 사람 말고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여성분이 앉아 계셨다. 뭘 주문하겠냐고 내가 묻자 그 활동가는 다짜고짜 나를 그 여성분께 소개했다.

‘OOO선생님 딸이에요. 예진이 기억하시죠?’
‘어머, 벌써 이렇게 컸네? 엄마 따라왔니? 기특하네. 아 음료 주문 받고 있다고? 그럼 남은 돈은 가져.’

이렇게 이야기하며 내 손에 잔돈 5천원을 건네주었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얼떨결에 그 돈을 받고 또 바쁘게 주문을 받으러 다녔지만 그 순간 느꼈던 굴욕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활동가가 나를 이름을 가진 존재로 소개하는 대신 OO선생님의 딸로 소개한 순간 내가 이 북 콘서트에 스텝으로 참여했던 취지는 무시되고 그냥 엄마 따라 이런 행사에 올 생각을 한 ‘기특한 딸’ 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우리 집 구성원들은 서로를 억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에는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호칭부터 바꾸고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서로를 별명으로 부름으로써(엄마 애인의 아들 장우는 아직 나와 엄마 애인을 누나와 아빠라고 부르긴 하지만) 독립적인 개체가 될 수 있게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난 참 많은 해방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엄마와의 관계가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면 아직도 그 암묵적인 가족 내 권력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한참 연애했을 때 애인의 집에서 외박을 하고 오겠다는 말도 못 꺼냈을 거고 지금처럼 통금시간이나 학교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을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가족제도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까지 주변에서 본 가족은 너무 폭력적인 공동체인 경우가 많다. 권력관계가 매우 분명하고 대다수의 청소년은 가족안의 권력 속에서 하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외박도 안 되고 연애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통금시간도 정해져있고 항상 부모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 같은 우위에 서있는 권력자에게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
나는 엄마와 엄마의 애인이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고, 또한 우리가 제도적으로 가족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며 몇몇 사람들은 의문을 감추지 못하거나 정상 가족이 아닌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한다. 하지만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억압적인 가족제도와 위계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바꾸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내가 경험했던, 그리고 현재진행 중인 가족의 해체가 나를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박 씨는 청소년인권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362 호 [기사입력] 2013년 09월 11일 16: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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