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거리는 사랑방] 여기, 머무를 권리

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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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20주년을 맞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다시 변혁을 꿈꾸는 인권운동의 질문을 담아 책자를 발간했다. <인권오름>은 그 중 '도란거리다' 장에 실린 글의 일부를 몇 차례에 나누어 싣는다. 일상, 관계, 활동 속에서 어제의 고백이기도 하고 내일의 다짐이기도 한 사랑방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인권오름> 독자들에게도 든든한 기운으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그것도 쫓겨나는 경험이었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살게 된 하숙집. 하루는 집주인에게 몇 달 살면서 불편한 걸 말하게 됐다. 아침에 한 시간밖에 온수를 안 틀어주면 서른 명이 화장실 두 군데에서 어떻게 다 씻나. 게다가 같은 시간에만 아침밥을 먹을 수 있으면 7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에서 어떻게 밥을 다 먹나. 그걸 듣던 집주인은 한 마디로 내 불만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내가 여자는 원래 안 받는데.” 정 불편하면 나가라는 말에, 나는 내 발로 나왔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얼마 안 되는 짐을 바리바리 싸면서, 전봇대에 붙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이사 갈 방을 구하면서, 급하게 구한 리어카로 짐을 옮기면서, 끝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들었지만 잊었던 ‘주거권’

집주인을 잘못 만난 ‘불운’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한참 후에야 들었다. 주거권 활동을 하면서 듣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어떤 집주인을 만났는지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모욕이고, 당연한 걸 요구하는 목소리를 누군가 ‘여성’의 까탈스러움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차별이라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때에도 나는 ‘주거권’이라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 인근의 달동네에 철거민들과 ‘연대투쟁’을 하러 자주 갔기 때문이다. “대책 없는 강제철거 중단하라”, “주거권을 보장하라”라는 구호는 그 한참 전부터 지금까지 철거민운동이 외쳐온 구호였다. 나도 그 구호를 함께 외치며 규찰을 돌고 집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거권’이라는 말은 결국 내 이야기와 만나지 못했던가 보다. 그리고 쫓겨남이나 주거권을 오랫동안 잊었던 것 같다.

몇 달 전, ‘다원그룹’이라는 이름을 신문에서 보게 됐다. 내가 ‘연대’한다고 갔던 달동네에 ‘적준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있었을 자들이다. 용산참사 이후 용역폭력을 고발하면서도,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운동을 하면서도 설마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이름이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무엇이며 여전한 것은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하였다.

강제퇴거의 현장, 달라진 것

강제퇴거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다. 우악스러운 얼굴로 각목을 들고 달려드는 용역의 모습처럼, 사진 한 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폭력들은 점차 사라졌다. 가난한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살던 동네들이 거의 사라지자 개발 사업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 사는 동네를 향하였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힘들고 하루 앞이 불안한 상황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보다는, 제각각 일자리를 찾아 해결한다. 우리 동네가 개발된다고? 얼른 이사 갈 곳을 알아봐서 빨리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공동체가 서로 쌀을 나누고 아이를 돌봐주는 돈독한 집단적 관계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얼마간 낭만이다. 용역들은 한 집 한 집 돌아다니면서 협박을 하거나 달래는 것으로 충분히 사람들을 내보낼 수 있다. 끝까지 반대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한두 명 찍어서 본때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협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소리 없이 떠나갔다.

쫓겨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동안 공간을 개발해 이익을 얻으려는 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개발을 추진하는 자들은 더 비싼 집을 더 좋은 집이라고 불렀고, 가난한 사람이 없는 동네가 더 좋은 동네라고 말하였다. 고층 빌딩을 지어 올려 수익을 높여야 하므로 골목마다 있던 작은 가게와 공장들은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다원그룹도 그 흐름을 탔다. 금융기관과 건설사 등의 기업들과 함께 개발 프로젝트를 구성한다. 주식에 투자하듯 개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금융상품을 통해 돈을 모으고, 다소간 합리화된 개발 절차를 따라 사업을 벌인다. 그래서일 게다. 2013년에 밝혀진 다원의 범죄는 폭행이 아니라 횡령 및 배임 등이었다. 굳이 때리고 짓밟지 않아도 너끈히 이익을 볼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위 사진:매년 10월 첫째 월요일은 UN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이다.

그러나 여전한 강제퇴거

여전한 것은 누군가 장소를 빼앗기고 쫓겨난다는 사실 자체다. 쫓겨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됐던 언젠가부터, 싸우는 사람들은 더욱 힘겨워졌고 진압하려는 자들은 더욱 잔혹해졌다. 일부 세입자대책이 법적으로 보장되고 개발사업의 절차가 조금 더 합리적으로 개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변화들은 강제퇴거가 인권침해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개발 사업을 조금 더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한 변화에 그치고 있다. ‘강제퇴거’는 눈앞에 보이는 폭력의 현상들에 붙들렸던 시선을 그 너머까지 들여다보도록 이끌어주는 말이 되었다. 다원그룹이 기소될 때 충분히 밝혀지지 못한 폭행도, 기업으로서 시장 질서를 해친 범죄도, 강제퇴거를 설명하는 전부가 못 된다.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내보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강제퇴거라는 폭력이다. 2009년 용산에서 힘겹게 번져 나온 “여기, 사람이 있다.”는 외침은, 그래서 이 시대의 폭력을 증언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 우리를 내쫓으려는 저 힘들에 함께 맞서자고.

오래전 달동네에서 듣고도 놓쳤던 것을 계속 붙들려고 한다. 그게 꼭 ‘주거권’이라는 말은 아니어도 될 듯하다. 내가 그 동네를 오가게 된 것도 ‘주거권’ 때문이 아니라, 집과 동네와 장소들을 지키려던 그/녀들의 절박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쫓겨날 수 없다고 모여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한,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싸움과 움직임들을 북돋고 연결하고 샘솟게 하는 데에 ‘인권’의 역할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내가 만났던 그/녀들도 모여서 함께 싸울 때 ‘인권’을 외쳤으니까.

인권의 목소리, “여기, 사람이 있다”

‘인권’이 세상의 부정의를 근본까지 들여다보도록 채근하는 말이면 좋겠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공용어가 되어 “여기, 사람이 있다”는 목소리가 더욱 큰 외침으로 세상을 울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숙집을 나오며 눈물을 쏟아야 했던 내가 다시 기억을 건져 올리는 데 걸렸던 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짧아질 수 있기를. 그래서 서럽고 억울한 일들이 외로운 눈물들과 함께 말라버리지 않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뜨거운 눈물들로 만날 수 있기를. 누구에게나 머무를 곳이 필요하니까.
덧붙이는 글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64 호 [기사입력] 2013년 09월 30일 21: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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