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어디에나 ‘인권’이 필요하다

엄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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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노동조합의 투쟁 유도 → 용역 투입을 통한 선제적ㆍ공격적 직장폐쇄 → 복수노조 설립 → 강력한 현장 통제」로 이어지는 자본의 노조 파괴 전략이 등장한지 약 4년의 시간이 지났다. 2010년 발레오만도로부터 시작된 자본의 용역을 동원한 폭력적 노조파괴는 인근 사업장과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배경에는 창조컨설팅이라는 노조파괴 전문 업체가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창조컨설팅의 인가가 취소되고 해당 노무사들의 자격도 박탈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다.

그 무엇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노동조합 파괴를 버젓이 내세우며 노조대응 전문가임을 내세우는 자들이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그것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족, 권리를 주장하는 자들을 고작 ‘떼쓰는 자들’로 몰아세우던 우리 사회가 권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모두가 알지만 정작 문제에 대한 대응은 사회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법의 판단을 구하지만 법은 멀고, 노동 현장의 힘은 약화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어지지만 자꾸만 고립되어 간다.

자본에게 장악된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은 각자 ‘홀로’ 남겨졌다. 어린 꼬마시절부터 더불어 살아온 친구들이, 20년 지기 동료가 남이 되어 등을 돌렸다. 한 때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같은 꿈을 꾸었던 이들은 각자 살기 위해 삭막한 작업장 안에서 서로의 고통에 눈감고 있다. ‘홀로’ 남겨진 노동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서로를 감시하는 것,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 혹은 이를 악물고 눈 꼭 감고 자본의 편에 서서 현장에서 몰려난 해고자들의 투쟁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를 대면하는 서로의 마음들에 차가움만 가득하다. 그렇게 노동자들의 마음에 수많은 상처가 새겨지고 있다.

폭력과 순화

노동조합이 밀려난 작업장 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실로 다양하다. 노동조합 간부들을 해고하고, 노조 사무실을 노동자들로부터 격리시키며, 어용노조와 민주노조를 차별한다. 수도 없이 진행되는 ‘면담’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그래도 민주노조 조합원으로 남아있는 이들에게서는 원래 업무를 빼앗으며 작업장이 아닌 주변 업무로 몰아낸다. 그 속에서 현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포기하거나 민주노조를 탈퇴할 것을 강요당한다.

현장은 끊임없는 감시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수십 대의 CCTV로 둘러싸여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민주노조 간부나 조합원과의 접촉이 차단된다. 자본은 민주노조 간부나 조합원을 감시하기 위해 사람을 붙인다. 그들은 때로는 관리자이거나, 때로는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시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에서의 시간을 긴장의 연속으로 보낸다.

그렇게 노동조합을 잃은 노동자들은 자본의 통제 속에 그대로 노출되어 서로를 감시하고 스스로를 감시한다. 자본은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과 차별을 통해 자본의 감시와 통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억압하고, 자본에 대한 불만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대체되었다. 공포심으로 노동자들을 다스리기 위한 최초의 폭력이었던 용역폭력은 여전히 현장에 남아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그보다 더한 폭력이 현장을 물들이고 있다. 바로 노동자들의 저항력을 파괴하고 정신력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교육, 봉사활동과 같은 아름다운 이름으로 버젓이 이루어진다. 화랑대 교육, 한마음 교육, 힐링캠프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교육 프로그램들은 그 속에서 노동조합을 비난하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반성하게 한다. 노동자들을 길들이기 위해 때로는 얼차려를 시키기도 한다. 더 열심히 일해서 미래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지금처럼 노동조합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며,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노동자들의 정신을 채운다. 봉사활동을 통해서는 돕고 사는 정신을 가르치며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행위를 이기적인 나쁜 짓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또 있다. 자본은 지역사회와 노동자의 가족들에게 해당 기업이 참 좋은 회사인 것처럼 행세한다. 경영설명회를 통해 노동조합이 약화된 후 회사가 잘 나가고 있음을 설명하고, 각종 문화 행사를 열어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임을 선전한다. 지역 행사에 후원도 많이 하고, 노동자들이 지역의 일손을 손수 돕기도 한다. 회사의 선전에 동원되고, 행사에 강제 동원되는 노동자들은 참으로 항변하기가 어렵다. 봉사활동도, 지역 문화행사도 선행이라는 이미지에 노동자의 권리는 묻히고 있다.

시간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면서 똑같이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장이 민주노조에 의해 장악되고 현장의 질서가 새롭게 민주적으로 재편되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 민주노조를 세워내며 자본가들이 빼앗아 간 권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 가장 핵심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작업장 내에서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순이, 공돌이가 ‘노동자’라는 이름을 쟁취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빼앗긴 현장권력을 탈환하고자 했던 자본은 관리감독자를 열심히 교육시켜 현장 통제력을 강화하고 ‘노동조합 중심’의 현장을 ‘자본 중심’으로 다시 끌어오려 했다. 또한 작업조직을 재편해서 작업자의 노동에 대한 통제력을 박탈했다. 노조를 비방하고 회사로 노동자들을 몰입시키기 위한 다양한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 지역 봉사활동 등을 동원해서 정신교육도 했다. 이러한 총체적 노동관계 대응 전략이 바로 ‘신경영전략’ 이라고 일컫는 90년대 자본의 노동자 통제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그대로 다시 살아서 지금, 2013년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본의 전략에 대응하지 못한 채 협조적 관계로 전락해, 결국 민주노조가 사라져 버린 현대중공업 사례처럼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전략은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적 단결력 자체를 근본적으로 와해시키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더 큰 우려는 이러한 전략이 현장에 적용되고 통용되는 방식이 상당히 폭력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일시에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하여 노동조합을 몰아낸 후 현장을 지배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은 오히려 87년 이전의 병영적 통제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 폭력이 공포와 두려움을 낳고 노동자들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자본의 전략은 시대에 따라 여러 모습을 한다. 때로는 90년대처럼 유화적인 모습을 하고, 지독한 노동 강도와 통제로 노동자들을 몰아넣거나, 지금과 같이 폭력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본질은 같다. 어느 시간에서든 자본을 중심으로 흐르는 시간은 억압적 본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때로는 은폐하면서 똑딱 똑딱 잘도 간다. 그 속에서 노동자의 시간은 끊임없이 회귀한다. 사회의 발전이나,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없이 권리는 조금 진전되었다 싶으면 다시 잃게 되고, 얻은 듯 했던 것은 지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없으면 곧 다시 사라져 버린다.

공간

우리는 왜 이 작업장의 문제들에 대해 정면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일까. 기업은 계속 지역과 시민사회에 해당 기업들의 우수함을 자랑하며 많은 것을 내보이고 있는데, 정작 그 안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우리가 접근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고용’을 통해 자본에게 자신의 노동력의 처분을 맡기는 순간, 세상은 그 관계에서 파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오로지 ‘계약’만을 보려 하고, ‘계약상의 권리 의무’만을 보려 한다. 하지만 그 계약으로 팔아넘긴 것이 ‘인간’ 그 자체가 아니기에, 우리는 계속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기울일 권리가 있다.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이기에 우리 사회가 작업장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간섭하고 개입할 권한이 당연히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노동현장의 주체인 노동자들조차 자신의 노동과 관련된 문제에 완전히 개입하지 못한다. 오로지 임금이나 직접적인 노동조건과 관련된 몇 가지에 대해서만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서 한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법은 그 허용의 영역을 점점 더 좁혀오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는 어느새 법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 되어 버렸고, 작업장 안의 주체로서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잊혀졌다.

노동조합을 빼앗기고 나면 이러한 현실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의 시간과 나의 노동이 사용되는 그 모든 시공간에서 노동자는 권리를 가진 주체가 아니라 죽은 부품이 되어 그저 자본의 뜻대로 사용되어 질뿐이다. 그 공간은 사회의 시선도 개입되지 못하고, 법의 제한적 손길조차 정치적 논리에 휘말려 버리는 세상으로부터 닫힌 공간이다. 자본은 세상 어디에서도 자유롭게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가져다 사용하지만, 작업장이 터한 사회는 기업의 문을 열지 못한다. 노동자가 작업장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본가의 소유권, 경영권을 무소불위의 권한인 듯 인정해 버린 까닭이다.

닫힌 공간, 그 문을 어떻게 열 것인가에 참담한 노동인권을 개선할 열쇠가 있을지도 모른다.

열쇠

닫힌 공간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오자.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사회로 꺼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권리 인식의 부족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고임금인지 비정규직인지를 먼저 따지고 보는 습성, 자본의 폭력에 대해 점점 무뎌져 웬만한 일상적 폭력에 대해서는 일자리 유지를 위한 대가라고 인정해 버리는 관성, 시민의 권리는 보장하지만 노동자의 권리는 화석화된 법 속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 그 속에서 노동자들에 대해 ‘노조 아님’을 아무렇지 않게 선포해 버리는 그런 사회가 아닌가.

정리해고, 비정규직에 대한 사안이 아니면 웬만한 노동조합의 투쟁은 귀족 노동자들의 욕심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 속에서 사회는 모든 이들에게 점점 더 가난해 질 것을, 점점 더 많은 것을 내놓을 것을, 점점 더 열악한 삶을 참아낼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에 박한 사회는 모든 이들의 권리에 대한 소홀함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권리를 드러내고, 노동현장의 이야기를 작업장 내에서만 맴돌게 하지 말고, 법조문 속에서만 다투지 말고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작은 아픔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현재 사회에 울리는 큰 목소리들이 힘있는 자, 가진자들의 목소리뿐임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사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작업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열자. 작업장은 ‘고용관계’에 의해서만 규율되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인 인권 기준을 함께 적용받는 곳이다. 계약서를 썼다고 작업장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공장 문 앞에 인권을 내려놓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작업장이 노동자들이 노동하며 살만한 곳인지, 노동자의 시간이 그 속에서도 째깍째깍 잘 흐르고 있는지, 오로지 자본의 착취의 시간만으로 점철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사회에 있다.



닫힌 공간을 열기 위한 길을 트기 위해 ‘노동현장 내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안하였다. 더 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삶에 더해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그 몫은 함께 공감하며 더 힘차게 움직여갈 이들과의 다음 활동을 기약하며 잠시 미뤄둔다. 다만 현재 자본의 통제전략이 통용되고 있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위 사진:'자본의 노동자 통제전략에 맞선 우리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노동인권교육, 차별과 노동자 감시 금지 및 사생활 보호, 반인권적인 근무형태에 대한 금지, 민주적 현장 운영을 위한 단결권 보장 및 정치사상의 자유 보장,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조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것이 사회의 기준이 되고, 노동현장의 인권 기준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삶과 노동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사회적 말하기가 필요하다. 또 무엇보다 자본의 일방적 권력이 통용되는 것이 아닌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회의 의지가 필요하다.

노동자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고, 자본에 의해서도, 그 누구에 의해서도 삶과 노동, 정신을 통제당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앞으로 함께 현실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가이드라인 전문으로 긴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가이드라인 전문

노동현장은 자본의 전유물이 아니다. 노동현장은 노동자의 삶과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우리 사회의 일부이다. 고용관계를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사회의 인권적 기준에 부합하여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전인적 구속과 지배의 탐욕은 노동 인권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바, ‘노동현장 내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 이는 기업운영에 있어서 반영해야 할 기본적 인권 가이드라인이자, 기업 내에서 노동자 권리 상태를 점검하는 기준인 한편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사회적 개입과 통제의 근거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엄진령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369 호 [기사입력] 2013년 11월 13일 19: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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