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 ‘사회적 낙인’이라는 벽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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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룸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 사업을 하면서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케이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인터뷰 참여자 케이는 일을 그만둔 이후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책감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힘들어했다. 케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유흥업소에서 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케이를 힘들게 하는 사회적 낙인이 벽처럼 느껴진다.

케이는 업소에서 일했던 때를 돌아보면서 내가 왜 그때 그 일을 해서 이렇게 되었나 하는 후회를 했다. 손님한테 무시당했던 경험 때문에 괴로운 것도 지금 외롭게 지내는 것도 내가 그 일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케이의 심정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케이가 자신의 책임으로만 생각하는 것에 억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유흥업소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사회의 책임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업소를 운영했던 사장이나 케이를 함부로 대했던 손님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선택에 어떤 자책감도 들지 않을 텐데, 케이만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는 업소에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고, 혹시라도 누군가 알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업소에서 손님으로 만났던 사람을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되거나, 그 사람을 통해 “저 사람 업소에서 일했대~”라는 소문이 돌게 되는 경우들 말이다. 케이는 자신이 업소에서 일했던 것을 누구라도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아무도 ‘그런 경험’이 있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케이는 사교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
위 사진:[사진 설명] 이주 성매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로사'의 한 장면

나는 케이가 움츠러드는 것이 안타까워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케이가 두려워하는 타인의 부정적인 시선이 어떤 것일지 예상되고,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부정적인 시선은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또는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다. 나 또한 그것을 느낀다. 타인의 배타적인 시선, 편견의 벽이 굳건할수록 케이의 두려움은 덜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낙인이 공고한 사회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은 자신에게 향하는 배타적인 시선을 감당할 용기와 배짱일지도 모른다. 과연 나라면 그런 용기와 배짱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 앞에 서면 사회적 낙인이라는 벽은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높아 보인다.
덧붙이는 글
뿌리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03 호 [기사입력] 2014년 08월 14일 14: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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