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의 인권이야기] 당신은 인권교육을 아는가

육해공 전 장병 ‘온종일 특별 인권교육’은 '까라면 까라'식 군대문화의 전형이다.

한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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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7일, ‘들’ 사무실로 낯선 전화 여러 통이 걸려왔다. 내일 당장 장병들 인권교육을 해줄 수 있겠냐며 몇몇 군부대에서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전화선 너머에 있는 부대 담당자의 하루가 빤히 그려진다. 8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28사단 병사 폭행 사망 사건으로 폭로된 군대 가혹행위와 인권유린을 해결하는 근본 방안으로 인문(인권)교육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말씀은 긴급히 국방부 공문으로 작성돼 전 부대로 뿌려졌을 것이다. 공문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 결국 교육을 담당하는 말단 장교들의 손에 닿았을 것이고, 이 ‘비상시국’에 발맞춰 그들은 열심히 인터넷에 인권교육이란 네 글자를 두드렸으리라. 인권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는 몇 안 되는 단체들에 낑낑대며 전화를 걸었겠지. 운이 좋으면 섭외 성공, 아니면 실패. 대통령의 언급 이후 딱 이틀 만인 8월 8일, 육해공 전 장병 ‘온종일 특별 인권교육’은 그렇게 시행됐다. 이거야말로 그토록 비판하는 ‘까라면 까라’식 군대문화의 전형이다.
위 사진:[사진 출처] 국방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수백 명의 장병들이 기지 내 강당에 끝도 없이 줄지어 앉아 법무참모의 강연을 듣고 있는 교육 당일 현장 사진을 보며 나는 모욕감마저 느꼈다. 교육의 탈을 쓴 각종 폭력과 선을 긋고 인권교육이란 언어를 벼려왔건만, 한순간에 시궁창에 내던져진 느낌이다. 졸속으로 이루어진 교육의 위선과 기만을 지적하며 교육 참여를 거부하는 장병이 한 명이라도 등장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인권적 장면이 아닐까. 교육 내용 역시 인권과 한없이 미끄러진다. ‘구타는 정당화될 수 없다.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징계해야 한다’는 언설은 구타로 드러난 개인 간 폭력이 상명하복의 군법 질서를 숙주 삼아 발생한다는 점을 은폐한다. ‘지휘보고 체계를 이용하고 안 되면 부모님한테 이야기해라’식의 해법은 ‘나약하게 침묵하지 말고, 알아서 고군분투하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장난삼아 한 언행이 심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각심을 갖게 됐다’는 교육 소감은 이 교육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강한 군대는 잘못한 것이 없고, 연약하거나 사악한 장병들이 문제라는 꼬리 자르기. 이들이 온종일 행한 건 인권교육이 아니라 겁주기 식 정신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리 새롭지 않은 행보다. 학교 폭력(학생 간 폭력)을 대하는 정권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관료들은 ‘요즘 애들’의 타락한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채찍으로써 엄벌백계를, 당근으로써 인성교육을 강조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갖춘 창의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목소리를 줄곧 높인다. 지금의 정권이 배려를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배려라는 가치를 강조하며 이들이 선점하는 프레임이 무엇인지 주목하고 싶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약자들은 배려의 다른 말이 ‘우아하고 세련된 지배’임을 지적해왔다. 힘을 확보한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행하는 도덕적인 선처가 얼마나 쉽게 유보되거나 철회될 수 있는지 삶 속에서 처절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려의 프레임은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이는 권력의 작동을 사유하는 과정이고, 폭력이 잉태되는 밑바닥을 살피는 일이자 학교와 군대 등 사회 곳곳의 썩어가는 뿌리를 눈앞에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권교육은 가치 투쟁의 장(場)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품성으로서의 ‘착함’이 아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과 그 안에서 싹틔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논해왔다. 도덕적 실천으로서의 ‘배려’보다 집단적이며 정치적인 실천으로서 ‘연대’를 고민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처한 상황과 위치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잠재적인 평등성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상상하고, 저항을 연습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인권교육의 역할임을 운동으로 실천해왔다. 그러니 제대로 된 권고조차 회피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교육지원법 제정을 적극 추진하는 것 역시 그리 달갑지 않다. 두루뭉술한 역지사지쯤의 교훈을 사람들에게 남기는 걸 인권교육이라 설파할 것 같은 우려마저 든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라는 책 제목을 나는 참 좋아한다. 장애를 모르는 사람,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 도발적인 책의 저자 김도현은 장애가 무엇인지 진정 알고 있느냐고 다시 한 번 질문한다. 그동안 이 사회가 장애를 정의해온 방식 자체가 차별과 폭력의 역사였음을 낱낱이 밝혀낸다. 나 또한 묻고 싶다. 당신은 인권교육을 아는가. 인권교육을 만병통치약처럼 외치며, 인권교육 한방이면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는 듯이 교묘한 ‘문제 바꿔치기’와 ‘책임 회피’ 카드로 활용하는 당신들. 당신들이 상상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인권을 교육할 수 없음을, 인권을 알고 행한다는 것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근간을 위협할 것임을 진정 알아야 한다. 인권교육가들이 인권교육을 보이콧하는 진풍경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한낱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03 호 [기사입력] 2014년 08월 14일 15: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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