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공룡트림] 누구나 ‘가시’는 있어!

관계로 읽어보는 세 개의 그림책

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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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아직 손편지를 쓰던 시절 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늘 이렇게 끝맺음을 했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친구의 답장도 이렇게 끝났다. 지금은 살짝 오글거리지만 이 한 문장은 내게 큰 즐거움이었고 안도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건 그 때의 우리가 서로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호의이자 그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아,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구나, 이 사람도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구나! 작은 확신과 기쁨이 연결고리가 되어 친구라는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이 늘 순탄치는 않다. 사실은 ‘친하게 지내자’, ‘나랑 놀아줘’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툰 우리는(감정 표현이 서툰 것이 어린아이만은 아니지 않은가) 내 마음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가시소년(권자경 글, 송하완 그림 / 리틀씨앤톡)처럼.

가시소년

‘나는 가시투성이야’ 온 몸에 가시가 뾰족뾰족 돋아난 가시소년이 화자가 되어 자기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친구들이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 내 입에서는 가시가 튀어나간다. ‘시끄러워 이 바보들아.’ 가시소년은 가장 크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려고 한다. 그래야 ‘모두 나를 무서워하게 될’테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사실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 속상하고, 혼자 소외되는 것 같은 불안감이 오히려 다른 사람과 담을 쌓거나 공격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가시소년에게서 더욱 멀어지고 내가 먼저 다가갈 수도 없어서 더 소외된다.

그런 가시는 날마다 자란다. 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꾸중하실 때, 공개적으로 벌을 서게 돼서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을 때처럼 창피함과 모욕감을 견뎌야하는 순간에, 부모님이 크게 다투는 모습을 보는 불안 속에서 가시는 더욱 커지고 날카로워진다. 이렇게 보면 소년에게 돋아난 ‘가시’는 단지 다른 사람을 겁주고 상처 내는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관계의 서툼이기도 하고, 환경이 만들고 키우는 내 안의 불안이기도 하면서 내가 세상을 향해 치는 방어막이 아닐까. 그리고 사람의 다양한 특성이 불러오는 갈등이기도 하리라. 그런 면에서 사람은 누구나 ‘가시’를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가시소년이 겪는 것과 같은 시행착오를 거쳐 ‘가시’라는 개성을, 감정을 잘 표현하고 다루는 법을 익혀 간다. 가시소년에게도 그런 성장의 순간이 찾아올까? ‘가시가 없다면 나도 웃을 수 있을까?’ 조금 아쉽게도 가시소년은 스스로 가시를 잘라내고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가시를 뽑아버린다. 여전히 모나지 않은 ‘착한’아이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 자꾸 짜증내고 못되게 굴면 아무도 안 놀아준다.’라고 협박(?)하면서. 다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시’가 무엇일까 질문하게 된다. 뽑아버리거나 없애버리는 것이 능사일까. 아니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얘가 먼저 그랬어요!

누구에게나 가시가 있다. 어젯밤 잠을 푹 자지 못한 타틴에게도 울퉁불퉁 가시가 돋았다. ‘걸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나름 가시를 잠재우고자 산책을 나서지만... “타틴 손을 주머니에 넣는게 좋을 거야. 여기엔 모기가 많거든” 토끼 친구의 말에 기분이 나빴던 타틴은 “난 주머니가 없어. 안 보여?” 심술궂게 응대하며 친구를 힘껏 밀친다. 화가 난 친구도 타틴을 밀치며 싸운다. 이 때 토끼 아빠가 다가와 “너희들 무슨 일이니?” 묻자 타틴은 “얘가 먼저 그랬어요!”라고 먼저 소리치듯 대답한다. 오리 친구를 만나고, 두더지 친구를 만나서도 화를 내고 다투다가 타틴은 말한다. “얘가 먼저 그랬어요!”

상대방의 호의나 부탁에도 화가 나는 타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양이 친구를 만났다. “타틴, 초콜렛 먹을래?” “뭐야, 너도 날 귀찮게 하려는 거야?”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사실 타틴은 친구들과 싸운 게 슬퍼지기 시작했고, 왜 싸웠는지도 모르겠다는 후회를 하고 있었다. 타틴은 친구가 내민 초콜렛을 집어먹고 기분이 좋아져 서로 껴안고 뒹군다. 싸우는 줄 알았는지 고양이 엄마가 걱정스레 묻는다. “너희들 무슨 일이니?” 타틴과 친구는 웃으며 대답한다. 『얘가 먼저 그랬어요』(가브리엘라 커셀만 글, 펩 몬세르랏 그림. 유 아가다 역 / 고래이야기)라고.

초반 남을 탓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얘가 먼저 그랬어요.”는 이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말이 되었다. 날선 감정의 가시들이 누그러들기까지 타틴에게는 그저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저조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회복될만한 시간이. 그리고 터덜터덜 걷고 있는 타틴을 보고 그 마음을 알아챘을 친구가. 그래서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싸움을 중지시킬 뿐 섣불리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성장은 우리가 감당하는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나기도 하니까.

숨지마! 텀포드

‘가시’를 잘 다루는 방법 중의 하나는 어떤 일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사과하는 일이다. 그런데 안에서나 밖에서나 매일 말썽을 일으키는 고양이, 텀포드 스타우트는 사과하는 것이 싫다. 『숨지마! 텀포드-우린 널 사랑해』(낸시 틸먼 글, 그림. 신현림 옮김 / 내 인생의 책)는 사고를 쳐도 절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 고양이 텀포드 이야기이다. 텀포드는 말썽을 부리고 나면 사과를 하신 대신 종이가방이나 꽃밭 혹은 인형들 사이로 숨어버린다. 왜냐하면 텀포드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말은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와 ‘달콤한 푸른 사과 마을’ 축제에 가서도 텀포드는 사고를 친다. 축제 여왕에게 선물하기로 한 청어를 엎어버린 것이다. 역시나 텀포드 사과를 하게 되면 그 말이 목에 걸려 숨이 막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빠르게 숨어버린다.

텀포드는 용서를 구하는 ‘말이 목에 걸려 숨이 막힐’만큼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혹은 잘못을 인정하고 난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 사과를 하느냐 마느냐 에 앞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한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무엇이 잘못인지,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알게 되면서 내가 누구에게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도 보인다. 그 때 비로소 사과할 수 있는 용기도 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서두른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무조건 사과부터 채근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봐야 영혼 없는 사과일 뿐이다.

책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텀포드는 숨어 있으면서 아마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 듯하다. 불쑥(!) 사과할 마음을 먹는다.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면, 나도 기분이 좋을 거야. 엄마, 아빠가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할 거야. 그러니까 그 말을 해야 돼.’,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텀포드의 걱정과는 달리 사람들은 그런 텀포드를 칭찬하고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함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여기서는 텀포드에게 사과를 가르치면서 ‘니가 잘못했다고 시인하면 〇〇해 줄게’하는 유혹이나 ‘잘못 했어? 안했어?’, ‘사과 안하면 안 데려간다’는 식의 협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앞으로 텀포드는 정말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과의 이유와 의미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데 무조건 사과를 강요한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거짓말쟁이 고양이보다 더 나쁜 건 없잖아!’
덧붙이는 글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06 호 [기사입력] 2014년 09월 04일 15: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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