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의 인권이야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홈리스

박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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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병원에 가보셨나요?

홈리스인권지킴이 활동 중에 만난 키가 작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오십대 아저씨. 까까머리를 한 그는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착하시다. 처음 만났을 땐 오른팔을 다른 팔로 받쳐 들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신 한숨을 쉬다가 다가간 나에게 팔이 아프다고 했다. 팔뚝부분에 손바닥 넓이만큼이 빨갛고 잔뜩 부어있었다. 병원에 가봤냐고 물었더니 노숙인 무료진료소에 갔는데 주민번호를 모른다고 하니 그냥 돌려보냈다고 한다.
기억나지 않는 주민번호를 알아보기 위해 근처 파출소에 갔다. 그곳에선 예전에도 다른 일로 조회해봤다며 아저씨가 무호적(가족관계등록부 부존재)이랬다. 주민번호를 계속 잊어버렸다, 모르겠다 말씀하시던 아저씨는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같이 진료소에 들려, 상황을 얘기하고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병원에 갔다. 간단한 깁스와 약 처방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아저씨는 연신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었다. 아프거나 다칠 때가 많았지만 그때마다 꾹 참았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꼬박꼬박 약도 챙겨 드시고, 그걸 매번 귀찮을 정도로 이야기를 해주시는 모습이 병원에서 치료받았다는 것을 신나게 여기시는 듯했다.

위 사진:홈리스 당사자들이 참여한 '서울역, 길의 끝에서 길을 묻다' 사진전 중에서

잊어버리고픈 노숙생활이겠지요

이후 아저씨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저씨가 혀 짧은 소리라 알아듣기도 어려운데다 말도 빠르고, 짧은 문장과 같은 말을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이름이나 지명, 사건에 따른 시간 순서를 헷갈려하거나 전혀 기억하지 못해서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다시 되묻고, 재차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그가 살아온 날들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부정확한 발음과 작은 체구에 한글도 모르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놀림감과 폭력의 대상이 되어왔던 일상, 노숙하다 끌려간 섬이나 다른 일터에서 소처럼 일해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기가 다반사. 심지어 무호적으로 은행거래가 안 되니 지인의 통장으로 돈을 모았는데 그걸 통 채로 못 받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아저씨는 교통사고와 큰 수술로 인한 후유증(언어, 기억문제)에 병원비, 생활비 지출로 가진 돈을 모두 쓰게 되면서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다. 흔적처럼 남아있는 기억을 더듬어 어릴 때 모친과 함께 살았던 동네를 배회하거나, 서울역 인근을 돌아다니며 15년이 넘는 시간을 투명인간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그에게 남아있던 것은 깊게 패인 주름과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그래도 해맑게 웃는 얼굴은 선물인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만큼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오셨나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기대처럼 되기를 바래요

아저씨는 주거지원으로 고시원에 들어가셨다. 이후 하루에 두 번씩 샤워를 하시고, 식사 후엔 양치질도 빼먹지 않았다. 세탁기 사용법을 몰라 손세탁이지만 거의 매일같이 깨끗한 옷을 입으시려고 노력하셨다. 그리고 돈을 벌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씀하셨다. 허리가 좋아지면 노가다(건설일용직 노동)를 가고 싶다고 하시며, 다른 사람들처럼 주민등록증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십지문 조회도 하고 가족관계등록부 부존재도 확인했다. 이제 약 3개월가량 지나면 호적을 만들어도 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올 것이다.
아저씨는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운지 매일 같이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장에 나가시고 있다. 하루 종일 박스를 접어도 받는 돈은 5천원을 넘기지 못하지만, 그것도 성실하게 참여하고 계셨다. 매일 저녁이면 나를 보자마자 밝게 웃으며 그날 받은 돈을 저금해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주민번호가 생기면 일해서 번 돈은 본인 통장으로 모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있으셨다. 홈리스 야학에서는 한글을 배우고 계신다. 지금은 딱 이름만 쓸 줄 아는 아저씨도 조만간 집 주소도 쓸 수 있게 되고, 언젠간 이 글도 보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평범한 권리, 평범한 삶

거리에서 내가 만난 이 아저씨의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무렇지 않게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미안하지만, 이게 늘 만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한 권리를 누리지 못해 거리 노숙을 하는 이들이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존재로 인식되거나, 예산을 좀먹는 사람들이라 편견을 갖고 보는 눈들이 많고, 실제 의료, 주거, 일자리 등 복지지원도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무관심이 이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절에 상관없이 거리에는 언제나 무방비 상태에 놓인 홈리스를 노리는 빈껍데기 복지나 범죄, 그리고 이들의 권리를 침탈하고, 이것에 침묵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더 안타깝다. 완전하게는 안 되더라도 하루빨리 불안정한 노숙상태에서 벗어나는 홈리스가 많아지도록 우리의 인식이 바뀌고, 지원제도가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아저씨의 바람이 더 빨리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박사라 님은 홈리스행동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10 호 [기사입력] 2014년 10월 09일 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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