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반복되는 참사, 무너지는 인권

‘제2의 세월호’ 오룡호 침몰사고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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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는 우리의 삶에서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참사에 직면하자고 제안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할 때 사회를 바꿀 힘이 된다. 매주 <인권오름>에 실릴 글이 질문을 함께 품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2014년 12월 1일 또다시 배가 침몰했다.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을 수습하기도 전에, 참사는 반복되었다. 제2의 세월호는 없을 거라던 정부는 이제, 제2의 오룡호는 없을 거라며 실종자들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핵심 없는 대책만 읊어대고 있다. 대형사고는 반복되고 있지만 안전할 권리, 재난이나 사고 시 구조 받을 권리, 피해를 입게 된 사람들이 진실을 요구할 권리 등은 제자리걸음이다.

제2의 세월호 참사, 대형사고는 반복되었다

사조산업의 명태잡이 트롤선 501오룡호는 명태를 잡기 위해 지난 2014년 7월 부산 감천항을 떠났지만, 러시아 베링 해에서 침몰하여 돌아오지 못했다. 침몰 당시 오룡호에는 한국인 11명, 인도네시아인 35명, 필리핀인 13명, 러시아인 감독관 1명, 총 60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중 인도네시아인 3명, 필리핀인 3명, 러시아인 감독관 1명 등 7명만 구조됐다. 27명이 사망(한국인 6명)하고, 26명이 실종(한국인 5명)된 상황이다. 12월 말 ‘러시아의 수색 연장 불허’를 이유로 실종자 수색조차 중단된 상태이다. 오룡호 침몰사고는 역대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낸 원양어선 침몰 사고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선사인 사조산업은 선박의 침몰 원인을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에 돌렸다. 그러나 사고 인근 해역에는 전날부터 악천후가 예보되어 있었고, 주변의 다른 어선들은 이미 피항한 상태였다. 또 선장은 선박이 기운 후 완전히 침몰하기 전까지 4시간 동안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다른 어선들은 기상악화로 이미 피항한 상황에서, 왜 오룡호만 계속 조업을 했을까? 러시아 감독관이 침몰 1시간여 전에 선장에게 퇴선을 권고했지만, 선장의 퇴선 지시는 없었다고 한다. 침몰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도 선장은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끝까지 배를 지키려했다. 무엇이 퇴선 명령을 가로막았나? 선장은 왜 배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60여명의 선원들은 물론 본인의 목숨까지 버리게 되었을까?

선령 제한이 없는 원양어선

501오룡호는 노후 선박이다. 1978년 11월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선박으로, 건조된 지 36년이나 됐다. 이 배는 사조산업이 다른 노후선박을 대체하려고 2010년에 인수한 것이다. 선령이 30년이 넘은 배를 노후선박 대체용으로 인수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지만, 사조 측이 보유한 트롤선박 9척 모두가 선령 30년을 넘긴 상태였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원양어선 342척 중 91%가 선령 21년 이상이고, 30년 넘은 배도 38%에 달한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는 그전 5년간의 원양어선 사고 13건 가운데 10건이 선령 30년 이상 된 어선, 3건이 선령 20~30년인 어선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 선령 노후화가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이처럼 노후 선박이 운항할 수 있는 데는 현행법상 원양어선에는 선령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령 제한이 있는 여객선과 달리 원양여선의 경우 최소한의 제한조차 없다. 2009년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절감될 거라며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였고, 선령 제한이 25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여객선의 선령 제한 완화가 지목되면서, 여객선 선령을 최대 25년으로 다시 줄이는 해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의결된 바 있다. 하지만 원양어선의 경우는 최소한의 제한조차 없다. 선령을 제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해수부는 국제적으로도 어선의 등록 및 검사 등에 관해 규정하고 있으나 선령제한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원양어선에 선령제한을 둘 경우 업계의 대외 경쟁력 약화로 영세선사의 도산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조차도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뒷전이라는 저열한 인식 수준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세운 안전은 ‘재산’과 ‘영토’의 안전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안전은 결코 ‘비용’과 ‘효율’로 계산되어서는 안 된다.

부실한 안전관리

정부 논리대로 선령 제한 기준을 두지 않으려면, 어선에 대한 철저한 검사와 관리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원양어선의 경우는 제2종 중간검사(매년 시행), 제1종 중간검사(2~3년마다), 정기검사(5년마다) 등 의무적인 안전검사를 받도록 돼있다. 선박안전법에는 선박 검사 업무 대행기관을 선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한국선급과 선박안전기술공단이 선박 검사 업무를 대행하고 있고, 선박의 99%가 안전검사를 통과한다.

오룡호도 지난 2월 국적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바뀌면서 한국선급에 제2종 중간검사를 받아 합격판정을 받았다. 한국선급은 세월호 부실검사로 도마에 올랐던 기관이다. 하지만 부산해양경비안전서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2013년 9월에 파손된 오물배출구를 2014년 7월 출항 전까지 수리하지 않았다. 파손된 부분이 있음에도 한국선급의 중간검사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유족들에 의하면 2014년 2월 출항 후 조업 당시 고장이 잦아 조업실적이 나빴고, 7월에 귀국하자마자 8일간의 자체 수리 후 사조산업의 강요로 베링 해로 떠났다고 한다.

선령이 무제한인 원양어선은 철저한 안전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외주화된 안전검사에서 합격을 받은 원양어선들의 사고는 최근 5년간 끊이질 않았다. 해수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8~2013년 원양 해역에서 기록된 한국 어선 해양 사고는 85건이다. 안전검사가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런데도 안전검사만 통과하면 원양어선은 별도의 기준 없이도 자유롭게 국내 입출항이 가능하다. 오룡호도 분명 안전검사에 합격했지만, 안전하지 않은 상태였고, 무리한 조업을 했으며, 결국 침몰했다.
위 사진:[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왜 무리한 조업을 했나

오룡호는 러시아 해역에서 무리하게 조업 중이었다. 외국 해역에서 조업을 하면 인접국이나 어업기구로부터 1년에 이만큼 잡아도 된다는 어획쿼터를 매년 할당받게 된다. 우리나라는 2014년 러시아로부터 총 4만 톤의 쿼터를 받았다. 4월에 3만 톤을 먼저 받고 10월에 1만 톤을 추가로 받았다. 배정받은 베링 해에 대한 쿼터는 한국원양산업협회 산하 5개 선사의 선박 규모, 실적 등에 따라 배분하고 해수부가 이를 인증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번에 침몰한 오룡호는 이를 고려하면 전체 쿼터의 11%를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사조산업의 최종 배정량은 7,900여 톤으로 전체 4만 톤 쿼터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는 사조산업이 쿼터배정 뒤 선사 간 할당량을 사고파는 '전배' 관행으로 다른 선사로부터 물량을 더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원칙대로라면, 4,400여 톤이 배정되어야만 하지만 전배를 통해 확보한 쿼터량이 무려 3,500톤에 달한 것이다. 오룡호가 2014년 7월 2일 부산항에 입항해 8일만에 다시 출항한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룡호는 급히 출항하여 상반기 할당량을 어느 정도 소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조산업은 10월에 2차 배정받은 1,107톤의 쿼터에 더해 전배로 1,500톤까지 추가로 사들이면서 오룡호는 한 달 남짓 안에 2,600여 톤을 채워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놓였다. 1월부터는 금어기이기 때문에 오룡호 선원들은 12월말까지 연장 작업에 돌입하였다. 80% 가량 과다하게 할당받은 쿼터를 채우기 위해 운행되는 어선에서 작업을 통제할 권리는 존재할 수 없고, 안전한 조업이란 사치일 뿐이다. 고장에 대한 수리도 미비한 36년 된 배로 악천후 속에 조업을 강행하고, 이상이 생긴 배에서 4시간 가까이 퇴선 명령을 미룬 이유도 조업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상황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유족의 "사고 며칠 전 통화에서 목표 어획량을 채웠는데도 불구하고 선사에서 추가 물량을 채우라는 지시가 내려와 더 잡아야 한다고 들었다“라는 주장은 이를 뒷받침한다. 명태를 놓지 못해 선원들이 구명 뗏목에 옮겨 탈 수 있는 '골든타임'마저도 놓쳐 버린 것이다.

전배 관행은 사고의 숨은 중요한 원인이다. 일단 전배가 이뤄지면 사들인 물량을 채우지 못하는 만큼 손해가 발생하므로 선사로선 무리하게 조업을 진행할 것이 뻔하다. 낡은 배가 극한 해역에서 무리하게 조업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은 전배를 허가한 해수부도 알았을 것이다. 오룡호 침몰 이후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은 전배를 규제하는 것을 검토해보겠다며 뒷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원양업계에서는 “전배를 없애면 선사에서 어떻게 해서든 할당량을 채우려고 무리한 조업에 나설 수밖에 없어 안전문제가 더 불거질 수 있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오룡호처럼 전배를 사들인 선사에서도 무리한 조업이 진행되어 안전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배 시 어획량을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베링 해에서 조업을 할 수 있는 선사 선정 관련한 폐쇄성도 문제이다. 베링 해에 쿼터를 배정 받을 수 있는 선사는 기존에 조업을 하던 한국원양산업협회 소속의 5개 선사로만 한정되어,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매년 러시아로부터 할당받는 어획쿼터량을 5개 선사가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자본들의 탐욕은 멈출 줄 모르고, 정부도 전배를 허가해 주면서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필수 승무 선원조차 없었다

오룡호는 최저 승무기준조차 위반했다. 오룡호의 경우는 2급 항해사 자격을 갖춘 선장이 탑승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3급 항해사가 승선했다. 선장과 기관장 등 핵심선원 4명이 기준에 미달하는 자격증을 가졌고, 안전한 항해를 위해 반드시 승선해야 하는 2, 3등 기관사도 타지 않았다. 그런데도 항만청의 출항 허가는 떨어졌다. 선원이 배에 탈 때 신분과 직책을 항만청이 확인하는 승선 공인 절차가 있지만, 선원 개개인의 경력 등 인사기록을 관리하는 제도로만 한정되어 있다. 선사 측에서 신고한 내용과 다르게 선원을 운용하더라도, 승선한다고 보고한 선원을 실제로 태웠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필수선원을 지정해 놓고도 실제 승선 여부를 파악하지 못 할 정도로 제도가 미비한 상태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승무 위반 사례는 오룡호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부산경찰청에 의하면, 국내 원양선사 54곳의 어선 311척을 대상으로 승선원 실태를 전수 조사한 결과 50개 선사의 어선 172척에서 승무위반이 있었다고 한다. 선주들이 선원들의 임금지급을 줄이기 위해 상습적으로 이런 식으로 원양어선을 불법운용하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또한 위반 사항이 적발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낮아 불법 운항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룡호 침몰사고는 반복되고 있었다

사조산업에서 발생한 과거 사고들을 살펴보면, 오룡호 침몰사고에서 드러난 안전 관리 부재, 무리한 어업 관행, 노동자들의 인권 유린 문제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에 사조산업의 계열사 사조오양의 오양 70호(당시 선령 38년)가 뉴질랜드 해역에서 침몰하면서 3명이 사망하고 3명 실종했다. 사고 원인은 닫혀 있어야 할 엔진실 문이 열려 있어 침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배가 균형을 잃고 위험에 처했을 때 물고기가 담긴 그물을 잘라내자는 선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끌어올리라고 선장이 명령한 것도 침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오양 70호의 이런 모습은 다른 어선들이 조업을 멈추고 피항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조업을 강행한 오룡호와 닮았다.

2011년에는, 뉴질랜드 해역에서 조업하던 오양 75호의 인도네시아 선원 32명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타와 언어폭력은 한국인 상급자들에 의해 자행되었고, 조업 중에는 하루 평균 18시간씩 일하였으며, 48시간을 연이어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조오양은 피해 선원들에게 사과나 보상을 하기는커녕, 체불 임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선원들의 귀국을 종용하였다.
위 사진:[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피해보상·지원받을 권리마저 외면

오룡호 사고에서도 사조산업이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1만 달러(약 1천만 원)에 민·형사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합의하지 않으면 시신을 돌려주지 않겠다, 시신을 찾아주지 않겠다”고 협박해 강제로 합의를 받아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이 강압적인 합의 과정을 거쳐 사조산업은 오룡호에 탑승했던 이주노동자의 유가족 42명(인도네시아 32명, 필리핀 10명)에게 합의서를 받아냈다.

사조산업은 한국인 오룡호 실종자·유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사조산업측은 유가족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위로금 3,500만원을 제시하며 ‘수색 중단에 동의해 달라’고 회유하면서, 합의하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하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인 5명을 포함해 26명이 여전히 실종된 상태에서 지난해 12월 31일을 기해 수색이 종료되면서, 한국인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 5일부터 선사인 사조산업 본사와 외교부를 상대로 상경투쟁 중이다. 오룡호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사고와 소홀한 구조작업에 대해 정부와 사조산업이 책임 있는 사과 △실종자 수습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 △서울에 분향소 설치 등을 요구하며 사조사업 본사 3층에서 농성 중이었다. 사조산업 측에서는 언론사 및 변호들의 접촉을 최대한 막으면서 전기조차 끊는 등 치졸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사전 통보도 없이 건물에서 쫓겨나 오룡호 유가족들이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기까지 했다. 희생자들은 적절한 지원과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는 희생자를 위로하고 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권리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복되는 사고를 막으려면

오물배출구 파손 상태에서 자격미달 선원을 고용한 채 출항한 오룡호는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쿼터량을 채우기 위해 조업을 강행하다 피항이 지연되었고, 퇴선조차 하지 못하면서 참사로 이어졌다. 오룡호 침몰사고는 제도상의 허점뿐만 아니라 그간 부실했던 정부의 관리 감독 문제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변함없음을 입증했다. 20년이 넘은 노후 선박이 90%가 넘는 한국에서 안전 점검 절차는 여전히 부실하고, 이윤을 위한 기업들의 전배행위, 의도적인 ‘최저 승무기준을 위반’ 등을 감시할 정책은 없다.

사고 대응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고 직후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정부와 사조산업의 약속은 온데간데없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신설된 국민안전처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사고대책본부는 해양수산부에 꾸려졌고, 사고 수습은 외교부가 맡고 있다. 사고 발생 이후 사흘 동안 안전처가 한 일이라고는 러시아로부터 신고를 접수해서 관계기관에 전달한 것이 전부였다. 국민안전처 산하 부산해양경비안전서는 사고 원인을 기상악화 상태에서 무리한 조업 강행과 비상 조난 과정의 대응 미숙으로 좁혀 발표해 사조산업과 정부의 관리감독 미비의 연관성은 끊어내고 선장에게로만 화살을 돌렸다. 최고 책임자인 주진우 사조산업 회장에 대한 처벌은 유가족의 구호 속에서만 맴돌고 있다.

오룡호 참사의 이면에는 탐욕스러운 자본이 있고, 규제를 포기한 정부가 있으며, 이들과 결탁된 다양한 이권세력들도 있다. 대형사고가 있을 때마다 이들은 눈에 띄는 증상만 손보는 식으로 위기를 넘겨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오히려, 인권을 제한하거나 이윤을 더욱 추구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재산’과 ‘영토’의 안전만 강조하고 있다.

바뀌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 오룡호의 침몰 원인에 대한 규명을 분명히 하고, 안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과 대안이 토론되어야만 한다. 현재진행형의 참사에 직면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말하는 안전이 아닌 ‘우리’의 안전이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이 ‘우리’의 안전을 정립하고,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는 한걸음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진우 님은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5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05일 14: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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