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시간 속에 담긴 진실과 살아있는 기록을 향한 발걸음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기록 활동이 된 사연

호연
print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회'는 우리의 삶에서 이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참사에 직면하자고 제안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할 때 사회를 바꿀 힘이 된다. 매주 <인권오름>에 실릴 글이 질문을 함께 품는 과정이 되기를 바란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은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기억과 시간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에서 희수는 무용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그녀는 의식은 있지만 더 이상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만 있게 된다. 그녀는 누워서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 생각 속에서 그녀는 춤을 추고, 가족과 밥을 먹고, 올케와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신다. 생각은 그녀를 과거로 옮겨놓기도 하고 현재와 미래로 흘러가게도 한다. 생각은 살아 움직인다. 살아있는 한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생각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하지만 계속 생각이 나요.’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나온 후 가졌던 간담회에서 유가족들이 한 말이다. 이들은 멈추지 않는 생각의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고통을 동반한 그 생각 속에서 이들은 떠났지만 살아있는 아이들을 만난다. 인터뷰를 한 유가족 중 많은 분들은 책장을 넘기지도 손에서 책을 놓지도 못한다고 했다. 어떤 분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했다고 말한다. 책을 읽거나 읽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동일한 것일 수 있다. 생각나기 때문에 읽지 못하고 생각을 하기 위해서 읽는다. 생각은 피할 수 없는 기억의 부름에 직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계속 생각을 한다고 해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을 했다고 해서 기억이 덜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고통의 기억이 말이 되어 나오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과 어떤 과정이 있어야 할까? 기록자는 피해생존자들이 말할 수 있고 그것을 들을 수 있을 때를 어떻게 감지할 수 있을까? 기억은 “시간에서의 시선”이라는 말이 있다. 기억은 계속해서 현재라는 시간에 영향을 받고 재구성된다. 그래서 ‘지금’을 기록의 시점으로 선택한다면 그 이유는 피해생존자로부터 무엇을 들을 수 있고 기록자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하 작가기록단)이 ‘바로 지금’을 선택하기 까지 유가족들 근처를 기웃기웃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며, 광화문-국회-청운동을 오가며 보낸 시간이 있다. ‘지금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보낸 시간이 있다. 얘기를 들을 수 있겠다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지금은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시간이 있다.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 되기까지 우리를 잇게 한 버티고 함께 한 시간이 존재했다.

그러나 때를 기다린다고 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생존자들을 ‘잘’ 만나고 말의 세세한 결을 헤아리면서 듣기 위해 필요한 것, 우리는 그것을 ‘인권 감수성’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피해자이지만 피해자화 하지 않는 것, 이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을 갖지 않으면서 다가가는 것, 이들의 상황을 단순화하지 않고 다양한 맥락과 관계에서 보려고 하는 것, 유사한 경험을 했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에 주목하는 것,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임은 깊이 이해하는 것, 다른 우리가 만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등 일 수 있다.

활동으로서의 기록

위 사진:금요일엔 돌아오렴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씀
피해생존자들이 말하고 그것을 기록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416 세월호 참사와 같은 성격의 기록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읽게 하고 듣게 하고 말하게 하고 이 사건과 자신의 삶을 잇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까지 이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책 속에서 나와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을 만들고 있다. 그럴 때 아픈 기억을 불러와 말을 시작한 피해생존자와 그 말을 듣고 기록한 사람 각각이 말하고 기록한 것의 사회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기록 그 자체가 집합적 기억, 사회적 기억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기에 기록과정은 여기까지를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기록단의 일은 자연스럽게 기록에서 기록 활동으로 이어졌다. ‘어떤’ 기록은 기록 그 자체만큼이나 살아있는 기록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전후 과정과 활동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기록을 전하는 과정은 누구의 기억과 경험이 지배적인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되는가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다.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권력을 가진 자들은 피해생존자의 기억과 경험을 부정하거나 왜곡하거나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피해 생존자들은 사람들이 회피하고 싶은 것을 말하면서 이 사회의 비정상성을 경고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직면하게 하면서 무너진 인간의 존엄을 상기시킨다. 이들은 삶을 이어나기 위해 고통을 통해 알게 된 진실을 알리는 길에 나선다.

우리에겐 앞으로 규명해야 할 진실이 남아 있고 밝혀져야 한다. 왜 참사의 희생자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어떤 과정에서 누구의 잘못으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세세하게 따져봐야 한다. 제도적 결함과 잘못된 관행, 믿고 있는 가치의 비인간성이 만든 참혹함을 깨닫고 바로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우리 앞에 드러난 진실 또한 있다. 4월 16일 이후 지금까지 피해생존자와 함께 한 시간 속에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시간 속에 진실이 있다. 지금까지 함께 싸워온 시간들은 진실의 문을 열기 위한 출발점을 만들었다. 그 출발점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야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 모두가 만든 이 사회의 비정상성을 보여준다.

잊을 수 없는 시간을 버텨온 많은 사람들의 고통의 무게에 그 진실이 있다. 피해생존자들이 마지막 참사의 피해자이길 스스로 자처하며 이어온 시간의 무게에 그 진실이 있다.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떠난 사람들의 기억을 끌어안고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다른 사회, 존엄과 안전이 중요한 가치로 구성되는 사회는 피해생존자와 이를 공감한 사람들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잊지 않는 것 그 자체가 해결책이 아니라 기억하기는 출발점이다. 미안하다고, 잊지 않겠다고 말한 약속의 이행자들이 그 출발선에 서 있다. 우리가 이미 겪었고, 앞으로 밝힐 진실이 역사가 되기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된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호연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이며,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427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27일 11:11:50
뒤로
위로